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과 후속 경기를 중계 방송한 것은 합법적인 계약에 따른 것이었다고 아시아태평양방송연합(ABU)이 밝혔다. 이에 따라 SBS로부터 월드컵 화면을 제공받지 못한 북한이 월드컵 경기를 방송하면서 제기됐던 ‘해적방송’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또, 북한과 월드컵 화면 제공협상을 진행하다 중단한 SBS로서는 ‘북한 내 취재·프로그램 제작지원’이라는 눈앞의 실익을 놓치게 됐다.

ABU 대변인은 15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1일 북한에도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할 수 있는 FIFA와의 계약에 서명했다. 따라서 북한이 월드컵 개막전을 ‘해적방송’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북한은 FIFA로부터 합법적으로 공급받은 화면을 사용해왔다는 설명이다.

ABU에 따르면 이 단체는 월드컵 대회 시작 전 북한을 비롯해 동티모르 라오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에 경기를 생중계할 수 있도록 FIFA와 사전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ABU는 1964년 설립된 비영리 방송기구로 200여 개의 회원사를 갖고 있으며, 북한 조선중앙TV도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한편, 북한이 ABU를 통해 월드컵 화면을 합법적으로 제공받게 되면서 SBS로서는 월드컵 화면제공을 대가로 북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기회들을 잃게 됐다.

SBS와 북한은 지난 1월부터 월드컵 경기 화면을 제공하는 문제를 놓고 협상을 진행해 왔다. SBS 쪽에서는 화면제공을 해주는 대신 북한 내에서의 취재와 각종 프로그램 제작편의 제공 등을 요청했다. 북한은 44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해 중계가 절실했기 때문에  SBS의 요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4~5월 실무협상을 벌이는데 합의했다. SBS는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 때 북한에 경기화면을 제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난한 협상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SBS와 북한의 협상도 전면 중단됐다. 북한은 지난 4월 말 SBS에 월드컵 중계 협상을 하기 위해 만나자는 서한을 팩스로 보냈지만 SBS 쪽에서 한반도 정세 등을 이유로 만남을 연기하면서 협상이 끊겼다. 월드컵 중계화면을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던 상황이었다. SBS 안팎에서는 이번 기회를 잘 활용했다면 월드컵 뿐만 아니라 KBS나 MBC보다 남북방송교류에서도 한발 앞서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SBS 양철훈 남북교류협력단장은 “북한 내에서 취재와 프로그램 제작협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좋은 기회라는 걸 왜 모르겠나. 하지만 천안함 문제로 정부가 북한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한다고 공식선언한 상황에서 SBS로서는 국민여론과 국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과 조건이 안 맞아서 협상이 깨진 게 아니라 천안함이라는 외부요건으로 협상이 중단됐다는 설명이다.

통일부의 천해성 대변인은 정부 쪽에서의 압력은 없었다고 밝혔다. SBS의 자체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다. 천 대변인은 “방송 전파도 대북 반출 승인대상이기 때문에 SBS가 북한과 계약을 체결해 승인해 달라고 했다면 허가할지 말지 검토했겠지만 이번 경우엔 아예 협의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 아니냐”며 “우리 쪽에 올라오지도 않은 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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