“퇴행의 시대에 리영희 선생의 말과 글을 재현하려는 것입니다.”

그동안 김구, 신채호, 안중근 등 10권의 평전을 쓴 김삼웅(67· 사진) 전 독립기념관장은 리영희 선생 평전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생존 인물의 평전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거꾸로 가는 현 시대에 ‘죽비소리’가 시급히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달 말 평전 출간을 앞두고 있는 김 전 관장을 지난 3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반도 정세, 4대강 사업 그리고 언론 문제까지 김 전 관장이 미리 전한 리 선생의 ‘일침’은 날카롭고 신랄했다. 김 전 관장은 “당대 지식인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자성을 많이 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 리영희 선생 평전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리영희 선생 평전 집필을 원래 계획보다 조금 앞당겼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회 전반이 퇴행을 하고 있지만, 특히 보수 언론·공영방송의 퇴행과 과거 회귀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셨어요. 군사정권 시절에도 언론의 비리를 지적한 리 선생의 글을 이 시대에 재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리 선생의 입과 글을 통해 언론의 왜곡과 기회주의를 재조명해보고 싶었고, 이 기회에 리 선생의 생애를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 자료 수집, 취재가 쉬운 일이 아니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대~30대부터 예순 살이 되면 한국 민주화와 통일 운동 관련 실천적인 지식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 준비해 왔습니다. 리 선생과 관련해선 20여 년 동안 준비를 계속해 왔어요. 리 선생의 전집을 가급적이면 활용하지 않고, 그때그때 발표된 신문, 잡지, 계간지, 무크지 등을 거의 다 봤고 계속 모아왔습니다. 또 지난 2007년에는 6개월간 한 달에 두 차례, 2~3시간씩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에도 리 선생의 사모님을 만나 미공개 사진, 4·19 혁명을 전후해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했던 원문 자료 등도 받았습니다. 이런 자료들이 평전에 실릴 예정입니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20여 년 전부터 신문 등에서 리영희 선생 관련 자료를 모아오면서 평전을 준비해왔다. 최훈길 기자 chamnamu@  
 
“보수 언론·공영방송의 퇴행과 과거 회귀, 대단히 우려”

-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연재한 132회 마지막 글에서 “저는 <리영희 평전>을 쓰면서 솔직히 후회했다”고 밝혔습니다. 꼼꼼히 오랜 시간 자료를 준비하셨는데 왜 집필을 후회하셨습니까.
“인터뷰나 자료를 통해 들은 상식은 리영희라는 행동적인 지식인의 사유와 철학에 워낙 못 미친 것 같습디다. 지난 2~3년 사이에 그분이 쓴 책을 거의 다 읽었는데 사유의 폭이 이렇게 넓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의 동시대 지식인들이 한반도 문제에 국한돼 있었는데, 이분은 6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내가 괜히 덤벼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 리 선생을 만나면서 어떤 얘기를 많이 나누셨습니까. 
“‘우리나라 언론, 보수 언론으로 규정될 수 있는 언론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느냐. 근본 원인이 어디가 있겠느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언론인들이 친체제 지향에 길들어져 이걸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을 근래에 특히 강조하시더라고요. 과거 정권과 권력에 기생했던 곡필 지식인과 언론인을 숙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안타깝고, 이제는 그런 언론이 국가 권력화 돼 안타깝다는 말씀이지요. 리 선생은 이들을 보수 언론인이라고 하지 않고 ‘언롱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을 우롱한다는 것입니다.”

- 리 선생이 현 시대에 가장 안타까운 점을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제일 안타까운 것을 남북문제와 언론의 타락상이라고 하셨어요. ‘현 정부가 남북 관계에 대한 50년대 의식에 있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50년대 의식으로 정체된 것을 풀려고 하니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언론에 대해선 언론이 정도를 걷고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야 생명력이 있는데 그러지 못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빌딩이 올라가고 월급을 많이 받아서 좋겠지만 언론이 제 기능 못해 무덤을 파는데 젊은 사람들이 누가 그런 신문을 보겠느냐는거죠. 리 선생은 최근 신문이 탈출구로 방송으로 나서는 것을 두고 ‘보수언론과 이명박 권력이 화간하는 모습’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말을 우롱하는 ‘언롱인’ 행태 심각…종편? 보수언론과 MB 권력이 화간하는 모습”

   
  ▲ 리영희 선생과의 대화가 지난 2005년 12월9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김민웅 성공회대 겸임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 한반도 현 정세에 대해서는 어떤 지적을 하시던가요.
“올해 쓰러지신 뒤로는 못 여쭤 봤습니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리 선생이 좀 더 활동적이 돼 천안함 문제나 전시작전통제권 연장 문제 등에 명료한 분석을 해주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보수언론의 행태에 대해선 무엇을 지적하시던가요.
“언론인으로서 언론학자로서 언론의 기능과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셨죠. 제 생각에는 언론이 공론 의식보다는 패거리 의식이 지나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독재 정권 때는 사육된 언론인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본과 사주와 권력의 한 패가 돼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과거 정권 당시에는 언론이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지금은 침묵해버리지 않습니까.”

- ‘정론직필’ 하는 언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신 것 같습니다.
“리영희 선생도 지적했듯이 검찰과 언론 즉 선출되지 않는 두 개 권력이 너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견제를 받지 않아 한국 사회가 어떤 파행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검찰은 하이에나처럼 과거 정권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물어뜯고 살아있는 권력은 피해가고 있고, 언론은 검찰 행태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리 선생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비대화는 자칫하면 국가의 동맥경화증으로 빠져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하신 겁니다.”

- 리영희 선생의 글에 대해 ‘치열한 글쓰기’ ‘반이성주의에 대결하는 글쓰기’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리 선생의 글이 현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일부 주류 언론들의 글쓰기를 보면 지극히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글쓰기를 합니다. 하지만 리 선생의 글쓰기는 고난 속에서도 일관되고 치열한 논리와 이성의 싸움이었어요. 리 선생은 칼럼 한 편을 쓸 때도 1주일 정도를 준비했고, 건조하면서 미문이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셨습니다. 이런 언론인의 상이 실종돼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두 권력 검찰․ 언론, 너무 비대해져…국가 동맥경화증 우려”

   
  ▲ 리영희 선생.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현 정부 국정 하반기입니다.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등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데, 현 정부의 국정 운영과 이를 비판 또는 저지하는 야권의 모습에 대해 리 선생은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파시즘적 작태이고,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을 보고선 이승만 정권보다 더한 노예정권이라고 명료하게 얘기하셨습니다. 야당에 대해선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늘 하셨습니다. 작년 연말에 언론법 날치기 때 야당이 무기력하게 대처해 결국은 족벌 신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됐다고 하셨죠. ‘의원 총회에서 총사퇴하겠다고 결정했으면 사퇴 흉내라도 해야지, 왜 그러느냐’는 지적도 하셨습니다.”

- 리 선생 평전을 쓰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많이 느끼셨습니까.
“4·19 혁명과 관련해 리 선생은 1인 분의 역할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만인 분의 역할을 더했을 분이 저렇게 겸손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60일이 지난 후에 광주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비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당대 지식인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자성을 많이 했어요.”

- 평전 쓰면서 본 리영희 선생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나이 예순이 돼서야 온수가 나오는 집에서 살았을 정도로는 정도로 한평생을 광야에서 고난 속에 있으셨습니다. 언론사에서 쫓겨나고 대학에서 쫓겨나고 7~8번 감옥에 가시고 수배 를 수십 번 당하셨습니다. 신채호 선생 등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처럼 리영희 선생도 고집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고집이 신념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안되고 친일 왜곡된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권력과 부를 탐하면 언론인이 될 수 없다, 이제는 후배들이 일 해줬으면”

- “인물평전을 쓰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감정이입을 얼마나 절제하느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실존 인물을 쓰는 것이라서 어려움이 더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애정이 있어야 그 사람에 대한 평전을 쓸 수 있더라고요. 제가 11권 쓰면서 인물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안 쓰거나 덜 쓰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평전에서 노태우한테 돈 받은 것, 자식들 비리, 권위주의적인 총재였던 점 등을 빠짐없이 썼습니다. 리 선생의 부정적인 면을 듣기 위해, 사모님한테 ‘신문사 다닐 때 스캔들 없었느냐’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올곧고 고집 센 사람을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느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신채호, 김구 선생 등 그동안 제가 평전을 썼던 분들은 바르게 살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정도를 걸어왔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명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있지도 않는 것을 객관적이라는 미명하에 5대 5 형식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써야 한다는 논리는 제가 쓰는 평전 대상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후배 언론인들에게 대한 리 선생의 당부는 무엇이었나요?
“근년에 후배들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언론사에 있다가 정치권, 권력 쪽으로 간 기자들은 이미 언론사 시절부터 공정하게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권력과 부를 탐하면 언론인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의 역할은 이미 다 끝났다. 후배들이 일 해줬으면 한다’는 것을 수차례 얘기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언론사 후배들이 과연 리영희 선생의 몫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반성했습니다.”

- 앞으로 평전 집필 계획은?
“내년이면 재산을 전부 팔아서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의 산실인 신흥 무관학교를 만든 이회용 선생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또 내년에는 고 송건호 선생 10주기를 맞아 관련 평전도 쓰려고 합니다. 또 언론과 검찰이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도 써볼 예정이고, 여운형 선생의 일제 행적에 대해서도 쓰려고 합니다. 할 일이 참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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