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은 아주 정확하게 얘기하면 반MB, 반 한나라당이다.”

지난 9월30일 국회 본청 진보신당 대표실에서 만난 노회찬(54·사진) 대표는 6·2 지방선거 민심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초반 기대를 받았다. 노 대표는 “선거초반 지지율이 15% 이상 나와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결과도 그랬다. 그는 야권연대의 대상이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득표율 3.26%(14만 3459표)로 나타났다. 당선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진보신당을 제외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한명숙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0.6%였다. 산술적으로 보면 한명숙-노회찬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완주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왜 예견하지 못했겠나"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치열 기자  
 
노회찬 대표는 힘겨운 상황을 경험했다. 선거 준비과정부터 선거운동, 결과까지 그렇다. 선거 이후 쏟아졌던 비판의 시선도 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 선거 막판 ‘정치적 결단’을 고려하지는 않았을까.

노회찬 대표는 “완주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왜 예견하지 못했겠나? 독이 든 술잔이지만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함축적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정치인은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결단이 자신의 의지를 넘어 결정될 때도 있다.

노회찬 대표는 “저는 당의 주요 후보이자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노회찬 대표가 자진사퇴 형식으로 야권 단일화에 임했을 경우 당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권 지지층은 줄기차게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그는 ‘완주’를 선택했다.

완주는 어떤 의미였을까. 노회찬 대표는 “혹자는 완주에 의미를 두는 데 저는 완주가 목표는 아니었다. 당선이 목표였다. 완주에 의미를 두는 것보다 선명성, 정체성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민심은 단일화를 요구했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치열 기자  
 
노회찬 대표도 야권 지지층이 단일화를 원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는 “민심이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그것은 공동 책임”이라며 “의미 있는 승리를 하기 위해 단일화로 가야 했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한명숙 후보 쪽이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는 “우린 작은 정당으로 거취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실리가 중요한 건 아니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냥 혼자 출마해 퇴각하는 식이라면 출마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단일화는 필요했지만, 서로 안이한 측면도 있었다”면서 “향후 선거에서 교훈을 녹여내 앞으로 대응하는 거름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야권 단일화에 유연한 입장을 담은 발언이었다. 실제로 그런 얘기가 나왔다.

그는 “진보신당이 정책공조 하듯이 선거공조를 할 수 있다. 상대가 민주당이라고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 정치적 의미가 있을 경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전략이 궁금했다. 그는 현재 진보신당 대표이자 차기 유력한 진보신당 대선후보군 중 하나이다.

“대선 같은 경우 선거연대가 강하게 요구되는 것 아닌가?”

그의 되물음에 답이 있었다.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이들이 선거연대에 적극성을 보이는 발언을 하는 데 주목했다. 문제는 실천이라는 얘기다.

"대선의 경우 어떻게든 정권교체 해야 한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치열 기자  
 
노회찬 대표는 “대선의 경우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연대도 필요한데 그게 무난하게 되기 위한 사전 노력이 중요하다. 말도 안 되는 사람을 뽑아놓고 연대하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선거연대의 대상으로 민주당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정권 교체’를 강조하면서 야권 선거연대의 당위성,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은 주목할 부분이다. 노회찬 대표는 임기를 마무리 하는 단계이다.

신임 조승수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 다른 위치에서 ‘노회찬 정치’를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대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맞아 ‘담금질’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2년 총선과 관련해 “수도권은 진보를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진보친화적 스폰지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한번으로 족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한 진보정치인들이 수도권에서 대거 당선돼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국민 선택지에 진보정당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진보대연합은 그 출발점이다. 현실적으로 2012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으로 진보정당이 뿔뿔이 흩어져 선거에 임하면 ‘참담한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그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대해 “통합이라는 용어가 틀리지는 않은데 그보다 새로운 정당 창당으로 접근하고 싶다”면서 “두 당만 쑥덕쑥덕하면 그 둘만 합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합당 수준을 넘어선 진보진영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정당의 현재 실력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했다. 그는 “어느 세력에게 권력을 맡길 것인가, 현실적으로 국민 선택지에 진보정당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신당이 집권을 위해서는 국가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면 국방 외교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해 우리 당에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정책적 선명성, 근본적 입장을 강조했지만 그것을 현실에 녹여내는 마스터플랜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민 선택지에 진보정당이 없다는 얘기는 냉정하면서도 쓰라린 얘기다. 그것을 인정하기는 더 어렵다. 그는 이를 인정했다. 한국정치에서 진보정당을 논할 때 ‘노회찬’ 세 글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진보정치 씨앗 뿌렸던 노회찬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치열 기자  
 
그는 진보진영에서조차 냉소적 시선을 보낼 때부터 진보정당 추진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경기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했고,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 대표를 지냈다.

척박했던 한국정치에서 진보정당 얘기를 하면 곧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 그는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관여했고 2004년 진보깃발을 내건 정당의 원내진출(10석)에 성공했고, 정치인 노회찬도 ‘국회의원’ 자리에 올랐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촌철살인 언어로 대중성을 넓혀나갔다. TV토론 단골손님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당내 경선에서 권영길-심상정 후보에 밀렸고, 민주노동당 분당, 최근 지방선거 패배 등을 경험하며 정치적 시련도 겪었다.

‘노회찬 정치’에 주목하는 이들은 6·2 지방선거 이후 그를 향한 야권 지지층의 ‘냉랭한 시선’에 아쉬움을 전한다. 노회찬 대표는 독이 든 술잔이지만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정당 정치인 중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닌 인물이다.

민심의 역동성, 그곳에 '시대정신' 있다

   
  ▲ 지난 9월30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아이패드로 트위터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6·2 지방선거와 이후 전개된 상황은 그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정치인의 선택은 책임이 뒤따른다. 옳은 결정이건, 그른 결정이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올바른 모습이다. 책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의미이다.

“결과는 흡족하지 않다. 수업료는 비싸게 냈지만,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진보신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직책이 지닌 부담에서 벗어나면 ‘많은 교훈’ 그 의미를 더욱 면밀히 점검해볼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 ‘아이패드’를 들고 왔다. 아이패드 활용도 수준급이다. 그는 트위터에서도 유명 인사다. 그곳은 대중과 호흡하는 또 다른 길이다. 정치인은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해야 한다. 그곳에 변화의 바람, ‘역동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 상황은 촛불이었다. 우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고 오래 전 예비된 흐름이 분출된 것이다. 마그마처럼 지표 아래서 움직이다 분출한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진행 중인 여러 변화, 양상, 힘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진보신당 대표 시절을 회상하며 가장 기억나는 장면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역동성의 의미와 배경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을까. 그곳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진단하면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다. 시대정신을 꿰뚫는 정치인만이 실력으로 본 무대에서 겨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인터뷰=류정민 기자(취재1부장)
정리=김원정 기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