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여성들은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는 남녀 차별적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8일 제주도 서귀포 KAL 호텔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의 '2010 여기자 포럼'에서 "세상에서 여성의 임무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게 맞다"며 "그렇지 않고는 저 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고, 직업을 가지더라도 양육과 보육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저출산 해법으로 '전업주부'를 제시하기도 했다(한국일보, 뷰스앤뉴스).

최 위원장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인 남녀 성차별적 인 것으로 구시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저출산 문제는 과도한 과외비 부담, 취업난과 같은 사회 구조적 원인이 더 큰 것으로 지적받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과 취업을 통한 자기완성은 우리 사회에 이미 깊게 뿌리내린 사회적 통념이다. 이런 점을 무시한 최 위원장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 및 여성정책 후퇴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여기자들이라고 해야 자식뻘이고 삼촌 같은 마음이다. 언론계 선배로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겠다"며 이같이 말하고 "충실한 어머니와 선량한 부인만 되어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살면서 몇 가지 행복이 있는데 탄탄한 남편을 만나야 하고 재물과 알맞은 일거리가 있어야 하고 행복한 자녀를 둬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꼭 결혼해서 최소한 애 둘은 낳아 달라"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로 현모양처를 앞세우고 있으나 가사와 자녀 양육은 부부 평등의 원칙 아래 부부 공동 책임이라는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최 위원장의 여성 폄하 발언은 인류 역사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되풀이 되어온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남녀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일방적 논리를 앞세운 것으로 남성의 기득권을 전제로 한 사회 제도나 관념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지 위해 여러 가지 이유를 앞세워 여성의 사회적 진입을 적극 저지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심하다.

   
   
 
한국은 양성평등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해 10월 발표한 ‘2009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34개국 가운데 115위를 기록했다. 한국 여성은 의회, 각료, 지방자치단체장 진출이 매우 적은 탓에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 세계 최하위권이다. 한국 여성은 경제적 참여와 기회에서도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고 여성의 고위 관리직과 전문직, 기술직 진출이 현저히 적다. 남성과의 임금 격차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남성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언행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최 위원장의 경우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남성들은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남성이 여성위에 군림하는 확실한 명분을 확보하려 시도했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로 손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다음과 같은 여성관은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참혹하다 - 여성은 개인적 천성으로 비춰볼 때 결점이 많고 꼴사나운 존재다. 남성의 씨에 담겨있는 활력은 남성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성의 탄생은 남성의 활력에 결함이 생기거나 어떤 물질이 잘못되거나 외부의 영향에 의해 이뤄진다.

많은 의학자들도 성차별주의로 위장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부적절한 행위에 가담했다. 예를 들면 미국 하바드 대학의 한 의학자(Edward Clarke)는 지난 1873년 여성이 대학에 입학해서는 안 된다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젊은 여성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자궁의 피가 뇌로 역류해서 여성을 성질이 고약스럽게 만들면서 불임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과학의 탈을 쓴 여성 차별적 폭거다.

인류의 여성 지배사는 잔혹하고 비이성적이다. 유사 이래 남성은 여성들이 자신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차이를 남성지배 사회로 만드는데 악용해왔다. 남녀 차이를 앞세워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을 정치나 기업의 상층부 직위에서 배제하는 구실로 삼아왔다.

최 위원장은 이번 문제 발언은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큰 물의를 빚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으면서 핵심 인사들의 부적절한 자질과 언행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인사들이 언론 정책이나 언론 자유에 대해 관여하고 있으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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