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완행열차처럼 마지막에서야 도착한다."

스탈린 시대 구 소련 시인의 시구이다. 노근리 사건처럼 이 시구가 잘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다. AP통신 서울지국 최상훈 기자는 9월 30일, 미국이 50년 7월 한국전 당시 400명 가량의 한국양민을 집단학살한 일명 ´노근리 사건´에 대한 미국 작전명령서 등 공식문서를 최초로 확인 보도했다.

이 기사의 반향은 대단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30일 코언 국방장관에게 진상조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고 미 육군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군자료 검토와 참전군인 면담작업 등을 통해 진상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NBC는 급히 취재팀을 한국에 보내기도 했다.

"작년 4월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노근리 사건 기사를 보고 취재에 들어갔고 참전 미군 증언과 관련 문서를 확보,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지 오연호 부장이 한겨레에 썼던 <노근리와 AP와 사대주의> 칼럼에서 "이미 노근리 사건 등은 한겨레 말 등 한국언론에 의해 보도됐고 AP는 단지 한국기사를 깔끔하게 마무리를 한 것이다"는 주장을 일면 긍정한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한국언론처럼 주민들의 증언만을 가지고 기사를 썼다면 AP통신은 자신의 기사를 실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갑과 을이 있으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만 기사요건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의 보도내용은 노근리학살사건대책위원회 정은용 위원장이 쓴 책에서 조금도 진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가해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우선 한국정부의 국방문서연구위원회 등을 조사해 미군 제1기갑사단이 당시 영동지역에 주둔했음을 확인했고 AP본사의 챨스 헨리, 마샤 맨도자 기자와 함께 미국정부문서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또 정보공개법대로 미 국방성의 참전용사 명부를 확보하고 전역군인들 수백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50년전의 사건을 물어봤다. 12명의 참전군인이 노근리 학살사건을 증언했다. 50년만에야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는 AP가 한국언론보다 취재에 유리한 점을 인정했다. 아무래도 미국인들이 정보공개법에 근거, 정부문서를 좀더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시간에 쫓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취재를 위해 미국의 두 기자와 참전 군인들과 수백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을 정도로 공을 들였고 미 문서보관소의 박스 수백개의 봉인을 최초로 풀 정도로 취재에 열의를 보였다. 그를 비롯 3명의 기자는 올해 퓰리처상을 받을 거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정부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노근리 주민들은 정부의 무관심에 깊이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차원에서 진상규명의 의지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을 처벌하고 배상을 받는 것은 현재 법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과 긴밀한 협상도 필요하다.

그러나 50년 동안 정부차원에서 노근리 사건이 거론됐던 것은 김영삼 정부때 단 한번 뿐이었다. 그것도 학살 현장에 직접 내려온 것이 아니라 미군측에 공문으로 사실여부를 확인, "노"라는 대답을 얻은 것이 고작이었다.

비슷한 몇건의 미군 학살행위를 계속 취재하고 있는 그는 한국언론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유사사건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미국의 추후 행동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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