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리비아의 한국인 목사 구속 사건이 한국 외교관의 간첩활동 때문인 것으로 리비아 현지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우리 외교 당국이 이 사건을 민간인의 선교 활동으로 인한 갈등으로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는 이미 널리 보도된 사실이지만 국내 언론이 침묵하면서 우리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외교관의 간첩활동은 상대 국가와 외교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외교 당국은 축소·은폐하기에 급급했고 언론은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국내 언론은 정부 발표를 단순 인용해 한국인 목사가 선교활동으로 구속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거나 양국 관계가 악화돼 한국인 목사가 구속된 것이라는 등 사실상 오보를 계속 내보내왔다. 지난달 24일 리비아 영사관 대표부가 영사 업무를 중단하고 귀국한 이유에 대해서도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 한국-리비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상득 의원이 지난 6일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를 방문했으나 당초 예정과 달리 리비아 최고위층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앗샤르끌 아우싸트 등 아랍 언론들에 따르면 리비아 정부보안 당국은 지난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이 리비아 정부요인 정보수집, 무아마르 알 가다피 국가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 가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내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한국정부에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비아는 이 직원이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 수사를 벌였으며, 우리 정부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국에서 리비아 대표부 직원들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리비아 대표부 폐쇄가 아니라 일시 업무 중단이라며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업무가 재개될 것이라고 해명해 왔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보도다.

   
  ▲ 현지 언론 캡쳐 화면.  
 
리비아 언론에는 또,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 대한 보도도 나온다. 이 의원은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이명박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를 방문했지만 당초 예정과는 달리 리비아 최고위층을 만나지 못하고 귀국했다. 이 의원의 리비아 방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리비아-한국의 우호증진과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은 한국 외교관의 간첩활동으로 인한 양국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이를 풀어보기 위한 대통령 특사였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는 이 의원을 문전박대할 정도로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이 의원이 출국한 다음날 간첩 혐의를 받고 있던 신원미상의 외교관을 추방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리비아가 이 외교관의 간첩활동이 한국 정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정보를 취합하는 내용들은 주로 리비아에 우리 기업이 사업계약을 따내도록 돕는데 국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리비아에서 금기영역으로 알려져 있는 가다피 국가원수의 원조기구와 아들이 운영하는 조직 등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정보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비아 당국에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고 경제적 우호가 두터운 이 대통령 특사를 냉대할 정도로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현지 언론들은 이 첩보활동이 한국정부를 위한 활동이었는지,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캐고 있으며 외교관 추방으로 종결된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관측했다. 이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25일자(한국시각) 아랍 언론에는 한국 대표단이 조만간 리비아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기사까지 실렸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리비아인 직원도 간첩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어 외교부의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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