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왔던 찬사와 비례해 이른바 ‘막장 엔딩’에 대한 시청자들의 논쟁도 뜨겁다. 극중 등장인물인 세경(신세경 분)과 지훈(최다니엘 분)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에 대한 의견은  ‘시트콤답지 않은 슬픈 결말’, ‘갑작스럽게 등장인물을 죽음에 이끈 완성도 문제’ 등 형태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의견은 “시트콤에 그런 엔딩이 가당키나 하냐”는 의견으로 대표된다. 그건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기대심리를 ‘무시’했다는 배반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시트콤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법칙은 그 장르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또한 모든 코미디가 해피엔딩은 아니며, ‘장르’는 단지 비평가들이 예술작품을 분류하고 분석하기 수월하도록 비평가 집단 스스로 만든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그것은 ‘과정은 힘들지만 그 열매만은 달콤하기만을 바라는’ 대중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와 판타지에서 비롯된다. <지붕킥>에 열광했던 대중들은 계급적 갈등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사소하지만 치열한 고민들을 거듭하는 캐릭터들에 이입해서 즐거움을 얻었다. <지붕킥>은 결코 마냥 웃기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지붕킥>의 캐릭터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붕을 뚫을 정도로 하이킥을 날려본 캐릭터는 없다.

   
  논란이 된 죽음을 암시하는 흑백 처리된 마지막 장면  
 

 시청자들이 어찌 보면 우울하기까지 한 등장인물들의 계급, 신분 및 경제력 차이로 인한 좌절을 열광하며 본 이유는 언젠가는 그들이 -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그렇듯-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삶은 해피엔딩이 아니니 드라마로라도. 하지만 그것은 외면일 뿐이다. 계급, 계층의 차이는 극중 세경 식구들이 ‘이민을 결심할 정도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이며, 학벌 차이는 능력에 관계없이 과외 아르바이트조차 못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다.

   
  이민가기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세경  
 

 또, <지붕킥>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다. 시트콤 <지붕킥>도, 그것을 즐기던 시청자들도 드라마 내, 외의 신산(辛酸)함을 연애를 통해서 해소했다. 물론 그 연애조차 녹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3류대생인 정음도, 더부살이하는 식모 세경도 현실의 고단함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멜로라인’에 열광했던 이유는 그 봉합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사랑 외에는 별다른 탈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극중 인물이나 시청자들에게 마찬가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준혁과 세경의 이별을 앞둔 입맞춤   
 

 마지막 회에서 극중 세경은 동생인 신애가 자신처럼 쪼그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민을 결심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민을 가기 싫은 이유는 지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애에게는 이민이 행복할 수 있기 위한 해답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지훈에 대한 사랑의 어쩔 수 없음을 호소한 세경에게 이민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이미 세경이 밝혔듯이 이민을 가고 싶은 이유는 신애였고, 이민을 가기 싫은 이유는 자신의 지훈에 대한 사랑에 있었다면 공항으로 가는 그 길이 세경의 행복을 향한 길은 아닌 것이다. 지훈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이 세경에겐 제일 행복한 순간이고 공항으로 가든, 다시 돌아가든, 그 길, 그 순간을 벗어난 그 어떤 선택도 세경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지붕킥>의 엔딩이 시청자/대중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여러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인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원하는 해피엔딩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라 할지라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호평을 받았던 <지붕킥>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지붕킥>은 엔딩에서 처절하리만큼 잔인한 우리네 현실을 보여줬다. 결국 커플로 완성된 사람은 계급적 차이가 없는 순재와 자옥이며, 무능해도 사위라서 보석은 회사를 물려받고, 정음은 사랑을 포기하고서야 취업에 성공했으며, 신애와 신애 아버지는 한국이 아닌, 이민으로 답을 찾았다.

   
  사랑을 포기한 다음에야 취업에 성공한 정음과 입대를 기다리는 준혁  
 

<지붕킥>이 2010년 한국 대중문화에 남긴 것은 단지 이 드라마가 지엽적으로 어떤 현실을 반영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강남 학생들의 공부 잘하는 법, 인구 대비 퍼센트가 소수점도 채 안되는 재벌의 성공담 등이 아닌 달콤쌉싸름한 소시민적 현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아이러니한 우리 현실을 말이다.

엔딩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도 마찬가지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기대심리에 대한 배반도 있지만 그것보다 <지붕킥>이 봉합을 끝까지 포기하고 너무나 사실적으로 현실을 반영해서가 아닐까. “과정이 힘들다고 그 열매가 꼭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는 것. 그리고 죽지 않고 남겨진 우리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함께.

   
  신애가 떠난 날 학교에서 돌아와 슬퍼하는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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