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 관련자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 것은 국가지도자의 '신의'를 되돌아보게 한 사건이다. 이 대통령은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다른 점은 국민은 대통령 반성을 요구하고 있고, 대통령은 국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반성을 요구한 대상은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뿐일까.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은 11일 논평에서 "2008년 광우병 대란은 대한민국 체제전복 집단이 기획하고, 일부 매체가 선동하고, 인터넷이 음모의 도구로 이용되고, 거기에 야당까지 부화뇌동한 한편의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검역주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던 국민의 절절한 얘기를 잊었는가. 여중생, 여고생부터 넥타이부대, 유모차 엄마까지 정부를 향해 그토록 호소했던 주장이 무엇인지 정녕 모른다는 말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청와대 특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월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아침이슬'을 즐겨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전국에 TV로 생중계 된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누가? 바로 대통령이. 잘 모르겠다면 당시 TV화면을 구해 살펴보기 바란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원했던 검역주권을 지켰는가. 최소한 이웃나라 일본 정도의 깐깐한 수입기준을 지켜달라는, 일본 국민이 (광우병 위험 때문에) 먹지 않는 미국 쇠고기는 한국 국민이 먹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던 그 얘기들을 잊었는가.

정치도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반사이익이 있더라도 국민을 허탈하게 하는 발언은 좀 신중하게 하면 안 되는가. 광우병 문제 꺼내면 보수층이 똘똘 뭉쳐 한나라당 지방선거 승리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은 국민의 거센 저항을 부른다는 상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발생했는가. 이명박 정부는 당시 그렇게 주장했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라고. 값이 싼 것은 분명하다. 질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안전도 역시 모르겠다. 국민 보편의 인식이 그렇다.

 

   
  ▲ 광우병위험미국쇠고기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조선일보 소유의 코리아나호텔 웨딩홀에서 나오는 스테이크가 미국산이 아닌 호주산을 쓰고 있다고 강조한 메모가 테이블마다 놓여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주요 식당에서 '미국 쇠고기'를 원료로 하고 있다면 국민이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사용해서 감사하다"고 할 것 같은가. 아니면 그 식당 문을 나설 것 같은가. 국민 다수는 여전히 미국 쇠고기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말은 바로하자.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광우병에 걸린다는 게 아니다. 안전한 미국 쇠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우병 위험 부담이 없는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면 국민은 안심하고 그 쇠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라면 이명박 정부 공무원들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공무원도 먹지 않으면서 국민은 먹으라고 한다면 그런 것처럼 뻔뻔한 일이 어디 있는가.

   
  ▲ 2008년5월 9일, 서울 시청앞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청사의 공무원에게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을 먹이겠다'는 정운천 농림부장관의 발언에 왜 공무원이 생체실험대상이 되어야 하냐고 풍자한 피켓을 들고 참가한 민주공무원노조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명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광우병' 문제를 꺼냈으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퀴즈이다. 이명박 정부 공무원들은 미국 쇠고기 수입 이후 값 싸고 질 좋다던 미국산 쇠고기를 거리낌없이 먹었을까. 아니면 전혀 먹지 않았을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발표한 자료이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서울 정부종합청사와 과천청사 등 공무원들이 생활하는 청사 식당의 미국산 쇠고기 소비 실태가 밝혀졌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이명박 정부 공무원들은, 그들의 소비량은 '0g'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 공무원들은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 1년 동안 국민에게는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라 주장해놓고 자신들의 식당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