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의사표현을 할 때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동영상을 만들거나 어떤 경우이든 그때에는 그러한 표현을 자신이 했다는 것을 반드시 남이 알 수 있도록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함께 기록해서 첨부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며, 정부여당이 악착같이 (실명제가 아닌) "본인확인제"라고 역설하는 인터넷 실명제의 현실이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가? 아니 내가 무슨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든 그거야 내 맘이고, 그걸 내가 쓴 건지, 만든 건지 밝히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 왜 그걸 밝혀야 하는가? 인터넷실명제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바로 가장 단순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질문에 대해 실명제를 강변하는 이들이 하는 설명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인터넷은 개개인의 사사로운 의사표현의 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표현의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공공적인 표현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그러한 침해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거나 사후적으로 처벌하거나 보상받을 수 있도록 표현주체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기존의 일방향, 동시성의 특성을 갖춘 신문이나 TV와 같은 대중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터넷을 통해서 개개인이 어떤 의사표현을 한다고 해서 그러한 개개인의 의사표현 내용이 일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송출되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어떤 표현내용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러한 표현내용에 관심을 가진 다중이 의식적으로 찾아서 보는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자의 적극적인 정보선별행위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영향을 줄 수 있는 한계를 가진 매체다.

따라서 자신이 읽거나 보고자 하여 스스로 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국가가 나서서 사전에 규제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표현된 내용과 관련하여 그 독자나 수용자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할 수 있다.

물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서 표현행위를 하는 모든 이용자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아 사전에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한 경우에만 표현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모든 인터넷 이용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는 참으로 해괴망칙하기 짝이 없으며 인권침해적인 발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준용되고 있는 OECD의 개인정보보호원칙에서도 개인정보 제공은 개인정보주체의 선택과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실명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적지 않게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기 신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면서 써야 하는 글이나 표현이 도대체 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신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정당한 이유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타고난 내성적 성격 때문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표현행위로 인해서 받을 수 있는 부당한 차별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성향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그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혹은 단순히 귀찮아서, 싫어서 등등의 많은 이유가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글을 쓸 수 있다면 아예 글을 쓰려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명제는 그런 모든 경우에도 "반드시" 본인의 정체를 밝힐 것을 국가가 강제하는 제도다.

실명제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위축되는 표현은 무엇보다도 일반 이용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사건이나 문제들에 대한 단편적이거나 혹은 상당히 체계적인 비판적인 언급이나 비판적인 글쓰기나 표현행위일 것이다. 실명제가 낳는 이 같은 표현행위의 위축은 결국 인터넷 이용자들이 읽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익명의 이용자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의 생산을 현저하게 위축시킨다.

   
  ▲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이미 우리는 미네르바 같은 경제논객이나 특정 언론매체에 대한 소비자불매운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글쓰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인터넷이용자들의 이용행태를 자신의 능동적인 표현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기성기관이나 매체나 서비스업체가 제공하는 정보만을 수동적으로 찾아보게 되는 전통적인 "소비자"의 수준으로 전락시킨다. 대한민국 인터넷 콘텐츠의 수준을 다시 70, 80년대의 산업사회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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