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초비상이 걸렸다. 쉬쉬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지방선거 구도자체를 다시 짜여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방선거의 꽃이라는 서울시장 선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기세 넘치던 강공 드라이브는 여권의 지방선거 준비에 결정적인 악재로 이어졌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은 지방선거 구도 자체를 가르는 핵심 변수였다. 시기도 내용도 여권에 악재이다.

지난해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전국은 충격에 빠졌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서거한 초유의 사건을 지켜보던 국민은 절망과 분노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봉하마을과 서울 광화문 등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곳에서는 수백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한나라당 강세지역이던 부산 경남은 바닥 민심부터 흔들렸다. 고향 사람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결말을, 그것도 고향에서 경험했다는 것을 지켜본 부산 경남 주민들은 '짠한 마음' 가득 머금고 봉하마을을 찾았다.

   
  ▲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들의 울분은 검찰의 무리한 강압수사에 모아졌다. 결국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죽였다는 반발 정서로 이어졌다. 민심은 동요했다. 한나라당은 이후 각종 선거에서 민심의 매서움을 경험했다.

경남 양산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 대표에 차기 국회의장 0순위라는 박희태 후보와 정치 새내기와 다름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 출신 송인배 후보가 맞붙었는데 박희태 후보가 진땀승을 거뒀다.

한나라당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그 옛날의 영남이 아니었다. 검찰이 '정치검찰' 행태를 보이며 무리한 수사를 하는 데 국민적 반감이 적지 않다. 한명숙 전 총리를 둘러싼 의혹 사건은 지난해 5월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던 검찰이 결코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고자 만든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한명숙 전 총리에게 검찰은 수사의 칼날을 세웠다. 정치 수사 논란을 불러왔던 사건이지만 검찰은 일부 보수신문과 발을 맞추며 기세를 올렸다.

언론에 피의 사실을 흘리고 언론은 이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병폐'가 재연됐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인격살인의 대상이 됐다. 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과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이정희 의원 등 다른 야당 정치인과 시민사회까지 한명숙 전 총리의 결백을 확신하며 그의 편에 섰다.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에 소극적인 입장이었지만 검찰의 초강수는 그를 다시 정치 중앙무대로 올려세웠다.

   
   
 
법원은 9일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히든카드로 내놓았던 골프 의혹은 판단하지 않겠다면서 일축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번 무죄 판결을 계기로 서울시장 선거를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당 공천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 이상규 민주노동당 후보 등 다른 정당의 서울시장 후보들과 단일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반MB 선거연대'가 힘을 받을 경우 전국 선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검찰의 무리수는 한명숙 전 총리의 입지를 단단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검찰은 무죄 판결이 난 법원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두고 다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모 건설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해 논란을 자초했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왜 검찰은 이렇게 졸렬한 짓을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실리도 명분도 잃어 버렸다.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 선고는 서울시장 선거 구도 자체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동정론과 검찰에 대한 비판론이 시너지 효과로 이어진다면 한나라당 입장에서 절대로 질 수 없는 서울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이 무너지면 지방권력 정권교체를 의미한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역시 한나라당이 우세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의 힘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시대를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조해진 대변인은 "뇌물죄 재판의 특징이 이번 판결에서 그대로 재연된 것 같다. 그렇지만 판결의 결론과는 달리 이번 사건 수사 재판 과정에서 한 전 총리의 부도덕한 실체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야당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진보신당 경기지사 후보인 심상정 전 대표는 "오늘 우리 국민이 확인하고, 선언한 것은 '한명숙 전 총리 무죄, 대한민국 검찰 유죄'의 판결"이라며 "검찰은 이성을 상실했고, 정권은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 이명박 정권과 검찰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완전히 뒤집어 침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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