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돼 왔다. 종합일간지들과 비교하면 경제지들은 훨씬 더 적은 인력과 훨씬 더 적은 인력으로 엄청난 이익을 낸다. 업계 영향력도 종합일간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08년 기준으로 전국 단위 일간지들 매출액 순위를 보면 1위가 조선일보로 3772억원, 2위는 중앙일보로 3506억원, 3위 동아일보는 2659억원씩이다. 그리고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1936억원과 1240억원씩이다.

종합일간지들의 매출은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을 고점으로 급전직하하고 있지만 경제지들은 소폭이나마 꾸준히 상승 추세다. 조선일보의 매출이 2002년 4164억원에서 2008년 3722억원으로 줄어든 가운데 매일경제는 같은 기간 동안 1685억원에서 1936억원으로 늘어났다. 머니투데이는 117억원에서 349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경제 전문 인터넷 신문인 이데일리도 2006년 104억원에서 2008년에는 198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종합일간지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발행부수를 늘릴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신문산업의 기형적인 가격구조가 가장 큰 요인이다.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방대한 편집국 인력도 비용 부담이 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 광고가 늘어나면서 시장의 파이가 줄어든 탓도 있다. 반면 경제지들은 광고주인 기업들을 직접 공략하면서 틈새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왔다.

종합일간지와 경제지의 영역 다툼은 역사가 길다. 2002년 종합일간지들이 앞 다퉈 경제섹션을 늘렸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조선일보가 조선경제라는 이름으로 경제섹션을 강화했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증면경쟁에 합류했다. 조선일보는 "경제신문 한 부를 더 주겠다"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중앙일보는 "폐간됐던 중앙경제를 다시 부활시켰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아일보도 동아경제라는 이름으로 별도 섹션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 ⓒ더 피알.  
 
그러나 결과는 경제지들의 승리였다. 한 종합일간지 고위 관계자는 "종합일간지들이 경제지 증면경쟁을 펼치면서 경제지들의 전문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털어놓았다. 경제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경제지를 사보지 경제지를 보기 위해 종합일간지를 사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증면경쟁이 가격인상으로 이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광고가 크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지만 큰 실속을 챙기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에도 종합일간지들이 한바탕 경제지면을 늘리느라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다. 이른바 바이코리아 열풍을 타고 주식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면서 경제지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중앙일보가 중앙경제를 흡수하면서 경제지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도 엄청난 반사이익을 경제지들에 몰아주고 끝났다.

종합일간지가 경제지에 뒤처지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일단 경제지들에는 투자자들이 참고할만한 1차적인 정보가 많다. 투자자들은 경제기사의 행간을 읽으면서 중요한 투자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종합일간지는 지면의 제약이 있고 가독성과 흥미 요소,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정보의 양과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미는 없지만 경제지들이 훨씬 더 실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현실적으로 광고가 독자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종합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기업들은 전자제품이나 통신, 의류, 유통, 건설 등 대부분 소비재 관련 기업들이다. 소비재와 무관한 기업들의 이미지 광고가 실리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지들은 모든 기업들을 망라한다. 모든 국민들이 볼 필요는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봐야 하는 그런 광고가 있다. 경제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광고 영역을 개척해 왔다.

독자들은 경제 콘텐츠에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고 기업들 역시 투자할 의향이 있다. 2000년에 나란히 창간한 머니투데이와 이데일리는 증권사 홈트레이딩 시스템에 증권 속보를 판매하면서 비교적 일찍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이들 두 회사는 기존 경제지들의 한계였던 온라인 속보를 강화해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온라인 배너광고 단가도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유료화의 실험도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취재원이면서 동시에 광고주인 기업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종합일간지의 경제부가 적게는 10명 안팎, 많아도 20명 미만인 것과 비교하면 경제지들은 산업부와 유통부, 정보통신부, 증권부, 부동산부 등으로 세분화 돼 있고 취재원과의 관계도 훨씬 더 돈독하다. 경제지들은 기업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데 훨씬 더 능숙하다.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고 광고를 받는 관행도 종합일간지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즈는 온라인 유료화를 미적거리고 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감하게 유료화를 단행해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서는 니혼게이자이가 아사히나 요미우리를 압도한다. 이들 경제지들은 굳이 대중지를 지향하지 않는다. 판매부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 대신 구매력 있는 고급 독자들을 확보하고 광고단가를 높여 받는다. 물론 그만큼 콘텐츠 퀄리티와 신뢰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일간지들이 경제지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만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한겨레는 2000년에 창간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을 7년 만에 접은 바 있다. 이코노미21은 한겨레21의 경제판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매경이코노미나 한경비즈니스 같은 경제주간지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아 모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코노미21은 결국 실패했다. 한겨레는 최근 이코노미인사이트라는 이름으로 경제 월간지를 다시 시작했다.

종합일간지들이 경제지 시장 진입에 매번 실패하는 건 애초에 시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취재방식이나 기사의 방향도 다르고 광고 마케팅에도 큰 차이가 있다. 경제지들은 편집 전반에서 광고주를 배려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편집회의가 아니라 광고전략회의라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과도한 광고 마케팅으로 광고주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비판도 많지만 애초에 종합일간지가 따라잡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조선일보가 최근 조선비즈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경제 사이트를 론칭한 건 애초에 경제섹션을 늘리는 정도로는 승부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일보는 조선경제아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80여명의 취재인력을 확보했다. 웬만한 경제지 규모를 넘는 수준인데 일단 인터넷 사이트로 시작한 뒤 향후 일간지 진출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경제지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와는 경쟁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창간 초기부터 경제지들과 첨예한 갈등이 시작됐다. 조선비즈가 창간 둘쨋날인 5월11일 내보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조선비즈는 김 회장의 인터뷰를 다섯 꼭지로 나눠서 내보냈는데 1981년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 첫 언론 인터뷰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매일경제는 온라인 판 톱 기사로 "오너경영에 골병든 한화, 김승연 30년 황제경영 '비틀'"이라는 기사를 내걸었다.

매일경제는 이 기사에서 "김승연 한화 회장이 최근 잇단 M&A 악재와 신성장동력 부재로 '오너 리스크'만 키우고 있다"면서 "소통 없는 독단적 결정으로 경영 판단 오류가 끊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는데 평소 이 신문의 논조로 볼 때 이 같은 혹독한 비판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경제는 한화 기사는 조선비즈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매일경제가 조선비즈를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경제지들 입장에서는 광고시장의 파이가 줄어들 걸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조선비즈와 매일경제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겁나서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로운 매체가 늘어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제한된 홍보비용을 쪼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비즈가 기존의 경제지들과 차별화에 성공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조선비즈는 리얼타임 속보와 심층인터뷰, 심층분석, 칼럼 등을 통해 퀄리티 페이퍼로 자리 잡는다는 계획이지만 딱히 특화된 포인트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나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 또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같은 권위와 신뢰를 확보한 수준 높은 경제지가 없다.

조선비즈의 출범은 종합일간지와 경제지의 영역 다툼, 그 4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경제지의 아성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결과로 끝날지 조선비즈가 메인 플레이어로 합류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중요한 시사점은 경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퀄리티 경쟁이 중요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기존 경제지들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보전문 미디어 '더 피알(www.the-pr.co.kr)'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더 피알'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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