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7일 낮 12시 27분. 백령도 천안함 사고 지점 북서쪽 200m 지점. 약간 구름이 끼었지만, 바다는 평온했다. 315마력의 6톤급 어로작업선 해덕호 선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류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기 4시간째. 종이컵을 배 밖으로 던져보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들어간다.”

대기 중이던 잠수부 2명이 곧바로 입수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최문순 민주당 의원의 눈빛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단 한 번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 7일 백령도 천안함 사고발생해역 인근에서 알파잠수기술공사 잠수사들이 침몰선 조사를 위해 잠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잠수부들이 입수한 후 15분쯤 됐을까. 배 측면에서 잘게 부서지는 공기방울들이 보인다. 잠수부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두 잠수사가 수면으로 솟구쳤다.

“확인됐어요!”

천안함 사고 지점 인근에서 발견된 침몰선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수중카메라로 촬영까지 한 것이었다. 지난 4일 동안의 탐사가 매듭을 짓는 순간이었다. 4일 동안의 배멀미가 한 순간에 싹 가시는 순간이기도 했다.

좌초 흔적 찾으려다 현장 침몰선 육안 확인 수중 촬영 성공 ‘쾌거’

4일 아침 8시, 지하철 인천역 앞. 원래는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지만,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최문순 의원과 이종인 대표로 꾸려진 천안함 민간조사단 일행이 백령도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하루 전날. 몰랐으면 좋았겠으나, 어쩔 것인가? 대신할 다른 사진기자도 없었다. 4700cc 빨간색 닷지 다코타 픽업이 나타났다. 이종인 대표가 정확하게 약속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항상 그렇듯 그는 밝고 거침없이 인사한다. 두 번째 만남일 뿐인데 한참 알고 지낸 것 같다. 인천여객터미널에는 이미 최문순 의원과 타 매체 기자들(한겨레, 오마이뉴스, 통일뉴스)이 기다리고 있었다.

   
  ▲ 파도가 거세 해저탐사를 못한 5일, 조사단은 백령도 기상대와 지자연의 지진관측소 6곳을 돌며 사고당일의 낙뢰와 지진파, 공중파 등 천안함 사고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수집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날부터 서해에서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된다는 소식이 방송을 타서인지 여름휴가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터미널에 여행객은 많지 않았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군인들,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 받아 가는 해병대 신병들도 눈에 띄었다.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 백령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도 꽤 됐다.

 

   
  ▲ 백령도로 가는 동안 객실 안 TV에서는 천안함침몰인근 해역에서 실사격을 포함한 대규모군사훈련이 실시될 것이라는 뉴스가 긴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4일자 조선일보를 읽고 있는 한 승객. 이 날 조선일보에는 전쟁기념관에서 시뮬레이션 권총사격을 하고 있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사진을 포함해, 북 대공미사일 DMZ전진배치, 북 상류층 본격 탈북행렬 등 남북 위기상황을 고조시키는 기사들이 많았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해병대 장병들이 백령도행 여객선 객실에서 곤하게 잠들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 조사의 목표는 천안함 사고 해역 인근 낮은 수심에 있는 암초들에서 좌초의 흔적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벌써 세 번째 백령도 조사에 나선 최 의원과 이 대표는 베테랑 동료 기자 같은 분위기다. 쾌속선으로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까지 가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세번째 조사 최문순 의원-알파잠수 이종인 대표 ‘진실 올인’ 닮은 꼴 두 사람

   
  ▲ 조사단의 두 축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오른쪽)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첫날(4일)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해덕호 위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이치열 기자truth710@  
 
가볍게 점심을 먹고 곧바로 조사 현장으로 떠났다. 해덕호 장세광 선장이 반갑게 맞는다. 천안함 함미를 발견한 것이 바로 장선장이다. 그도 어느 새 조사단의 일원이 된 듯 했다. 최 의원은 앞선 두 차례의 조사에서 얻은 정보들을 꼼꼼히 기록한 해도를 기자들 앞에 펼쳐놓고 조사단의 활동 계획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마치 취재 현장을 앞둔 기자와도 같았다. 피는 어쩌지 못하는가 보다. MBC 사장을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까지 됐지만, 브리핑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카메라출동 때의 기자 최문순, 연평해전 때 치밀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사건담당 데스크 모습 그대로였다.

최 의원과 이 대표의 인연도 그렇다. 최 의원은 천안함 사고 발생 당시 집에서 우연히 MBN뉴스를 보다가 인터뷰하는 이종인 대표를 처음 봤다고 한다. 좌초설을 제기하는 이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 워낙 명확하고 믿을만해서 ‘아 저렇게 사고가 났구나. 곧 진상이 파악되고 종결되겠구나’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고 제대로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천안함 특위 위원으로 신청을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회의원이 된 후 처음으로 다른 정당과 의원들에게 로비까지 했다.

그런 점에서 최 의원과 이 대표는 많이 닮았다. 무엇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또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천안함의 ‘진실’에 올인 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현장 체질도 닮은 꼴이다. 이종인 대표는 이전 조사 때 표시해 두었던 곳에 다다르자 맨 먼저 날렵한 동작으로 바다에 뛰어든다. 몇 분 후 이 대표와 잠수부들이 물위로 떠오른다. 센 조류 때문이다. 잠수는 밀물과 썰물이 서로 바뀌는, 정조 시점이 적기다. 조류가 가장 잠잠하기 때문이다. 또 바람이 없어 파도가 잔잔해야 한다. 2박 3일로 한정된 조사 기간과 준비해 간 공기통, 배를 빌리는데 들어가는 비용, 잠수사들의 체력, 날씨….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 잠수사들은 빠른 조류와 탁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5회 이상 수심 40여m의 바닷속을 오르내리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센 조류 때문에 잠수 실패, 어군탐지기에 배 형태 ‘뚜렷’…발칵 뒤집힌 국방부 ·언론사

서너 차례 잠수는 계속 됐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때 장 선장이 어군탐지기로 사고 해역 가까운 곳에서 100m 길이의 침몰선을 발견했다. 기자들과 조사단 모두를 전율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어군탐지기에 배의 형태가 명확하게 보였다. 그날 밤 미디어오늘은 침몰선의 존재를 인터넷판에 1보로 띄웠다. 서울의 국방부와 언론사들이 발칵 뒤집혔다. 국방부는 부랴부랴 일제시대 때 침몰한 상선이었다며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최 의원과 이 대표의 휴대 전화는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언론사의 확인전화로 불통이 될 지경이었다. 천안함 보다 큰 침몰선의 존재는 그 자체가 천안함이 어뢰 피격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 4일 오후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침몰장소 인근에서 해덕호 장세광 선장이 길이 100m에 달하는 침몰선을 어군탐지기로 찾아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조사단의 가장 1차적인 목표는 침몰선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됐다. 하지만 바다는 좀처럼 그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초 일정으로 잡았던 2박 3일의 마지막 날인 6일(금요일) 오후 조사를 마치고 장촌 포구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1시 50분 인천행 여객선은 이미 떠난 후였다. 조사를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거둔 후원금을 모두 쏟아부은 최 의원이었다. 이 대표 또한 잠수사 4명을 비롯해 모든 장비를 자비로 부담한 터였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3일간 뱃멀미에 넌더리가 난 기자들이었지만, 이들 앞에서 차마 돌아간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4일째인 토요일 새벽 6시 30분, 배를 띄웠다. 인천행 막배 시각(오후 1시 50분)에 맞추자면 이 또한 바쁜 일정이었다. 다행히 날씨는 지난 3일 보다 좋고 파도도 잔잔하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밧줄에다 배를 정박하는데 쓰이는 큰 닻을 매달아 내려 침몰선에 거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군탐지기로 위치를 확인한 후 장 선장이 신중하게 침몰선의 측면에서 90도 방향으로 배를 움직인다. 밧줄이 팽팽해진다. 걸렸다! 이제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서 어떤 배인지 확인하면 끝난다.

   
  ▲ 최문순 의원과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가 조사 마지막날인 7일 해덕호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배멀미를 견디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잠수사들은 빠른 조류와 탁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5회 이상 수심 40여m의 바닷속을 오르내리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첫 잠수를 시도했으나 조류가 빠르다. 잠수사들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15m 정도 들어갔다가 올라온다. 수온도 22도 정도로 낮다. 포기를 모르는 이 대표가 시계를 쳐다보며 장 선장에게 조류가 잠잠해지는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적어도 12시는 넘어야되요!”

침몰선 위치에서 장촌포구까지 35분, 조사단 각자가 짐을 챙겨 나오는데 10분, 장촌에서 용기포 선착장까지 차로 10분…. 적어도 12시 30분에는 마지막 잠수가 이뤄져야한다.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은 것이다. 4일째 타는 배지만 배멀미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기자 몇몇이 번갈아가며 배 난간에 고개를 내밀고 물고기 밥을 줘가며 조류가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 배편을 예매한 최 의원실의 김용철 보좌관이 12시 27분경 답답했던지, 아무 말 없는 이 대표를 다그친다.

“이제 결정해야 됩니다.”

종이컵을 집어 들어 배 밖으로 던져보기를 두 어 차례. 조류가 잠잠해졌다. 이 대표의 ‘입수’ 사인이 떨어졌다.

떨어침몰선 정체 확인 목표, 자비와 후원금 털어 마지막 시도
입수 후 15분 … 떠오른 두 잠수사 “확인됐어요!”

조사단은 이번에 원래 확인하려고 했던 좌초의 흔적을 지닌 암초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 의원과 이 대표, 그리고 취재기자들의 마음은 홀가분했다. 존재를 몰랐었던 침몰선을 발견하고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미궁 속의 천안암 사건의 작은 실마리 하나 찾은 것만으로도 자족할 수 있었다. 조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니까.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 5일 아침 백령도 장촌 용트림바위 앞 400m지점서 등장한 4600톤 규모의 상륙함 '고준봉호'. 민간인 참여자들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천안함 해상 추모제를 벌였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선 조촐한 자축파티가 벌어졌다. 컵라면과 소주, 과자가 전부였지만, 그 어느 성대한 만찬 못지 않았다. 4일간의 배멀미로 인한 피로, 뙤약볕으로 익어버린 얼굴과 팔다리에도 불구하고 기자들 또한 이번 조사단 동행취재를 통해 현장취재의 중요성과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는 끈기의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민주당 최문순 기자와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기자가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인천항에 도착하는 배 안의 TV에선 내일도 백령도에서 포사격훈련이 계속 될 것이라는 뉴스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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