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창간한 '세계WA(World Around)'의 손요한 편집장은 "블로그에 글 써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고 지난 1년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거주하는 12명의 해외 블로거들이 모여서 만든 세계WA는 주류 언론의 한계를 넘어 생활인의 눈높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을 차별화 포인트로 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세계 각국의 반응을 모은 기획기사로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세계WA는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공급하면서 한때 월간 페이지 뷰가 169만건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페이지 뷰를 수익으로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업무 제휴를 추진할 때 가장 많이 부딪혔던 질문이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들어갔느냐"였다고 했다. 손 편집장은 "이렇다 할 보상도 못하면서 필진들에게 좋은 글을 쓰라고 독려하는 건 무리였다"면서 "블로그의 가치를 지키면서 미디어를 키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블로그 마케팅 회사 태터앤미디어는 세계WA를 비롯해 지난해 5개의 인터넷 신문을 창간했는데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블로그의 수익모델이라면 배너광고를 내걸거나 포털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정도가 고작인데 아직까지는 어느 쪽도 매출이 크지 않다. 13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농심 성무관에서 열린 블로그 네트워크 포럼에서는 블로그의 생존 모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 국내 블로그 분포도. 포털 사이트 의존도가 90% 이상이다. ⓒ코리안클릭.  
 
야후코리아 정준 과장은 "대형 포털 사이트 중심의 네트워크 생태계가 블로고스피어의 다양성과 영향력 확대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과장에 따르면 국내 블로그의 90.4%가 포털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가 69.6%, 다음 블로그가 12.6%로 82.2%를 차지하고 싸이월드 블로그가 4.6%, 야후 블로그가 1.7%, 드림위즈와 파란 블로그가 각각 0.6% 정도다.

국내 블로그 10개 가운데 9개가 포털 블로그라는 이야기인데 그 이유가 뭘까. 일단 포털 블로그는 설치도 필요 없고 네트워크 비용이 들지 않는다. 간단히 클릭 몇 번이면 블로그를 만들 수 있다. 정 과장은 "포털 블로그의 장점은 엄청난 트래픽을 보장해 준다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포털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확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맨 바닥에서 시작하는 독립 블로그와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셈이다.

이 같은 가정은 통계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코리안클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으로 네이버 블로그의 페이지뷰는 20억건에 이른다. 그런데 이 가운데 검색으로 유입되는 페이지뷰가 13억건, 첫 페이지의 오픈 캐스트에서 유입되는 페이지 뷰가 2억건 정도다. 전체 페이지뷰의 4분의 3 정도를 네이버가 만들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네이버를 떠난다면 4분의 3 정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리퍼러 페이지뷰를 확인한 결과 네이버는 검색 결과의 28.7%만 외부로 내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2.3%는 네이버 내부의 지식IN이나 블로그, 카페, 뉴스 등으로 다시 유입되는 셈이다. 정 과장은 "이런 시스템에서 누가 네이버를 떠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포털 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결국 포털 블로그가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독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이야기다.

포털 블로그는 공짜인 대신 저작권에 제한을 받는다. 포털 사이트는 블로그의 콘텐츠를 검색 결과에 활용하거나 광고를 게재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필요할 경우 수정․편집까지 할 수 있다. 권리침해 신고가 들어올 경우 게시물 차단과 삭제 등 임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굴욕적인 약관 조항들도 많지만 대부분 사용자들이 공짜라는 이유로, 엄청난 트래픽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포털 블로그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포털 블로그가 아닌 독립 블로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없을까. 정 과장은 "검색이 잘 돼서 좋은 콘텐츠에 충분한 트래픽 유입이 돼야 하는데 네이버 등은 내부 콘텐츠를 띄우는데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메타블로그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결국 해법은 "네이버 외부에 좋은 콘텐츠가 많아지거나 네이버가 마음을 바꿔먹고 트래픽을 외부로 더 많이 흘려보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대중재화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콘텐츠를 많은 독자들에게 뿌려서 광고수익을 늘리는 방식이 종이신문에서는 먹혔지만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는 트래픽 부담만 될 뿐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강 연구원은 "소비자 시장을 단일화하면 광고도 죽는다"면서 "지불의사가 높은 소비자들을 독립그룹으로 분리하고 이들의 수요에 맞는 뉴스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뉴욕타임즈의 영어 배우기 아이폰 앱이나 슈피겔의 뉴스 기반 시사상식 퀴즈 앱 등을 벤치마킹 사례로 제안했다. 입시생이나 취업 준비생을 위한 뉴스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고 법조인 대상의 뉴스 플랫폼도 가능하다. 세분화된 지역 정보와 그 지역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지역 업소들 광고를 담는 하이퍼 로컬 저널리즘도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이다.

강 연구원은 소셜 마이크로 페이먼트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를테면 유용한 콘텐츠를 읽을 때마다 버튼을 눌러서 50원씩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고 정액으로 월 5천원 정도를 결제하고 내가 읽는 콘텐츠에 나눠서 지불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캐칭글이나 플래터, 팁조이 같은 서비스들이 이미 나와 있다. 강 연구원은 "이처럼 소액결제 시스템에 네트워크와 공유의 개념을 더해서 블로거 운동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이를 '관계망 지불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강 연구원은 "독자들이 직접 좋은 콘텐츠에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서로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대한민국 블로거 선언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블로그 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도 대중재화의 함정을 벗어나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콘텐츠 차별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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