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8월 9일, 미국 기업 구글과 버라이즌(Verizon)의 망중립성 관련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합의문의 핵심내용은, ‘유선 인터넷에서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두 가지 매우 무서운 유예조항이 있다. 1) 유선 인터넷에서 이후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와 2) 모바일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데이타에 대해서는 지금의 망중립성을 유지하지 않고 차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인 구글 TV에게 또는 모바일 인터넷으로 즐기는 유튜브(YouTube) 동영상 서비스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우선권을 위해 구글은 버라이즌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자는 예의 두 서비스를 보다 편하고, 빠르고 그리고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신생 업체가 동영상이나 음악 서비스를 스트리밍 형식으로 제공하려한다면? 이들 업체가 ‘우선권’을 구입할 재정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소비자는 종종 끊김 현상이 있고 느리게 제공되는 이들 신생 서비스를 즐겨야 한다. 물론 이러한 차별은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카이프(Skype)는 와이브로 등 3G망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애플의 아이폰4에서 가능한 페이스타임(Face Time) 서비스도 WiFi 무선인터넷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구글과 버라이즌의 이번 합의는 법적 효력이 없는 순수한 기업간 합의다. 그러나 이들 두 업체가 전세계 통신시장과 웹시장에서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그리고 이 합의문이, 한국으로 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되는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될 두 기업의 공식 의견이라는 점 등 때문에 이번 합의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8월 9일 두 기업의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인터넷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반대와 비판 의견이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때문에 망중립성 훼손을 찬성하는 쪽은 오히려 공개적인 토론을 피하고 비판의 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KT, SKT 등 한국 통신기업은 구글과 버라이즌의 합의문을 크게 환영할 것이며, 이 합의문이 미국 FCC의 공식 입장이 되어 좋은 선례(?)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망중립성을 훼손하려는 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어떻게 공공의 이익과 배치되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장 훌륭하게 찬반 토론이 진행된 곳은 뉴욕타임즈(NYT.com)의 토론방(Room for Debate)다. 뉴육타임즈에 의해 구글과 버라이즌 합의문에 대한 의견을 요청받은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데이비드 지런터(David Gelernter), 팀 우(Tim Wu) 등 8명은 인터넷 관련 경제적, 사회적, 법적 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토론의 결론은 7:1로 합의문 반대 논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합의문을 찬성하는 미국 예일(Yale) 대학교 전산학과 지런터(Gelernter)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자.

아니 왜 (소비자들이 즐겨보는) 스트리밍 동영상 서비스가 스팸이나 기업 뉴스레터와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기업에게 넘쳐나는 돈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돈을 기업 보스에게 고가의 요트를 사주는 데 쓰지않고 소비자들에게 보다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사용한다면 뭐가 잘못된 것인가?

But why does the public interest require that data needing fast handling (such as streaming video) must wait in the same line with spam, or your company’s monthly email newsletter? If a corporation is rich enough to buy faster service for its customers, why shouldn’t it use its money that way instead of buying new yachts for the junior vice presidents?

동영상과 뉴스레터를 경쟁관계로 놓고 있는 지런터 교수의 논거는 잘못되었다. 뉴스레터는, 동영상 서비스와 동일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쟁하지 않으며, 동영상 서비스와 인터넷 회선의 순서를 기다리며 경쟁하지 않는다! 지런터 교수의 논거는 바로 망중립성을 찬성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소비자는 보다 좋은 동영상 서비스를 원한다. 때문에 유튜브보다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 속도의 차이없이, 화질의 차이없이 새로운 동영상 서비스를 즐기기를 원한다. 때문에 다수의 동영상 서비스가 동일한 망(network) 조건에서 경쟁하기를 원한다. 유튜브를 소유한 구글이 버라이즌 회장에게 요트를 사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런터 교수의 또 다른 논거를 들어보자.

큰 항공사가 공항에 보다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넓은 공간을 임대해서 고객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런데 공항 관리당국은 이에 반대하며 “죄송합니다. 공항 중립성은 큰 항공사나 작은 항공사나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규모의 직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Suppose a rich airline wants to buy extra space at the local airport so that it can hire more clerks and make its check-in lines shorter. Should we tell it, “Sorry, but Airport Neutrality requires that American Airlines and Southwest Peoria Air have the exact same amount of space at La Guardia”?

지런터 교수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큰 항공사가 공항에 직원을 많이 고용하고 더 넒은 공간을 임대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구글은 전 세계 곳곳에 훌륭한 서버센터(Server-Farm)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공항의 비유를 들자면 망중립성 훼손은 다음과 같다. 큰 항공사가 공항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를 매입하고, 공항에 이르는 하늘 공간을 구입한다. 그리고 타 항공사나 타 항공사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공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 길 돌아돌아 오는 국도를 이용하라고 하고,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공중에서 10바퀴 회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망중립성 훼손이다!

콜럼비아 대학교 법대 팀 우(Tim Wu) 교수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확산을 막기위해서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의 필요성에 적극 동조했던 보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논거를 들어 구글과 버라이즌의 이번 합의를 비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경쟁 왜곡’이다. 가장 훌륭한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아니라, 통신업체와 가장 멋지게 협상(이라 쓰고 매수라고 읽어도 좋다)하는 업체가 시장에서 성공하게 된다. 과거부터 이런 규칙이 인터넷 시장에 적용되었다면 오늘 날 우리가 혁신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아마존, 구글 그리고 스카이프 등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The greatest danger of the fast lane is that it completely changes competition on the net. The advantage goes not to the firm that’s actually the best, but the one that makes the best deal with AT&T, Verizon, or Comcast. Had there been a 2-tier Internet in 1995, likely, Barnes and Noble would have destroyed Amazon, Microsoft Search would have beaten out Google, Skype would have never gotten started — the list goes on and on. We’d all be the losers.

다시 말해 가장 보수적인 경제학 논리도 공산주의보다 ‘경쟁 왜곡(competition distortion)’을 반대하기 때문에, 망중립성 훼손은 논리적으로 설 자리가 없다.

다소 온건한 보수 신고전학파에서도 이번 합의문은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이번 합의문의 핵심 중 하나는, 인터넷을 두 가지 종류로 구별하겠다는 것이다. (1) 지금까지의 유선 인터넷과 (2) 모바일 인터넷이 그것이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망중립성이 더이상 주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KS라는 이름의 한국 통신사업자 있다고 가정해 보자. KS는 매년 각각 500억 원을 받는 댓가로, 유튜브(YouTube)와 훌루(Hulu)가 HD급 화질의 동영상을 끊김 현상없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모바일 망 사용권을 허가한다. (1) KS는 매년 추가 수익 총 1000억 원을 보장하는 고급 모바일 인터넷 망구축에 더욱 더 많은 기업 자원을 투자할 것이고, 이는 KS가 소유하고 있는 유선 인터넷 망에 대한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자원의 합리적 배분, 다시말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다. (2) 유튜브(YouTube)와 훌루(Hulu)는 HD급 화질을 개선하여 보다 큰 용량의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를 개발한다. 이유는 후발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이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유선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장을 형성하고, 두 개의 시장이 서로 다른 이윤을 보장할 경우, 개별 기업은 이윤이 높게 보장되는 곳에 자원을 집중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높은 시장진입장벽은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혁신을 급격하게 축소시키고 독과점의 출연을 가능케할 위험요소를 이번 구글과 버라이즌 합의문은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두 기업의 합의문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해 보자. 앞으로 2-3년 안으로 유선 인터넷, WiFi 형식의 무선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구별(!)은 일상생활에서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거리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산책길에서든 ‘연결’이 중요하지, 그 연결의 수단이 무엇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를 구별하겠다는 시도와 유선 인터넷과 모바일 인터넷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통신사업자와 거대 인터넷 기업의 ‘이윤극대화’의 관점이지 결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한편 통신사업자는 ‘미래 기술 투자’를 이유로 망중립성 훼손을 주장할 수도 있다. 통신사업자가 있기에 소비자는 훌륭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멋진 서비스를 위해 이 정도는 소비자가 참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크게 잘못되었다. 통신사업은 전통적인 자연독점 영역이다. 따라서 국민이 정부에 위탁하여 통신사업자의 사업권을 ‘일시적으로 허가’한 것이다. 한국 통신시장을 미국, 일본, 중국 또는 유럽 거대 통신기업에게 열어주지 않은 것은 국민의 선택이다. 한국 통신기업은 국민의 유익에 복무함으로서 자신의 기업이윤을 창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거부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통신사업 권한을 반납하면 된다. 왜? 인터넷의 주인은, 국민 모두와 어려운 조건에서도 멋진 서비스를 새롭게 시작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기업 모두이지 일부 소수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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