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이견을 제시하거나 못믿겠다는 인터넷상의 글에 대해 지방선거와 G20 정상회의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방송통신심의원회 등 유관기관에 심의·삭제를 요청하고 의법처리하는 엄단 방침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경찰은 포털사이트에는 천안함 허위사실 유포 등의 콘텐츠 모니터링 강화 및 삭제와 함께 경찰과 핫라인까지 구축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삭제요청을 받은 게시글 10여 건에 대해 포털사의 심의요청을 받은 한국인터넷자율기구는 '모두 불법성이 없으니 삭제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무모한 단속을 벌이다 망신까지 당한 것이다.

25일 경찰청이 최문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민주당 의원)에게 최근 제출한 협조 요청 공문에 따르면 경찰청은 '북한 어뢰의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던 지난달 20일 일선경찰서에 "천안함 사고조사결과 발표 직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사이버테러 감행 및 악의적인 유언비어 등 허위사실 유포확산이 우려된다"며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 콘텐츠 모니터링 강화 및 삭제 등 신속 조치 △사이버테러 조짐 등 수사가 필요한 사항의 경우 경찰 제보 등 긴밀 공조체제 유지 △야간 휴일 등 근무 공백시간대에도 핫라인 담당자 지정 및 연락체제 구축 등을 지시했다.

경찰청은 이런 이유에 대해 "다가오는 지방선거 및 G20에 지대한 악영향을 주고, 국가 위신이 실추되지 않"기 위함이라고도 적시했다.

 

   
  ▲ 경찰이 인터넷상 천안함 허위사실 유포글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공문. ⓒ최문순 의원  
 
경찰청은 또 일선 지방청 수사과에도 공문을 보내 천안함 침몰사건·4대강사업·5회 지방선거 관련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 행위 등 모니터링 강화' 및 의법조치를 지시했다. 경찰청은 공문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명백한 유언비어 콘텐츠의 경우 모니터링을 강화해 인터넷 포털, 방통심의위 등 유관기관과 협력, 신속 심의·삭제요청하거나 신속수사·의법처리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또한 매주 목요일에 실적을 보고하라고도 했다.

 

경찰청은 이밖에도 사이버 수사요원 946명을 총동원해 모니터링 및 단속을 실시하고 지방청과 경찰서에 전담요원을 지정해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하며 중한 사안의 경우 전기통신기본법 등 형사처벌 여부를 적극 검토해 반드시 검거토록 했다. 특히 중요사건 검거시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언론에 보도될수 있도록 하라고도 지시하는 등 '언론플레이'하는 방법까지 제시했다.

 

   
  ▲ 경찰이 인터넷상 천안함 허위사실 유포글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공문. ⓒ최문순 의원  
 
   
  ▲ 경찰이 인터넷상 천안함 허위사실 유포글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공문. 실적보고 양식. ⓒ최문순 의원  
 
경찰청은 이와 함께 포털사이트에도 집중적인 간섭과 단속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 4월26일 방통위, 네이버(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KTN, 디시인사이드, 야후코리아에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천안함 침몰 이후 인터넷상 근거없는 허위사실이 끊임없이 유포 확산돼 민관의 협력과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국제행사인 G20을 앞두고 불법콘텐츠에 대한 신속 차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들에게 △천안함 관련 허위사실 유포 등 명백한 불법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및 삭제 △경찰 제보 및 신속한 업무처리를 위해 핫라인 담당자 등 통신 연락체제 구축 등을 주문했다.

 

경찰청은 이어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포털사들에 16건의 삭제요청을 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포털사들은 경찰의 요청을 받고 다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심의요청을 했다. KISO 정책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게시자의 자진삭제 2건을 제외한 14건 모두를 '해당없음'으로 결정했다.

KISO는 결정문에서 13건에 대해 △불법게시물이라는 법적 근거에 대한 소명이 없고 △'허위사실'일 뿐 아니라 '공익을 해할 목적'을 충족할 근거가 제시돼야하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에 비춰서 소명이 없으며 △법원이 이미 '미네르바 사건' '휴교령 문자메시지' 사건에 대해 '공익을 해할 목적'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 경찰이 인터넷상 천안함 허위사실 유포글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도록 포털사에 협조를 요청한 공문. ⓒ최문순 의원  
 
또하나의 게시물에 대해서 역시 KISO는 "단지 정치적 관점의 비난성 게시물에 해당하고 의견 표명에 불과하므로 '해당없음'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문순 의원은 "이러한 경찰의 묻지마식 단속은 법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공포분위기만 조성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며 "경찰이 앞장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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