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다시 가열되는 분위기다. 대용량 데이터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다.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무임승차라며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있고 콘텐츠 사업자들은 네트워크를 개방하라는 원칙론으로 맞서고 있다. 해외에서도 논쟁이 한창이지만 국내와 해외는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의 핵심 쟁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은 2006년 9월 LG파워콤이 지금은 SK브로드밴드로 바뀐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 서비스를 차단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TV는 하나로텔레콤이 야심차게 준비한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였다. 문제는 하나로텔레콤이 아닌 다른 인터넷 회선을 쓰는 이용자들이 하나TV를 이용할 때다. 이를 테면 돈은 하나로텔레콤이 벌고 LG파워콤은 네트워크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물론 이용자 입장에서는 달마다 꼬박꼬박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내 맘대로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LG파워콤 입장에서는 이런 대용량 서비스가 늘어나면 네트워크 속도가 느려지고 추가로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네트워크는 과연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정액 요금만 내면 이용자들이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든 그냥 내버려 둬야 하는가.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LG파워콤에 이어 케이블 채널 사업자들까지 하나TV 서비스를 차단하면서 논쟁은 더욱 확산됐다. 하나로텔레콤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라고 반발했고 다른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이용약관에 명시된 합법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정보통신부가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하나로텔레콤은 비용 부담을 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맞섰다. 눈치를 보던 KT는 메가패스TV를 메가패스 이용자들에게만 서비스하기로 했다.

2008년 7월 시범 사업을 시작했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오픈 IPTV도 논란이 됐다. KT나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등과 달리 다음은 아예 네트워크가 없다. 만약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접속을 차단하면 다음은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이 그해 12월 IPTV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언제라도 다시 촉발될 수 있는 문제다.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트래픽 부담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VoIP(인터넷 전화) 접속 차단도 논란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로 스카이프를 이용할 수 있다면 가입자들끼리 무제한 무료 통화도 가능할 텐데 대부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스카이프 접속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물론 데이터 요금은 들겠지만 통화 요금 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그나마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이용할 경우 데이터 요금조차 들지 않는다. 통화료 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미국에서도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4월 미국 콜롬비아 특별행정구 항소법원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네트워크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콤캐스트를 제재한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해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콤캐스트는 지난 2008년 파일 공유 사이트인 비트토런트의 접속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춰서 제재를 받은 바 있다. 법원의 판결은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FCC는 네트워크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과도한 간섭이라고 판단했다. 네트워크 사업자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네트워크 중립성을 지지하는 반면, 공화당은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법원 판결 이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네트워크 중립성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열렸던 망 중립성 포럼에서는 찬반 양론이 거세게 충돌했을 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국내 최초로 네트워크 중립성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으나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입장을 확인하는데 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공성환 KT 상무는 "포털 사업자나 콘텐츠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망을 이용해 수익을 내면서 아무런 비용 부담을 치르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규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희수 연구원은 "2002년에는 KT의 시가총액이 NHN의 48배였는데 지난해에는 1.3배까지 좁혀졌다"면서 "대규모 투자를 하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해마다 수익성이 줄어드는 반면 포털과 VoIP, VOD 사업자들의 수익성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네트워크 중립성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설비 투자 유인을 꺾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거의 아무런 규제가 없는 미국과 온갖 규제가 뒤섞여 있는 우리나라는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무소불위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는 네트워크 사업자가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모든 결정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다이얼패드가 왜 실패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스카이프보다 훨씬 빨리 인터넷 전화 사업을 시작했던 다이얼패드는 KT를 보호하려는 정보통신부 때문에 국내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전 이사는 "여전히 방통위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 이전에 방통위가 규제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IPTV나 VoIP를 차단하느냐 마느냐 정도로 좁혀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이동통신회사들이 휴대전화 와이파이 접속을 차단하거나 네이트와 매직엔 등으로 무선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는 등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결정돼 왔던 걸 부정하기 어렵다. 뒤늦게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중립성 이슈를 들고 나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네트워크 중립성 논쟁이 처음 거론되던 때는 공유재로서 네트워크의 가치와 콘텐츠 사업자의 권리를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비용 부담을 분담하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냥 시장에 맡겨두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지만 방통위가 네트워크 사업자들을 감싸고 도는 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을 확립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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