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 ‘험한 세상’이지만 용기를 내 역사를 기록하려는 언론이 있다.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덮어주는 언론도 있다. 국민 입장에서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옥석을 가려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도 긴장한다. 또 반성한다. ‘공정한 사회’가 화두다. 거짓말에 무덤덤한 집권 세력이라는 냉소를 받지 않으려면 실천해야 한다. 입으로만 말하고, 언론이 적당히 포장한다고 그런 세상이 오는 게 아니다.

국무총리실 직원이 민간사찰에 나선 게 드러났다. 총리실 사찰 의혹을 검찰이 수사했는데 몸통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총리실 사찰 과정에서 ‘증거인멸’이 벌어졌는데 검찰은 담담하다. 아니 조용하다. 아니 수사하는 ‘시늉’으로 면피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총리실 증거인멸 과정에 ‘대포폰’이 활용됐다는 점이 드러났다. 대포폰은 범죄행위에 이용되는 불법 장비이다. 기막힌 대목은 총리실 대포폰을 제공한 곳이 청와대라는 점이다.

더 기막힌 것은 검찰은 이를 알고도 조용히 지나갔다는 점이다. 더더욱 기막힌 것은 이러한 범죄행위가 드러났는데도 적당히 덮어주는 언론이 있다는 점이다. 누가 가장 문제일까. 대포폰을 활용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총리실일까, 불법장비 대포폰을 제공한 청와대일까, 이를 적당히 덮어주는 언론일까.

다음은 2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민간 사찰한 지원관실에 청서 '대포폰' 만들어줬다>
국민일보 <정치권 '검 때리기'…칼날 무뎌지나>
동아일보 <전 정권 유력인사에 로비 정황>
서울신문 <"밥 일지 안썼다고 '빠따' 맞았어요">
세계일보 <민주 새 대표에 손학규>
조선일보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당선…호세프, 11일 서울 온다>
중앙일보 <일 "일본 영토 왜 왔나…감정상했다"/러 "러시아 땅 갔을 뿐…냉정 찾아라">
한겨레 <"청와대가 사찰팀에 '대포폰' 지급 검찰, 민정수석과 상의 뒤 사건 덮어">
한국일보 <'사정의 칼' 서슬 퍼런 전주곡>

청와대 '대포폰' 지급, 검찰은 알고도 발표 안했다

   
  ▲ 경향신문 11월2일자 1면.  
 
경향신문은 2일자 1면 <민간 사찰한 지원관실에 청서 '대포폰' 만들어줬다>라는 기사에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일명 '대포폰(명의를 도용한 휴대폰)'을 지급해 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이를 사용했던 것으로 1일 밝혀졌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아내고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1면 <"청와대가 사찰팀에 '대포폰' 지급 검찰, 민정수석과 상의 뒤 사건 덮어">라는 기사에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장 아무개 주무관이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삭제하기 위해 수원의 컴퓨터 전문업체를 찾아갔다"며 "장 주무관이 (수원에) 가기 전 대포폰을 이용해 업체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석현 의원은 “이 대포폰은 (최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해 만들었으며, 비밀통화를 위해 (총리실) 지원관실에 준 것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제공 대포폰, 사찰 증거인멸에 활용

   
  ▲ 한겨레 11월2일자 1면.  
 
민간사찰 증거인멸은 범죄행위이다. 범죄행위에 대포폰을 사용한 것도 범죄행위이다. 대포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행위에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일반인은 상식의 눈을 의심해야 할 만한 엄청난 사건이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의 ‘검찰’ 내부에서도 이 상황을 보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겠는가.

한겨레는 3면 <검찰, 민간인사찰 '청와대 개입' 증거 잡고도 은폐>라는 기사에서 “끝이 없다. 검찰의 결론과 달리,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가 지원관실을 직접 움직였다는 증거가 계속 쏟아지고 있다. 검찰은 여전히 '최선을 다한 수사'라고 항변하지만, 재수사 가능성이 검찰 내부에서도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개입 증거 드러나도 검찰은 '담담'

   
  ▲ 한겨레 11월2일자 3면.  
 
한겨레는 “'대포폰'을 확인하고도 검찰 수사가 청와대 앞에서 멈춰선 이유에 대해서 이석현 의원은 수사 책임자인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과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사이에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해 대포폰 문제를 일단 내사 사건으로 분류해 놓되 이런 사실을 법무부 장관에게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건은 간단치 않다. 법무부 장관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은 흥미롭다. 검찰과 청와대 책임자의 합의 주장도 흥미롭다.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대목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진짜 몸통에 다가설 수 있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 태도는 의외이다. 전문 탐정이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도 중요한 증거인데 조용하다. 무조건 눈감았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내사 사건’으로 분류한 것을 보면 빠져 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검찰은 왜 이랬을까.

세계일보 "대포폰 '윗선' 개입 중요한 정황증거"

   
  ▲ 세계일보 11월2일자 3면.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대통령이 강조하고 언론이 홍보하는 세상에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세계일보는 1면 <"청, 대포폰 동원 민간인 사찰 개입">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지원관실 수사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발표하지 않아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3면 <청 '윗선' 개입 있었나>라는 기사에서 “'정치인·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이 갈수록 곤란해지고 있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진창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일보는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포폰'을 지급한 것은 '윗선' 개입의 중요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제공한 대포폰은 자체로도 불법인데, 증거인멸이라는 불법에 활용됐다는 큰 문제 아닌가. 게다가 검찰은 청와대 대포폰 제공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면 더욱 문제 아닌가. 그런데 큰 비중으로 기사를 싣지 않은 언론이 있다.

국민일보 중앙일보, 별도 기사로 처리

   
  ▲ 중앙일보 11월2일자 2면.  
 
국민일보는 4면 왼쪽 하단에 <"청, 민간인 사찰에 대포폰 동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3면 오른쪽 2단 기사로 <청와대, 민간인 사찰 총리실 직원에게 대포폰>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가 비중 있게 처리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뉴스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언론사의 몫이다. 다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를 축소하거나 덮으려 한다면 그 책임 역시 언론사가 져야 한다.

국민일보와 중앙일보가 상대적으로 작게 처리했지만, 그래도 별도 기사로 처리는 했다. 진짜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자초한 언론은 따로 있었다.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에서는 별도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진짜 꼼꼼히 신문을 훑어보지 않는다면 ‘대포론’이라는 글자를 보기도 힘들 것이다.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별도 기사 없어

동아일보는 6면 <청-한나라 "면책특권 악용 영부인 명예훼손">이라는 기사에서 ‘대포폰’ 얘기를 언급하는 정도로 처리했다. 서울신문도 8면 <김총리 "개헌 공론화하면 정부서 뒷받침"> 기사에서 대포폰 얘기를 언급하는 정도로 보도했다. 한국일보 역시 6면 기사 말미에 대포폰 얘기를 전달하는 수준에서 이번 사안을 처리했다.

이번 사안은 그 정도의 비중 밖에 안 되는 사안일까. 그렇다면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언론사의 시각차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안을 특정 언론이 감추려 한 것으로 봐야 할까.

조선일보가 각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4면에 <"총리실, 불법사찰 때 청 행정관이 만든 '대포폰'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주요 신문 중 유일하게 관련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는 무엇에 쓰라고 '대포폰'까지 만들어줬나>라는 사설에서 “대포폰은 남의 이름을 도용해 만든 휴대전화로 사기나 스팸문자 발송 같은 범죄행위에 주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청와대는 무엇에 쓰라고 대포폰까지

   
  ▲ 조선일보 11월2일자 사설.  
 
범죄행위에 활용하는 대포폰을 청와대가 제공한 기막힌 현실을 지적한 내용이다. 청와대 대포폰 제공 의혹은 검찰이 “알고 있었다”는 얘기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검찰의 부실 수사, 권력 눈치보기 수사, 몸통 감추기 수사 의혹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영호 전 고용비서관은 불법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전 윤리지원관을 통해 지원관실을 여권 특정 인맥의 별동대처럼 이용해왔다는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검찰은 대포폰 사실을 밝혀내고서도 감췄다. 그뿐 아니라 대포폰을 만들어준 사람이 이영호 전 비서관의 직속 부하임을 확인하고서도 이 전 비서관에게 면죄부를 줬다. 검찰이 처음부터 눈감고 수사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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