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조선일보를 극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 일간지가 (촛불집회) 2년을 맞아 집중 기획하는 형식으로 이를 재평가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10일부터 시작한 기획특집 ‘광우병 촛불 2년-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을 지칭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 대통령이 이처럼 극찬까지 했을까.

11일까지 두 차례 실린 이들 기사는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10일 기획특집을 시작하면서 1면 머리기사로 실은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전창열씨의 ‘고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촛불 참가자들이 당시의 언행이 잘못됐거나 후회하고 있다는 증언들을 주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광우병 위험이 과장된 것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촛불집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전창열씨의 고백, 무대 위에서 읽은 편지는 모두 시민단체가 써준 것이라는 한 ‘촛불소녀’의 증언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의 방향은 당시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언론이나, 시민단체, 인터넷 카페 관계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지금 와서는 그 때 주장과 달리 변명성 해명을 내놓고 있다는 식의 내용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과 한미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MBC 등이 “대재앙이 온다는 식으로 보도해 놓곤 이제 와서는 통상협상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고 발 뺌 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언제 ‘광우병 괴담’ 맞다고 했나”는 식으로 뽑혔고, “근거없는 ‘광우병 괴담’을 증폭시켜 사태를 확산시킨” ‘일부 연예인’들은 “대부분 그 후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거나 해명하지 않은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는 ‘촛불집회’가 무책임한 선동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단체나 전문가들이 면피성 해명으로 당시의 무책임한 주장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촛불’ 때문에 국민들에게 두 번씩이나 사과해야 했고, 정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겪어야 했던 이대통령이 극찬할 만도 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는 당장 당사자들로부터 인터뷰 내용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서울대 우희종 교수가 “미국 쇠고기 자체가 위험하다고 한 게 아니라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통상 조건이 우리나라에 불리하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줄곧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마치 변명한 것처럼 보도했다. 우 교수는 이에 대해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말한 의도와 맥락과는 정반대로 발췌, 짜깁기한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우교수는 “내 생각은 2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촛불 이후 시간이 지나며 정부 측 주장이 허구였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 교수는 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체적인 맥락과 달리) 발췌한 것에 대해 항의하니까 본인도 ‘난감하다’는 문자를 보내 오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더 황당한 경우다. 조선일보는 그가 “후추 한 알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0.001g의 변형 프리온만으로도 인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는 식으로 지극히 비현실적인 주장을 폈다며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광우병 관련) 인터뷰나  취재는 응할 마음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박상표 국장은 “차 안이라서 전화 통화가 곤란하다고 했을 뿐인데 저렇게 기사가 나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쓴 기자도 ‘난감’하고, 취재를 당한 사람은 더 ‘어이가 없는’ 기사라면, 이들 기사가 어떤 기사인지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분명한 것은’조선일보의 기사가 전체적으로 ‘촛불’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촛불의 불씨’는 여지없이 짓밟아버리겠다는 날 선 적대감을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로서는 2년 전 사옥 출입이 봉쇄될 정도로 ‘쓰레기’ 취급받은 ‘아픈 상처’가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다고 그런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럴수록 그 낙인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대통령의 극찬이야말로 ‘MB신문’이라는, 그 낙인의 살아있는 증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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