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씨가 "정부가 북한에 화를 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야당을 찍었다"는 기상천외한 분석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씨는 "인터넷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최면, 심하게 말하면 집단사기, 집단선동"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인터넷 문화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인터넷으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충격적이었던 것은 정부 여당이 선거 패인의 큰 원인을 천안함 역주행이라고 분석한 것"이고 "이명박 정권의 독주는 다음 원인이라는 것"이라면서 "막막하더라", "울적해져 대여섯 번 술을 먹은 이유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쏴서 46명이 죽었는데도 그것에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역풍이 불었다고 하니 북한이 때리는 대로 맞고 참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그런 나라는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아니다, 그런 대한민국은 나라가 아니다"고 최근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력감이 짓누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씨는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세계 때문이라고나 할까, 나는 우선 월드컵 열기가 이해 안 된다"고 말했다. "가령 히틀러 시대의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결국 나치로 끝났고, 중국의 문화혁명 때도 수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였다는 거다. 한국에서도 2002년에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월드컵 열풍을 나치즘의 집단광기에 비교하기도 했다.

   
  ▲ 소설가 이문열씨. ⓒ노컷뉴스.  
 
이씨는 또 "월드컵 열기가 효선·미선 추모 촛불 집회를 거쳐 결국 대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그런 거 생각하면 이번에는 뭐가 오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에 대한 불안감일까.
2001년 낙선운동을 벌였던 총선시민연대를 홍위병으로 비유해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씨는 인터넷에 대한 반감이 뿌리가 깊다.

이씨는 시민단체들이 자신의 책을 모아서 태우고 불매운동을 벌인 것과 관련, "내 소설에 대한 장례식은 소설가인 나에 대한 장례식이나 다름없다"면서 "당시 일을 통해 그들의 행동이 홍위병의 그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씨는 2008년에는 "촛불시위는 집단난동이고 이러한 내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인터넷의 '쌍방성'에 대해 집단적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많은 사람이 '나도 저 사람처럼 똑같이 발언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신뢰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쌍방성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대다수는 일방적인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이씨는 "(인터넷의) 쌍방성을 누리는 사람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소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는 소수"라면서 "인터넷에서 발신자가 되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5% 정도며 이 5%와 나머지 95% 사이에는 10대 1이 아니라 100대 1, 1000대 1의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쌍방성을 믿기 때문에 나도 거기 끼일 수 있다며 신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흔히 인터넷이 집단지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오히려 집단최면이고 심하게 말하면 집단사기, 집단선동"이라고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심지어 "(발신자들이) 부메랑을 맞게 될 때 정화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흥기와 패퇴는 상당 부분 인터넷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씨는 "현재 인터넷에 적용되는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은 만들어질 때의 상황이 지금과 전혀 다르다"면서 "피해 법익의 크기가 다르고 속도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내 경우 인터넷으로 명예가 훼손됐을 때 매번 고소했다면 19번쯤 됐을 것"이라면서도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이런 격한 반응은 존경받는 소설가에서 하루아침에 '보수꼴통'으로 낙인찍혀 유례가 없는 '책 장례식'까지 치러야했던 오래 된 상처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패배를 정부가 북한을 비판한데 대한 반감이라고 해석하거나 인터넷 공간을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소수가 주도하는 공간이라고 평가하는 건 그 상처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씨의 이 같은 발언은 단순히 이씨의 불만을 넘어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비롯해 보수진영 전반의 혼란과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북풍이 몰아쳤는데 상당수 유권자들은 정부의 과도한 북풍몰이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진영은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씨는 광장의 젊은이들을 나치나 홍위병에 비교하면서 광장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켰다. 이씨는 광장의 문화가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불러왔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를 인터넷 문화의 폐해로 평가하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이씨가 인터넷의 역동성과 개방성, 참여의 문화에 느끼는 혼란과 불안감은 보수진영의 혼란과 두려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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