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노조가 파업중단을 선언하자 조합원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명박 정부 지난 2년 반, 사장 교체 2년 만에 들고 일어선 이들이었다. 싸우겠다고 나선 데엔 '정권의 방송 KBS'라는 냉소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권력에 눈치안보는 공정한 방송 만들어보겠다고 이들이 깃발을 꽂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파업 중단을 선언한 29일 이들은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참아뒀던 울음을 터뜨렸다.

KBS 새노조는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이 담긴 단체협약안을 체결하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로 시작된 파업에서 '단협 성사를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는 작은 문구 하나를 따냈다. 이들이 흘린 눈물에는 그런 작은 성취와 함께 지난 2년 동안의 인고의 세월이 담겨있었다.

29일 오후 엄경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파업 정리발언을 하러 단상에 오르는 순간 많은 조합원들은 격려의 함성을 터뜨렸다. 엄 본부장부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 본부장이 파업 잠정중단 결의문을 낭독하고 공식적으로 파업 종료를 선언한 뒤엔 이른 바 '개념광장'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서울 여의도 KBS 신관은 울음바다가 됐다. 껴안고 펑펑 우는 이부터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이까지 눈가에 눈물이 맺히지 않은 조합원이 없었다.

   
  ▲ 한 막내 KBS 아나운서가 29일 KBS 새노조의 파업 중단 선언과 함께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치열 기자  
 
한 막내 아나운서는 선배인 오태훈 아나운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이광용 아나운서, 정세진 아나운서, 홍소연 아나운서도 따라 울었다. 사회를 본 이재후 아나운서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누구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취재 보도해야 할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 노조 비대위 조직국장을 맡고 있는 성재호 기자를 비롯해 김경래 노보 편집국장, 정창화·정윤섭 기자 등도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펑펑 울게 했을까.

오태훈 KBS 아나운서는 "2년 동안 많이 쪽팔렸다. 그런데 이제 조금한 것같다. 이렇게 (KBS가 공정하고 독립된 방송이 돼야 한다고 여기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시청자와 동료, 나아가 나 자신에게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 파업 중단을 선언하며 끝내 눈물을 참지못한 엄경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 이치열 기자  
 
정세진 KBS 아나운서도 "처음부터 시작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동료와 함께 끝까지 같이왔다는 생각에 든든했다"며 "특히 아나운서는 소수인데다 (찍히는) 대상으로 노출되다보니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이번 파업을 통해 강해진 것같다. 힘을 얻었고, 옳은 결정을 한 것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이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게 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정창화 기자는 "30일간 동료와 함께 했다는 감격과 행복,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완벽한 승리라 말씀 못드리는 아쉬움의 눈물"이라고 말했다. 정윤섭 기자도 "이런 행복한 순간이 또 언제 올까, 동지애가 넘친 한달이었다"며 "앞으로 진정한 KBS를 만드는데 기반이 될 행복한 눈물"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함께하다 헤어지니 아쉬워서가 아니었다. KBS가 이러면 안된다고 말하고, 바로잡고, 싸우기까지 그간의 세월을 견뎌내기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 이치열 기자  
 
   
  ▲ 이치열 기자  
 
   
  ▲ 엄경철 KBS본부장과 부등켜 울고 있는 KBS 조합원들. 이치열 기자  
 
   
  ▲ 파업종료 선언 후 울음을 터뜨린 조합원을 동료들이 위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2년 동안 억눌려왔던 응어리를 풀었던 한달이었고,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데 대한) 감격과 다시 헤어진다는 데 대한 섭섭함이 뭉클해지게 한 것 같다"며 "조합원들의 이런 정서적 교류는 아마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엄 본부장은 이번 파업에 대해 "우리도 몰랐던 우리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희망을 키운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이런 정신과 결기로 일터로 돌아가면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 본부장은 단체협약의 체결 시기에 대해 "적어도 한두달 내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그런 확신 때문에 파업을 잠정 중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KBS 새노조의 정세진 조합원(왼쪽.아나운서)이 울음을 멈추고 후배 조합원들과 함께 촬영에 응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엄 본부장은 수신료인상에 협력하겠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과 관련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오래전부터 밝혀왔던 것이며 중요한 것은 수신료 인상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건 바로 공영방송에 가해지는 사회적 비판에 사측이 답을 내놓아야 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대안을 내놓으라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KBS본부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정권 홍보 프로와 특정 출연자 배제 행위에 응하지 않으며 △부당한 징계에 의연히 맞설 것이라고 결의했다.

KBS본부는 이번 파업을 "'공영방송 KBS 살리기'가 미완의 과제"라고 선언하며 "앞으로 수신료를 내는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바로 선 공영방송 만들기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29일 파업중단 현장에서 조합원이 즉석에서 현수막에 쓴 글들. 이치열 기자  
 
다음은 KBS본부가 29일 파업 잠정중단을 선언하는 결의문 전문이다.

<파업 중단 결의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파업 잠정 중단을 맞아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앞으로 제작현장에서 벌어지는 편향되고 부당한 지시를 단호히 거부한다.

둘, 특히 일방적인 정권 홍보 프로그램이나 관제 쇼, 특정 출연자를 배제하는 행위 등 지금까지 KBS의 공영성을 심각하게 침해한 부당한 지시에 일체 응하지 않을 것이다.

셋, 우리는 이번 파업으로 인한 어떠한 부당한 징계에 대해서도 의연하게 맞선다.

넷, 우리는 이번 파업 정신인 '공영방송 KBS 살리기'가 미완의 과제라고 선언하며 앞으로 수신료를 내는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바로 선 공영방송 만들기에 더욱 매진한다.

위와 같은 결의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파업과 제작거부 등 강력한 투쟁을 재개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2010년 7월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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