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드라마 다큐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것을 원하듯이 어린이 프로그램도 다양한 것이 중요하다."

데이비드 클리만(David Kleeman) 미국 어린이 미디어센터 회장은 "우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이 미디어센터는 어린이 방송과 관련한 조사, 연구 등을 하고 어린이 프로그램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서, 데이비드 클리만 회장은 이곳에서 20여 년 간 일해왔다.

데이비드 클리만 회장의 이같은 주장은 미국 방송의 문제를 직접 겪으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그는 "미국 방송사의 경우 정부쪽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프로그램의 위험 부담을 줄이며 안정된 소재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수학, 과학 등 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 인생 전반의 내용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결과 방송이 신뢰를 점차 잃고 있고, 신뢰를 잃을수록 이같은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클리만 회장은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관심이 많고, 미디어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새로운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미국에선 어린이 프로그램 정책과 관련해 △패스트 푸드 등 음식 광고 △비디오 게임 폭력 문제 등이 이슈가 되고 있고, 영유아만을 위한 '베이비 채널'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 지난 24일 서울 EBS를 방문한 데이비드 클리만 미국 어린이미디어센터 회장. ⓒEBS  
 

 

이에 대해 그는 "TV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며 자국 어린이의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제작자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느껴봐야 한다"며 "그렇게 아이들을 파악하고 이것을 교육적으로 녹여 내야 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밝혔다. 실제적으로 "놀이터 가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함께 놀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24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진행한 데이비드 클리만 회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그는 지난 23~24일 EBS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프로그램 페스티벌 '프리쥬네스' 서울 시사회 및 '한국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의 미래' 워크숍에 참석차 방한했다. 

-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의 실태는 어떤가.
"미국은 상업 방송이 먼저 생겨, 오락이 우선시 되고 있다. 경쟁이 심하다. 미국 방송사의 경우 정부쪽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프로그램의 위험 부담을 줄이며 안정된 소재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어느 한 방송사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레즈비언 엄마 커플이 잠깐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철회하려고 한 적이 있다. 또 미국의 공영방송의 경우 문맹률 퇴치, 수학, 과학처럼 주제가 평이한 것으로 하지 사회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섹스 교육, 죽음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사실 방송이 신뢰를 쌓지 못하면 민감한 소재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힘들다."

- 미국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관련 미디어 정책쪽 이슈는 무엇인가.
"세 가지 중요한 이슈가 있다. 첫째, 미국에선 어린이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스트푸드 등 음식 광고 논란이 있다. 둘째로, 비디오 게임의 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이슈가 되고 있다. 셋째로는, 영유아(0~2세)를 위한 미디어 채널이 필요한지 여부가 큰 화두가 되고 있다."

 

   
  ▲ 데이비드 클리만 회장. ⓒEBS  
 

 

- 베이비 채널 관련 이슈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베이비 채널에선 모빌이 움직이는 것처럼 단순한 음악·몸짓 등이 소개된다. 이에 대해 옹호하는 쪽에선 창의성 계발을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에선 바보상자라고 폄하하고 있다. 부모들 입장이 크게 나뉘고 있기 때문에 핫 이슈가 되고 있다."

- 베이비 채널이 시청률 면에서도 인기가 있나.
"인기가 있으니까 채널까지 만든 것이다. 실제로 영아들의 70% 이상이 TV를 보고 있다. 어떤 부모들의 경우엔 책임감 없이 아이들을 TV 앞에 방치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 반면, 7세 이상의 아이들의 경우 TV에 무관심하다는 연구도 있다. TV를 통한 아이들 교육에 대해 어떤 연구가 있나.
"미국의 경우 6세까지는 공영방송 PBS에 충실하지만, 7세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월트디즈니와 인터넷으로 옮겨간다. 재정적으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현재 PBS는 6세~11세의 경우 온라인 기반의 교육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해법으로 예전에 PBS에 논픽션 다큐 장르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안한 적도 있다. 디즈니가 에니메이션은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대항하라는 것이다."

-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수한 어린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어른들이 드라마 다큐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것을 원하듯이 어린이 프로그램도 다양한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실제로 나오는 프로그램도 제공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제작자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느껴봐야 한다. 일례로, 놀이터 가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함께 놀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파악하고 이것을 교육적으로 녹여 내야 프로그램이 재미있다."

 

   
  ▲ EBS는 지난 23~24일 국제 어린이 TV 페스티벌인 '프리쥬네스' 시사회를 열었고, 수십여 명의 국내 관련 제작진 및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EBS  
 

 

- 개인적으로는 어린이 프로그램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
"3주 후에 작가 Ellen Galinsky와 함께 어린이 프로그램 워크숍을 할 예정이다. Ellen Galinsky의 경우 최근 발간한 책(Mind in the Making: The Seven Essential Life Skills Every Child Needs)에서 어린이의 사회성 관련 7가지 원칙으로, 집중과 자제력(Focus and self control), 통찰력(perspective taking), 의사소통(communicating), 인맥 만들기(making connections),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도전(taking on challenges), 자율 학습(self directed learning)을 밝혔다. 이 7가지 원칙에 근거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 미국 사회의 반응은 어떤가?
"이슈를 던지는 입장이기 때문에, 예측은 어렵다. 다만,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관심이 많고, 미디어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어린이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데 타 프로그램보다 개방적이다. 아시아의 경우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에서 매년 어린이 프로그램 관련 회의가 있다. 나라마다 관련 아이템을 가지고 와서 테이블에 모으면 수백 개 프로그램이나 된다. 서로의 아이템을 공유하고 교환하며 새로운 혁신적인 주제를 논의하기도 한다."

- 한국은 어린이 프로그램의 경우 뽀뽀뽀 등 예능 장르 중심이다.
"전세계적으로 어디나 재정적 압박이 있어 제작 여건이 어렵다. 노래하고 춤추는 프로그램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란하게 만드는 것보다 어린이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국의 어린이 프로그램과 관련해 제안하고 싶은 점은?
"아침에 어린이들이 일어났을 때 TV 등을 보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체크한다. TV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문화 정체성을 고려하며 한국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 물론 예산 문제 때문에 외국에서 프로그램을 수입해서 보여줄 수도 있지만, 한국인에게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데이비드 클리만
미국 어린이 미디어센터 회장. 국제 어린이 TV 페스티벌인 '프리쥬네스'의 국제자문위원회 의장. 지난 2002년부터 1년간 PBS와 마클재단 후원으로 디지털 시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영방송의 역할에 관한 연구 활동. 관련 저서로 '어린이 방송 커뮤니티', '어린이와 미디어에 관한 안내서'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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