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이 ‘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에서 한 조사(弔辭)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김 총장은 이 조사에서 “우리는 백령도에서 일어난 일을 결코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김 총장은 “사랑하는 우리 조국, 아름다운 우리나라, 소중한 우리 바다를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이라도 건드리는 자, 우리의 바다를 넘보는 자, 그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고 말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 총장의 발언을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며 이에 대해 응징, 보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피로 파괴나 좌초 혹은 아군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용서’니 ‘좌시’니 ‘대가’니 하는 말들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총장이 조사를 낭독한 자리에는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태영 국방장관, 전군 주요지휘관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있었다. 천안함 침몰을 사실상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규정한데다가 이에 대한 무력보복을 다짐한 김 총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국방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중대한 의미를 지닌 해군참모총장의 조사 내용을 국방부가 영결식 이전에 몰랐을 가능성도 적지만, 천안함 침몰 이후 군이 언론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국방부의 태도야 그렇다 치자. 정작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김 총장의 발언내용이다.

김 총장은 천안함 침몰이 사실상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에 의해 격침됐다는 주장은 여러 가지 정황상 석연치 않은 대목이 너무나 많다. 우선 북한군이 그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정녕 의문이다. 백보를 양보해 북한 잠수함 혹은 잠수정의 어뢰공격에 피격돼 천안함이 격침된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 군이 보이는 대응태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김 총장의 말대로 천안함 침몰이 북한군의 소행이라면 해군참모총장이 만사를 제쳐두고 할 일은 바다에 떠 있는 해군 함정들을 모두 항구로 피신시키고 수중경계를 강화시키는 조치일 것이다. 천안함 격침(?)에서 입증됐듯이 한미연합군의 감시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잠수 무기체계를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현재 해군이 보유한 해상전투함들은 언제라도 천안함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군이 해군함정들을 항구로 피신시키는 조치를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 같은 군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이지 모를 일이다.

“끝까지 찾아내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는 김 총장의 발언도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 김 총장의 주장처럼 설령 천안함 침몰이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해도 이를 무력으로 응징하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또한 천안함 침몰이 북한군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면 김 총장의 발언은 공연히 북한만 자극하는 셈이다.

   
  ▲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김 총장의 발언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다. 김 총장의 발언은 천안함 침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해군참모총장은 해군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천안함 침몰과 같은 대형사고야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피로파괴이건 좌초이건 북한군의 공격에 의한 것이건 아군의 기뢰에 의한 것이건 간에 해군참모총장이 책임을 모면할 길은 전혀 없다.

지금 김 총장에게 필요한 것은 보복에 대한 다짐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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