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에 대한 학력위조 논란이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는 ‘학력위조 논란’이라는 주제부터 잘못됐다. 전형적인 네거티브 네이밍 전략인 이 ‘언명’(言明)은 논의의 진행과 사실관계가 어떻든 타블로가 학력위조라는 추문에 휩싸여 있다는 이미지를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타블로가 스탠포드 석사 학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어떤 네티즌의 문제제기에서 시작한 이 문제는 ‘학력과 스펙(Specification : 사양)’ 문제라는 젊은 네티즌들의 최대 관심사를 건드리면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확대 재생산됐다. 급기야 타블로는 스탠포드대 성적증명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고, 사그라지는 듯 했으나 몇몇 네티즌들은 이마저도 위조라며 졸업증명서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의 핵심 주장은 “타블로는 공인이니 대중들이 요구하면 그 의혹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타블로가 스탠포드 유학파라는 학력을 이용해 인기를 얻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악 소비자들이 음악과 관계없이 외국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라는 학벌에 혹해 무비판적으로 그의 음악을 소비했던 사람들인가. 스타는 대중들이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가 스탠포드라는 학벌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면 그건 타블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걸 소비하는 대중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타블로와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 간의 진실게임에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거짓말쟁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논란의 그 이면이다. 타블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은 스탠포드라는 학벌이 현재의 타블로를 구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외국 대학을 나온 모든 연예인들이 타블로처럼 ‘성공’한 것이 아님에도 왜 대중들은 타블로에게 만큼은 학벌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결국엔 ‘정말 프라이비트’한 성취도가 명기된 성적표까지 공개하게 만든 것일까. 자신은 현재 타블로 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학벌에 부화뇌동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랬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래퍼 타블로.  
 
사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자신들 주장의 상위 개념인 학력과 인기의 상관관계라는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타블로가 자신의 학력에 대해 증명해야 하는가. 그가 공인이라서? 타블로가 싫다면 음악을 듣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보지 않으면 된다. 사실에 대한 증명과 논란을 벌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면 타블로가 공격받는 이유는 학벌과 스펙이라는 젊은 세대들의 ‘역린(逆鱗)’이 건그려졌기 때문이다.

‘진실’과 ‘책임있는 행동’이라는 말로 덮여 있긴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은 결국 ‘학벌’이라는 말로 수렴된다. 타블로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속았기 때문”이다. 그의 학벌을 믿었고, 그걸로 좋아했고, 그게 아니라서 싫다는. 그런데 그게 믿고 안 믿고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 타블로의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타블로의 음악이 아닌 스탠포드대 졸업생의 음악을 들은 것인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자가당착적인 공격과 비판은 결국 어느 순간엔가 분노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학벌과 스펙’ 그리고 ‘군대’라는 젊은 세대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현실적으로, 학벌과 스펙은 현재의 20대, 나아가서는 30대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줄어드는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을 스펙 경쟁으로 내몰았고 각종 자격증과 어학성적 등 수치화되고 문서화된 능력들을 학원과 같은 ‘재교육’을 통해서라도 얻길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국무위원들 같은 지도층은 안 가는데 자신은 가야하는 군대 문제 또한. 자격증 공장으로 전락한 서열화된 대학 교육의 붕괴에서 기인한 학벌과 스펙 집착은 (적어도 젊은 세대에겐) 생존의 문제나 다름없다. 타블로의 학력 ‘위조 주장’의 사실 여부에 젊은 네티즌들이 목매는 건, 그게 자신에게 그렇듯,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전부라고 생각하게끔 되었기 때문이다.

타블로 논란은 진실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학벌과 스펙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수치와 문서로 계량화된 인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길을 잃어버리고 학벌과 스펙이라는 ‘중요한 가치’에 ‘몰두’하게 된 사람들을 ‘마녀 사냥을 일삼는 키보드 워리어’, ‘인터넷 쓰레기’라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어찌 보면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 사회를 옭아매는 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마녀사냥’에 몰두하는 무책임, ‘마녀사냥’을 일삼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무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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