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국은 일본이 아니에요. 일본 속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죠. 바로 '재일'이라는 나라에요.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고 재일인이라는 존재를 널리 세상을 향해 알리는 것이 제 삶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 국적의 북한 국가대표 축구선수, 정대세 선수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모국은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니라고 말한다. '재일'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에도 없다. 재일 한민족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이 활약을 펼쳐 '재일'의 존재를 널리 알리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골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정대세의 국적은 한국이다. 많은 재일인들처럼 정대세는 일본에서 외국인이다. 일본에 재류하는 외국인들은 '외국인 등록법'에 따라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 중에 재일 한민족들은 국적을 조선이나 한국으로 표기한다. 일본은 북한과 공식적으로 수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국적은 인정되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건 북한이나 북조선이 아니라 남북 분단 이전의 과거의 나라 조선을 말한다.

   
  ▲ 인민 루니, 정대세 선수.  
 
일본이 패전하고 외국인 등록령이 발효된 1947년 일본에 있는 한반도 출신자들에게는 일괄적으로 조선이라는 국적이 주어졌다. 한국이라는 국적이 인정된 것은 1950년부터다. 재일인들은 조선이라는 국적 표기를 그대로 둘 것인지 한국으로 바꿀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조선이라는 국적을 고집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고 조국의 분단을 인정하지 않아 남과 북 어디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정대세의 아버지는 한국 국적의 재일 2세였고 어머니는 조선 국적의 재일 2세였다. 정대세는 아버지의 국적을 이어받아 한국 국적이 됐다. 많은 재일인들이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정대세의 부모는 정대세가 차별을 이겨내면서 재일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고 정대세를 민족학교에 입학시켰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흔들리지 않는 지축이나 신념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초급학교 시절에는 막연하게 나는 왜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본사람인데 왜 나는 적은 쪽의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하고 많이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 학력이나 직위도 소중할지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뿌리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신념이라고 생각해요. 그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더욱 강하게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 축구였죠."

정대세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인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일본인을 만날 때라고는 역 앞에서 서성거리는 일본인 고교생들과 싸움을 할 때 아니면 일본 학교와 축구 시합을 할 때 뿐이었다고 한다. 정대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북한 국가대표 선수로 뛰는 게 꿈이었다. 정대세는 조선대학교 재학 시절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발탁돼 J리그에서 뛰게 된다. 조선대 출신 첫 J리거였다.

정대세가 북한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한국 국적으로 외국인 등록이 돼 있었는데 한국 정부에 재외국민으로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지만 정작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FIFA(국제축구연맹)은 국적 증명을 여권으로 했는데 정대세는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도 여권을 발급 받지 않은 상태였다.

재일인들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다. 해외로 나갈 때는 재입국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이들의 재류를 인정하지만 사실상 무국적자 취급을 하고 있다. 남한이나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재일 한국인은 물론이고 재일 조선인들도 남한에서 내국민으로 인정을 받지만 남한에 입국하려면 1회용 임시 여권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북한은 이들을 해외 공민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대세는 다행히 남한 여권을 발급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FIFA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북한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북한은 조선 국적을 유지한 경우에만 북한 여권을 발행해 주는데 특별히 정대세에게 예외를 인정해 줬다. 정대세가 북한의 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쏟았던 것도 이런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이 북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재일인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축구를 한다.

드라마틱하기는 안영학 선수도 못지 않다. 한국 국적의 재일인인 정대세가 북한 국가대표 선수가 됐던 것과 달리 조선 국적의 재일인인 안영학은 북한 국가대표 선수였으면서 한국 K리그에서 뛰었다. 안영학 역시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랐지만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남한에 올 때는 여행증명서를 받아야 하고 북한 여권을 받아 북한 국가대표 선수가 됐지만 일본에 들어갈 때는 재입국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북한에 가면 '재일'이고 한국에 가면 '북'이라고 불리겠죠. 일본에서는 '자이니치'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아닐까요."

안영학이 K리그와 북한 국가대표 선수 양쪽을 뛰던 무렵에는 3개월짜리 여행증명서를 20번 넘게 발급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북한 여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J리그 알비렉스 니이가타에서 뛰던 무렵에는 판문점을 넘어 내려와 남북 친선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다.

정대세와 안영학은 존재 그 자체로 분단의 아픔을 드러낸다. 많은 재일인들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하나 된 조선을 꿈꾼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무국적자 취급을 받으면서 '자이니치(在日)'로 남기를 고집한다. 조선 국적이냐 한국 국적이냐는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오히려 남한과 북한의 체제를 부정한다. 이들은 '재일'이라는 정체성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묵묵히 차별과 냉대를 견뎌내면서 기꺼이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우리' 선수들은 60년을 이어온 남북 대치국면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체제와 이념이 다르지만 남과 북, 그리고 재일인들을 '우리'로 묶는 것이 무엇일까. 언제까지 이 소모적인 정전상태를 이어가야 하는가. 아직까지도 전쟁을 부르짖는 이들은 정대세의 눈물의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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