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이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권력이 하는 나쁜 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왓비컴즈의 언행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닌데 그 안에서는 탄탄한 논리인 것이다. 믿고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교주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8일 방송된  < MBC 스페셜 >의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은 지난주 타블로의 학력 검증에 이어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하 타진요)의 행동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타진요’와 운영자 왓비컴즈의 비상식적 행태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인터넷 문화의 역기능만을 부각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타진요'는 교주 왓비컴즈 맹신 집단?

전문가들은 ‘‘타진요’’에 행태에 대해 “믿고싶은 것만 믿는다”며 “왜곡된 정의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이 마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념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 마녀사냥도 정의를 위한 것으로 인식한다. 정의라는 미명하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라고 분석했다. 또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를 사이비 교주에 비교하며 ‘타진요’를 사이비 교주를 추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서울신문도 9일자 사설 <‘타블로 파동’ 익명음해 책임 확실히 물어라 >을 통해 “익명의 누리꾼들이 퍼뜨리는 불신과 증오의 바이러스가 무섭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 폭력의 희생자는 타블로뿐이 아니다. 최진실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악의적인 인터넷 댓글 때문에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며 타블로 학력의혹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모든 누리꾼이 ‘왓비컴즈의 허황된 주장에 선동당했다’ 라는 분석은 위험하다. 타블로의 학력의혹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 때문이며 ‘괴담에 선동당한 누리꾼’이라는 정형화된 공식은 미 쇠고기 광우병 파동때 촛불시위에 참여한 국민을 ‘선동당했다’고 표현했던 보수언론과 정부의 의견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보수언론은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실명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정부도 맞받아 인터넷이 저질 선동의 장이 되고 있다며 강력한 규제를 추진했다.

한 누리꾼은 이번 학력의혹이 인터넷 문화의 잘못된 부분을 표출했다하더라도 그것이 누리꾼 전체의 문제로 호도되어서는 안된다며 “‘타진요’ 가입한 사람 모두가 왓비를 교주로 모시는 광신도 인가? 재갈을 물리려고 하지마라. 의혹이 사실이 된 예가 많았던 것을 잊었나. MBC PD 수첩에서 황우석 줄기세포 편 방영했을 때를 생각해 봐라”라는 의견을 남겼다.

또 다른 누리꾼도 “MBC는 주관적 시점으로 다수의 네티즌을 우매하고 악랄한 광신도로 만들어 버렸다” 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이 사태를 기존언론과 인터넷 권력간의 세력 다툼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기존언론은 인터넷이 자기들 자리를 위협하는 게 불안한 것이다. 연예인 자살도 악플러 탓, 누리꾼의 입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 의견을 피력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인터넷 1인미디어' 블로터닷넷의 필명 ‘비전 디자이너’는 지난 3일 ‘타블로와 인터넷, 모두를 구하라’는 글을 통해 “인터넷은 하나의 고정된 성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에 ‘어떠한 성격’의 참여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발전의 ‘성격’도 바뀐다”며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한국 사회’라는 의견을 피력했다.또 “이번 논란이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트위터’에서 벌어졌다면 사건이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송경재 경희대 교수도 10월 6일 PD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행위가 나쁜 것이다.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인터넷이 모든 책임이 있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네티즌이 다 문제라는 식의 접근법은 잘못되었다. 오히려 사회현상에 관한 구조적이고 맥락적인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인터넷에만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인터넷의 구조와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라며 “섣부른 인터넷 책임론을 경계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타블로 학력의혹이 정말 가리키는 것

배우 김태희를 가장 많이 수식하는 단어는 바로 ‘서울대 출신’ 이라는 단어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뿐 아니라 지성까지 갖춘 보기 드문 연예인으로 평가받으며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타블로도 ‘스탠포드 출신의 엄친아’라는 꼬리표가 처음부터 따라다녔다. 

혹자는 ‘타블로가 음악으로 인정받았을 뿐 음악이 좋지 않았다면 스탠포드대 학력이 무슨 소용이었겠느냐고 말한다. 또 유수의 좋은 학력을 가진 음악인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블로는 데뷔 때부터 학력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언제나 ‘스탠포드를 3년 반만에 조기 졸업한 엄친아’로 언론에 홍보되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사실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방송이나 언론이 그를 ‘장사가 될 만하게’ 가장 좋은 포장지로 포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블로와 기획사의 의도이건 언론과 방송사의 의도이건 간에 가장 큰 수혜자는 타블로 본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고질적인 학력 프리미엄의 병폐를 말한다.

‘타진요’에서 한동안 중앙일보 2008년 12월 20일자 기사 <조우석 칼럼- 책에게 길을 묻다 타블로의 아쉬운 ‘문학 외출’>이라는 글이 화제가 되었다. “힙합가수 타블로(28)가 펴낸 단편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글은 “악문(惡文) 모음집 아니야?”싶은 수준의 문장은 차라리 모래를 씹는 맛이다. 스토리도 그랬다. 종합해 판단하자면 작품 이전이요, 습작 수준이 분명하다“ 라고 출간된 해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타블로의 소설집이 수준미달이라는 내용으로 조목조목 비판을 이어간다.

   
  ▲ 중앙일보 2008년 12월 20일자 21면.  
 
“그의 팬들은 좔좔 꿰겠지만, 타블로는 명문 스탠포드대 출신이다. 최우수 성적으로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석사학위도 받았다. “학벌로 치자면 가요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말도 나돈다... 어쨌거나 좋다. 그림도 그리는 가수라서 자칭타칭 화수(畵手)도 있는 판이 아니던가. 왜 문수(文手·문인가수)가 나오지 못하겠는가? 타블로가 그 주인공이 못 될 것도 없다. 단, 지금의 역량 가지고는 안 된다.“ 고 맺음되는 이 칼럼은 ‘타진요’에서 여러번 인용되었다. 회원들은 이 글을 타블로가 명문 스탠포드를 나올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또 출입국 기록을 요구하는 저변에는 ‘3년 반만에 명문 스탠포드의 학석사를 같이 마칠 수 없다’ ‘힙합도 하면서 명문 스탠포드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없다’ 라는 식의 ‘스탠포드 신화’가 깔려있다.

“이런 명문 스탠포드를 당신이 나왔을 리 없다. 당신은 스탠포드의 프리미엄으로 많은 것을 누렸다. 그것은 공익에 반하므로 파헤쳐 정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공식이 밑바닥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후천적 이중국적은 성립될 수 없다?

< MBC 스페셜 >은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타블로의 이중국적 보유 여부에 대해 법무부에 찾아가 대답을 구했다. 이미 법무부는 지난 9월 계속되는 누리꾼의 타블로 이중국적 의혹에 대한 질문에 “타블로는 92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국적이 없어져 이중국적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 타국 국적 취득을 바로 신고하지 않더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도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천적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국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국적법 15조를 개정해 타블로 같은 후천적 시민권 취득자에게 이중국적 자격을 주어 병역 등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누리꾼들도 “법에 맹점이 있다”며 “있는 사람들이 누릴것만 누리고 의무 등은 피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이용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이중국적이 성립이 안된다는 것은 기실 말장난”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타블로의 학력 의혹 저변에는 이중국적과 병역 이행 유무에 대한 반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타진요’에서는 타블로가 출입국관리 기록을 내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중국적을 위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공개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많은 동의를 얻기도 했다. 학력의혹을 전하는 기사에 단골로 달렸던 댓글은 ‘군대도 안가는 캐나다인’이라는 맹목적인 비난이었다.

8일자 < MBC 스페셜 > 에서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타블로는 고학력자이면서도 대중문화에서 성공했고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지만 또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면서 "2007년 한차례 유명인의 허위학력문제가 논란이 된 후 타블로의 학력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특권층 비리로 여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타블로 집안이 사회 지도층, 부유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며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권위주의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을까"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도 언론도 믿지 못하는 세상, 누가 만들었나?

‘타진요’는 8일 경찰이 발표한 타블로의 스탠포드 졸업확인에 대해 ‘공권력을 믿을 수 없다’며 부정적인 분위기다. 또 타블로의 학력 의혹등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는 ‘상식이 진리인 세상’(이하 상진세)도 한국의 검찰은 믿을 수 없으니 미국 FBI와 사설 탐정에 사건을 의뢰하자는 다소 황당한 의견의 다수 회원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는 공권력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삼성 장학생 검사’의 존재로 생긴 불신의 벽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올 4월 < PD수첩 >을 통해 폭로된 ‘스폰서 검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차갑게 얼게 했다. 또 지난 9월엔 국민 32%만  정부의 천안함 보고서를 믿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타진요’는 ‘광신도 집단’이 아닌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집약해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4월 방영된 MBC 'PD수첩'-'스폰서 홍두식(가명), 지난 25년을 폭로하다' 화면.ⓒMBC  
 
또한 타블로 학력의혹은 언론의 기능을 의심케 했다. 언론은 ‘타진요’가 주장하는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려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써 논란을 키우고 한편으론 타블로의 해명만 부각시켰다. 언론이 처음부터 ‘타진요’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그것이 왜 성립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의혹이 제기되면 그 의혹을 풀려고 노력하는 쪽은 언론이 아닌 다른 까페였다. 언론은 그 사이에서 그들의 공방을 받아쓰기 하는 쪽에 집중했다. 한 누리꾼은 “이미 확인이 된 타블로의 학력의혹을 계속 걸고넘어지는 ‘타진요’의 행태를 그대로 받아써 의혹을 키운 것이 일부 언론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다수 언론은 < MBC 스페셜 > 과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로 타블로의 학력의혹은 종지부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또 ‘타진요’의 운영자 ‘왓비컴즈’와 타블로가 기소한 19명의 누리꾼도 법의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이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타블로 학력의혹 사태에 대해 단순한 ‘광신도 집단의 소동’이라고 하기엔 그것이 가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그늘이 너무도 확연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타블로 학력의혹에 관한 일련의 사태를 ‘악플러와 희생자' 라는 전형적인 구도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짚어주고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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