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출시와 아이폰의 폭발적 판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온 아이패드 출시에 따라 한국 통신시장 및 미디어 시장의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가진 이러한 질서파괴적(disruptive) 성격과 관련하여 기업과 정부 그리고 소비자가 받은 충격은 가히 인터텟 도입과 비견할만 하다.

최근 구글 TV와 애플 TV 움직임은, 한국 미디어 시장 중 경제적 규모에서 가증 큰 시장인 방송시장과 방송광고시장 재편과 관련된다. 따라서 이러한 방송시장 질서 재편을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관련 시장 참여자에게 중요한 과제다.

아래에서는 방송시장 질서 재편의 방향성을 진단하는 다소 거만한 시도를 하려한다. 이를 위해 구글TV와 애플TV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한국 방송 (관련) 기업들이 시급하게 추진해야할 전략적 과제가 무엇인지 주장하고자 한다.

먼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하는 글이 있다.

베를린로그: 구글이 변화시킨 브라우져와 TV, 지불체계와 통합된 브라우져 크롬의 힘,
미디어오늘: '바보상자'의 변신... 채널 사라지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본격화

위의 글을 보면, 구글TV의 힘을 지불체계 통합을 통한 소비자 편리성과 개발자 유인 증가, 구글 크롬/웹스토어(WebStore)에 기초한 TV 브라우징 방식의 변화, 다양한 앱을 통한 방송 소비의 풍부화로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글 TV의 혁신적 장점과 파괴력 예측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제시하는 조건 또는 테제들이 만족되지 않을 때, 예상되는 구글 TV 또는 애플 TV의 '시장 질서파괴력'은 결국 불발할 수 밖에 있다.

테제 1: 방송 콘텐츠의 매 초 매 초는 고유주소(URL)와 풍부한 메타정보(meta data)를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1. 방송과 웹이 완벽한 싱크(sync)가 가능해 지며, 2. 외부 개발자(third-party)의 API 접근이 가능해져 방송 콘텐츠가 풍부화될 수 있으며, 3. 새로운 광고시스템 탄생이 가능해 진다.

테제 2: 방송과 인터넷의 진정한 통합은, 스마트TV가 아닌 테제 1과 같은 방송 콘텐츠의 질적 변화에 기초한 새로운 유통질서가 태어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콘텐츠 유통플랫폼, 일명 WebTV Platform이 필요하다.

테제 3: (한국)방송사의 비지니스 모델의 핵심은, 외주 제작 비율이 높아지면서 '게이트키핑(gatekeeping)'에 있다. 새로운 유통구조에서 '게이트키핑'을 장악하는 기업이 미래 방송시장의 주인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 테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복잡성 증대'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구글 TV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구글 TV는 방송 콘텐츠을 즐기는 새로운 접점 또는 인터페이스(Interface)다. 그러나 구글 TV 및 IPTV에 대한 다양한 비판에서 지적되듯이, TV는 여타 매체와는 달리 접점/인터페이스 없이도 소비가 가능한 매체다. 다시 말해 '리모콘' 하나만 가지면 소비자는 방송 콘텐츠를 즐기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리모콘과 TV 사이에 풍부한 방송 콘텐츠, 또는 구글 크롬 웹스토어에서 이후 제공될 다양한 방송 앱, 그리고 여러 종류의 셋업박스는 복수의 접점/인터페이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점의 증가는 소비자들에게 '불편한 소비'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그 렇다면, 이 복잡하고 불편한 소비를 극복하고 소파에 누워있는 소비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추가 가치(added value)'는 무엇인가?

그 답을 'TV 수상기'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소비자 A가 TV 수상기에서 즐기는 동일한 방송 콘텐츠를 소비자 B가 노트북에서 동일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또는 소비자 C가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2. 동일한 체험이 가능해야 한다
해답의 실마리는 소비자가 어떤 단말기(Gadget)를 사용하던지 '동일한 체험(homogeneous experience)'이 가능한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상상을 해 보자. 소비자 B가 드라마의 한 장면 - 예: 주인공의 키스신-에 '꺅'이라는 댓글을 단다. 이것이 실시간으로 소비자 A의 TV 수상기에도 나타난다. 소비자 A가 추가적으로 '음~ 멋있다'라는 댓글을 달고, 몇 초 간격으로 B와 A의 감탄사가 C에게 전달된다. 세 명의 소비자 모두가 다른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을 때도 말이다.

또는 소비자 C는 자신이 즐겨 보는 SBS 드라마 1편, KBS 가수의 음악 공연 5분, MBC 9시 뉴스 스포츠 뉴스, MBC PD 수첩 두 번째 이야기를 '오늘의 플레이 리스트(Today's Playlist)'로 작성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소비자 C는 리스트에 담긴 드라마를 스마트폰으로 본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거실에 있는 TV 수상기에서 드라마 뒷부분을 마저 본다. 다른 가족에게 밀려 소비자 C는 자신의 방으로 쫓겨나 노트북으로 나머지 방송을 시청한다. 그리고 나머지 방송을 시청하면서 앞선 드라마에 표시해 두었던 명장면을 모아 자신의 친구들과 드라마 평을 공유한다.

이렇게 어떤 곳에 있던지, 어떤 단말기를 사용하던지, 언제가 되던지 동일한 체험이 가능해야 한다. 소비자 A가 경험하는 체험을 동시의 그의 친구인 소비자 C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3. 완벽한 동기화(sync)가 가능해야 한다
방송 콘텐츠에 대한 동일한 체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방송 콘텐츠가 TV와 인터넷에서 완벽한 동기화(sync)가 가능해야 한다. 방송 콘텐츠가 웹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동기화된 방송 콘텐츠와 웹 콘텐츠가 단말기, 시간, 장소와 무관하게 소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 콘텐츠는 초(second) 단위로 구별될 수 있어야 하며, 이 초단위로 구별된 방송 콘텐츠 모두가 고유주소(URL)와 메타정보(meta data)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는 트위터(twitter)의 트윗(tweet)에서 찾을 수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140자 문자는 모두 고유주소를 가지고 있으며 140자 문자 뒤에는 매우 많은 양의 메타정보가 숨겨져 있다. 아래 그림을 보라! 하나의 트윗이 어느 지역에서 작성되었는지, 어떤 단말기에서 작성되었는지, 어떤 프로그램에서 작성되었는지,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등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고, 이러한 메타정보는 '트위터 주석달기 Twitter Annotations' 형식을 통해 계속해서 '무한대로' 추가될 수 있다.
 
물론 현재 방송 콘텐츠도 메타정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또는 영화의 경우, '전체' 드라마 또는 영화에 대해 제작년도, 제작자, 장르, 길이 등의 메타정보가 존재한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 (출처: http://www.readwriteweb.com/archives/this_is_what_a_tweet_looks_like.php)  
 

'트위터 주석달기 Twitter Annotations'처럼 방송 콘텐츠의 매 초 매 초는 소비자 또는 개발자에 의해 풍부화될 수 있다. 야구 경기의 주요 장면들이 소비자들에 의해 선정되고, 선정된 장면들에 대한 인기투표가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소비자 참여가 방송 콘텐츠 소비의 재미를 더할 때, 그리고 소비자 참여가 동시에 다양한 단말기에서 진행될 때, 소파에 누어있던 TV 소비자는 때론 누워서 친구들이 풍부화시킨 방송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때론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상을 전달한다.
 
이렇게 풍부화된 방송 콘텐츠에 대한 외부 개발자(third party)의 접근이 API를 통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트위터 Firehorse 또는 페이스북 Graph API처럼 방송 콘텐츠에 대한 API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방송 콘텐츠를 새롭게 선별하고 새롭게 조합하고 새로운 부가 내용을 추가하는 일이 가능해 진다. 이를 통해 방송 콘텐츠는 보다 풍부하고 확장된 생태계(ecosystem)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방송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상업화, 광고와의 새로운 매개가 가능해 진다. 이를 통해 방송 콘텐츠는 웹의 한 부분을 구성하게 되며, 웹과 함께 무럭무럭 성장하게 된다.

방송 콘텐츠의 새로운 생태계에서 개별 소비자는 환경변화에 상관없이 동일한 TV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단말기에서 언제나 동일한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인터넷과 방송은, 웹과 방송 콘텐츠는 반드시 동기화(sync)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역할은 새로운 셋업박스의 몫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 질 때, 새로운 그리고 다수의 방송 콘텐츠 유통 플랫폼(WebTV Distribution Platform)이 탄생할 것이다.

경제적 이윤만 확실하게 챙길 수 없다면 드라마 및 쇼 프로그램 제작회사들이 기존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유통 플랫폼들의 이름은 더 이상 MBC, SBS, KBS일 이유는 없다. 네이버, 다음 처럼 대형 유통 플랫폼이 탄생할 수 있고, 블로그 처럼 아주 작은 규모의 유통 플랫폼이 탄생할 수 있다. 또는 구글과 애플이 새로운 방송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장악할 수 있다. 모바일 앱에 대한 선별권한(gatekeeping)을 통신사업자로부터 애플과 구글 빼앗았듯이, 방송 콘텐츠 유통시장에 대한 새로운 경쟁자들이 지금의 방송사업자를 위협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 변화를 통찰하고 그에 부합하는 방송산업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종편채널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은 이 나라 방송시장의 미래전략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종편채널의 추가는 '낡은 방송시장 질서'를 유지 및 확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낡은 방송시장은 새로운 사업자의 '질서파괴적(disruptive)' 서비스를 만나게 되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바로 '아이폰 현상'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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