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위터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트위터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기사도 많다. 21일 한겨레 온라인 판에 오른 "김주하 앵커 트위터 '시끌시끌'"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하니 Only'라는 아이콘까지 달린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8만8천여명의 팔로어(추종자)를 자랑하는 김주하 앵커의 트위터 이용방식을 비판한 한 누리꾼이 김씨의 팔로어들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면서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누리꾼의 닉네임을 거론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그러자 김씨의 수많은 팔로어들이 이 누리꾼의 트위터를 맹폭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김씨의 팔로어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이 누리꾼은 재차 김씨의 트위터 이용방식에 불만을 표시했다"면서 "이 누리꾼은 특히 김씨가 자신의 닉네임까지 불특정다수에게 공개한 것은 옹졸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고 전했다. "김씨가 자신의 닉네임을 거론한 것은 '쟤가 나 공격해요. 가서 때려주세요'라고 팔로어들에게 일러바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팔로워를 추종자라고 번역한 것도 어색하지만 "자신을 비판한 이의 닉네임을 노출해 수많은 팔로어를 들썩이게 한 김씨의 처신에 대해선 '공인답지 않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이 기사를 쓴 기자가 과연 트위터를 써보기나 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겨레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유명인이 자신을 비판한 이의 닉네임을 노출시켜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게 한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라고 누리꾼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여러 누리꾼들이 문제를 삼는 건 김주하 앵커가 팔로워는 8만8천명인데 그가 팔로잉하는 사람은 6명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트위터는 싸이월드의 일촌 맺기와 달리 내가 원하면 누구라도 팔로우할 수 있다. 내가 팔로우한 사람이 나를 팔로우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김주하 앵커처럼 팔로워는 많은데 이들을 '맞팔'하지 않는다는 건 그를 추종하는 팬은 많은데 정작 그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김주하 앵커의 소통 방식에 불만을 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선택일 뿐이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맞팔'을 하지만 소설가 이외수씨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 등은 김주하 앵커처럼 팔로워가 많고 정작 팔로잉은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트위터 초보들은 팔로잉은 많은데 팔로워가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각자 나름의 트윗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한 누리꾼이 "8만8천명이나 되는 팔로워의 글을 어떻게 읽느냐"고 질문하자 김주하 앵커가 "모두 읽지는 못하지만 검색을 통해서도 읽고 멀티 계정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답변했고 누리꾼들의 비판과 반박이 쏟아졌다. 다른 한 누리꾼이 "팔로잉 6명이면 전화나 문자를 하지 트윗을 뭐하러 하느냐"고 묻자 김주하 앵커가 이를 리트윗하면서 "방법이 다를 뿐"이라면서 "스토커 같다"고 쏘아붙였고 김주하 앵커의 팔로워들이 이 누리꾼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 김주하의 트위터 캡춰, 6월20일.  
 
유명인이 트위터를 쓰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해프닝이지만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김주하 앵커가 "자신을 비판한 이의 닉네임을 노출시켰다"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트위터에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닉네임이 뜨고 모든 팔로워들이 이를 보게 된다. 닉네임을 노출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주하 앵커가 이 누리꾼의 지적을 반박했다는 것만으로 "옹졸하다"거나 "일러바친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주하 앵커의 팔로워들이 이 누리꾼을 맹폭했다"는 표현은 보수 언론들이 트위터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할 때 쓰는 논리다. 변희재 실크로드포럼 회장이 최근 월간조선 7월호 기고에서 "트위터는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팔로워를 거느리고 지령을 내릴 수 있는 선동형 조직에 가깝다"고 말한 것을 연상케 할 정도다. 불특정 다수 개인들의 자발적인 네트워크과 그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을 폄훼한 발언이다.

"유명인들이 트위터를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적인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거나 "팔로워들의 글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신변잡기와 관련된 내용까지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소통이냐", "이참에 유명인의 트위터를 모조리 언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등의 지적 역시 트위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왜 소통을 강요하는 것일까. 이들이 정치인들처럼 무조건 '맞팔'을 해야 할 의무가 있나.

트위터는 기본적으로 사적인 공간이고 개인과 개인의 유연한 네트워크다. 그런데 한겨레는 인기인과 추종자 그룹이라는 프레임을 깔고 접근하고 있다. 팔로워가 많은 유명인의 리트윗을 받으면 그만큼 많은 피드백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여기에서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누군가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겠지만 이를 통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김주하 앵커 역시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수많은 누리꾼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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