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이냐. 민주진영이냐. 이재오를 선택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면서 이 정치는 더 이명박스러워 질 것이다.”

지난 23일 오후 7시45분 서울 연신내역 물빛공원. 서울 은평을 재보선에 나선 장상 민주당 후보는 이명박 정부 2인자인 이재오 후보를 꺾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는 실세 중 실세인 인물이지만, ‘읍소 작전’으로 주민 표심을 파고들었다.

탄탄한 조직력과 선거 전략까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선거 중반 우위를 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야당은 분열과 대립 갈등으로 야권 지지층의 비판과 냉소를 자초했다. 꺼질 것 같았던 단일화의 불씨는 그 지점에서 다시 타올랐다.

야권은 다시 ‘절박함’을 말했다. 이날 연신내역 물빛공원 현장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야 3당이 은평을 합동 유세를 펼친 공간이었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면서 협력을 해야 하는 어색한 풍경이었지만, 야권은 ‘절박함’을 표현했다.

   
  ▲ 민주당 장상, 민노당 이상규, 참여당 천호선 후보가 23일 오후 은평구 연신내역 거리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야3당은 단일화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여론조사에 착수, 25일 단일후보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  
 

첫 번째 합동유세 현장이었지만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다수의 선거운동원들이 저마다 자기 후보를 열렬히 성원했지만, 다른 후보의 유세 때도 박수를 쳐주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이었다.

열기가 조금씩 달아오르면서 유동 인구가 많은 이곳은 시민들도 하나, 둘 발걸음을 멈춘 채 야권 후보들의 유세를 지켜봤다. 야당 후보들은 시차를 두고 차례로 유세를 진행했다. 첫 번째 주자는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였다.

지금은 경쟁하는 관계이지만 야3당 후보들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하나의 무대에 올라 공동 유세를 펼쳤던 관계이다. 이상규 민주노동당 후보는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운동원이었고, 찬조연설자였다.

천호선 창조한국당 후보 역시 한명숙 후보 당선을 돕고자 열성을 다했다. 장상 민주당 후보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서울시장에 당선시키고자 최고위원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상규 후보는 그 당시 경험과 기억을 강조했다. 진정성을 얘기했다. 그는 “민주당이 서울에서 한 석도 양보하지 않아 4+4 야권협상 깨졌을 때, 꺼진 야권협상을 살린 것이 민주노동당이었다”면서 “서울시장 20% 격차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마저 등을 돌릴 때, 광화문 유세를 진행하여 0.6% 박빙 선거를 만든 것이 바로 이상규였다”고 설명했다.

이상규 후보는 다른 후보에 대한 비판보다 격려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은평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를 잡아야 한다. 이재오 후보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야권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오늘 단일화의 큰 원칙에 합의하고 합동유세를 하게 되어 두 정당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상규 후보는 “은평의 꺼져가던 선거, 야권승리를 위해 뭉쳤다. 반드시 승리한다. 이상규가 앞장서서 희망을 만들어나가겠다”면서 지지를 다짐했다.

이상규 후보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장상 민주당 후보는 개그맨 김용씨의 소개와 함께 유세를 시작했다. 장상 후보는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이 다 휩쓸고 있을 때 은평구민은 놀랍게도 한나라당 후보를 낙마시켰다. 그때 모든 국민들은 경이로운 은평구민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민주주의 정신과 비판정신이 은평구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평구가 정치1번지로 등극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장상 후보는 18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쓴맛을 안겨줬던 은평 주민의 매서운 민심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그는 “ 민주진영은 더욱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어제 역사적 합의를 했다. 야권 후보단일화라는 역사적 합의를 했다. 이것은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거보”라고 말했다.

장상 후보는 “후보단일화의 뜻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은평에서 이재오를 물리치고, 민주진영이 승리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여러분 이 명령을 받들어서 승리로 나갑시다. 은평은 승리하고, 대한민국은 승리하고, 장상은 승리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천호선 국민참여당 후보 역시 “대한민국 전체가 은평을 주목하고 있다”면서 “은평을 주민의 단일화 요구가 어제 결실을 봤다. 야3당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기로 했다”고 단일화 소식을 알렸다.

천호선 후보는 “마지막 고비는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내는 것이다. 누구인가”라며 자신의 지지를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천호선 후보는 “민주당의 역할 존중한다. 제1야당 역할을 인정한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정당 역할도 인정한다”고 다른 당을 평가했다.

천호선 후보는 “우리는 경쟁하는 형제”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을 모신 것처럼 국민을 모시겠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경쟁하는 협력관계로 방향을 재정립한 야 3당 후보의 유세는 오후 8시26분께 마무리됐다. 장상 후보와 천호선 후보는 함께 물빛공원 ‘은평주민 야권 단일화 단식농성장’을 방문했다.

은평 주민들은 야권이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재오 후보를 꺾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날은 단식 4일째 날이었다. 단식을 벌이던 최헌국 목사는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현장에 있던 ‘단일화 꽃’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헌국 목사는 “단일화 꽃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의 상징 색깔이 모두 담겨 있다. 은평을 주민의 단일화 요구를 실천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야당 후보들은 다시 절박함을 호소했다. 유세 현장에는 ‘MB 아바타 이재오’라고 쓰인 손간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이재오 후보는 탄탄한 조직력과 야권 분열의 반사이익으로 유리한 선거 상황을 만들었다. 반면, 야당 후보들은 공동 유세라는 카드를 펼치면서 분열이 아닌 연대, 협력의 관계를 통해 막판 역전승을 기대하고 있다.

야당 후보들은 이재오 후보를 꺾지 못한다면 4대강 공사는 더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절박함을 호소했다. 야권 분열에 따라 냉랭했던 야권 지지층도 서서히 결집하는 분위기다. 야당 후보의 한 핵심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이재오 후보가 앞서고 있지만,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는 순간 박빙 구도로 갈 것”이라며 “결국 당일 투표율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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