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을 시샘하는 ‘북풍’이 몰아치고 있다. 주체는 언론이다. 정부도 한 몫 거든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은 46명의 장병과 9명의 구조선박 선원, 1명의 UDT 대원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정부의 ‘거짓말 행진곡’에 사건의 원인도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열흘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은 소망교회 부활절 예배에 직접 참석했고, 국무총리는 4대강 사업 현장을 방문해 밝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민 속은 타들어가지만, 언론은 ‘아픈 비판’ 대신 바람잡이 역할을 선택했다. 언론 주연, 정부 조연의 안보드라마 ‘북풍 시대…’ 그 마지막 장면은 무엇일까. -편집자

지난 3월26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한 초계함 침몰은 전국을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몰아넣었다.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군에 입대한 이들과 그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남 얘기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단 한 명의 실종 장병이라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TV와 신문, 인터넷 등을 지켜봤다.

0.1%의 살아있을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봤지만, 지난 3일 첫 번째 실종 장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를 중단하고 함정 인양작업을 선택했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이유, 핵심적인 의문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한 점 의혹 없이 의문을 풀어줘야 할 정부는 석연찮은 대응으로 신뢰를 잃어버렸다.

냉철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카더라 통신’이 끼어들었다. 일부 보수신문은 ‘북한 연계설’을 연일 흘리고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불장난을 한 셈이다.

언론이 처음부터 ‘북풍 몰이’에 몰두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사건 초반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조선은 3월27일자 2면 <사고 원인 두고 설 난무…혼란 더해>라는 기사에서 “일부 언론에선 ‘북의 공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확실해 보인다’는 단정적인 보도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조선 보도에 정답이 나와 있다. ‘설(說)’은 혼란을 더한다는 지적과 ‘북의 공격’에 대한 단정적인 보도에 대한 우려이다. 3월30일자 지면부터 ‘북풍몰이’는 본격화 됐다.

국방부 장관 ‘오버’ 청와대 제동 왜

원인제공자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다. 김 장관은 3월29일 국회에 출석해 “정부나 국방부는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얘기로 보이지만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천안함 침몰사고 12일째인 6일 백령도 앞 사고 해역에서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고 등 기상악화로 인양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진은 높은 파도 뒤로 보이는 함미 침몰 해역 2200t급 해상크레인. ⓒ 연합뉴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3월30일자 1면 기사로 김 장관 발언을 올렸다. 조선은 3월31일자 1면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기사를 내보내며 본격적인 북풍 몰이를 예고했다. 조선은 4월1일자 4면에 <북 잠수정, 수심 20~30m에서 어뢰공격 가능>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북한 연계설을 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동아는 4월1일자 1면에 <속초함, 대북경계지시 받고 발포>, 4월2일자 1면에 <속초함 NLL 인근까지 필사적 추적>이라는 머리기사를 올렸다. 동아 기사 제목만 보면 북한 개입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지만 기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추적해보니 새떼였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른다.

중앙일보는 4월2일자 1면 <확인 안 되는 ‘반잠수정’ 국방부의 고민>이라는 머리기사를 그래픽과 함께 내보냈다. 중앙은 4월3일자 1면에 <김 국방 “어뢰 직접 타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라는 기사를 다시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조선과 동아도 나란히 4월3일자 1면에 김태영 국방장관 기사를 올렸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어뢰설’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일까. 김태영 장관은 지난 2일 국회 출석한 자리에서 VIP(이명박 대통령을 의미)의 메모를 받았다. “장관님, VIP께서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하면서…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시고….” 국회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메모는 청와대 쪽에서 김 장관에게 VIP 입장을 전달한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신중대처를 주문하는 상황에서 김 장관이 ‘오버’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국방부가 청와대와 충분한 교감 없이 돌출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신중한 대응’ 이미지를 유지한 채 보수층 반발정서는 국방부 장관을 통해 달래는 이중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연계설’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중앙은 4월5일자 1면에 군 고위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군, 어뢰 담은 ‘캡슐형 기뢰’ 추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른 언론들은 ‘황당 주장’으로 인식했는지, 문화일보를 제외하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소설 경계 넘나드는 언론 상상력

캡슐형 기뢰가 원인이라면 북한군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백령도 뒤편까지 다가와 문제의 기뢰를 미리 심어놓고 갔다는 주장이다. 북한군이 남쪽 해역을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면 한국군 경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 고위 관계자 주장이 사실이라면 군 지휘계통은 줄줄이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다.
‘북풍 몰이’에 안간힘을 쓰는 언론들이 정작 중요한 팩트가 발견됐을 때는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MBC는 천안함 최초 상황 발생이 밤 9시22분이 아닌 9시15분이라는 내용의 ‘군 상황일지’를 폭로했다. 천안함 내부에 뭔가 문제가 발생해 침몰했을 가능성을 담은 증거가 발견됐지만, 보수신문은 ‘북풍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천안함 참사 원인으로 북한개입설에 올인 하는 조선·중앙일보 보도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라며 “심증만으로 몰아붙이며 추측기사를 남발하는 보도행태야말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북풍 여론몰이는 이명박 정부 책임론을 물 타기 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실체도 확인되지 않은 ‘북한’이 책임의 제1주체로 보도되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나오건 이번 사건은 한국군 위기관리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북한 관련설이 사실이라면) 침공을 받은 12일간 우리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어선을 투입해 수습하려다가 더 큰 대형사고를 불러온 것”이라면서도 “과거 우리 국민은 ‘펑’소리만 나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었지만, 민주정부 10년을 지나면서 우리의 성숙한 국민이 이런 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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