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행사에 참석해 구설에 오른 데 대해 사과했다.

노 대표는 7일 자신의 블로그에 <감사와 함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 중요한 시국에 불필요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 대표는 이 글에서 "아버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조선일보사에서 (창간 90돌 행사에 참석해 주십사) 연락이 왔다"며 "아버님 장례를 치른 직후라서 바깥행사 나들이를 자제하고 있다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다른 간부들이 몇차례 더 연락이 왔고, 이번 행사만큼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분들도 가급적 모시고 싶다는 내용을 듣자 마은혁판사 사건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보좌관들의 국회농성 기소사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마 판사에 대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마 판사가 노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연구소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사실 등을 들어 '이념 공세'를 편 바 있다.

   
  ▲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에서 열린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행사에서 참석자들 대표 103인이 길게 놓인 기념떡을 커팅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 대표는 "비서실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고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조선일보 창간기념식 행사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마은혁판사 사건을 거론하며 그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사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옳은 것이냐며 되물었고, 마 판사 사건의 보도태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라도 참석하겠다고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정당과 언론의 관계는 특수한 측면이 있는지라 서로 싸우고, 규탄하고, 비판하면서도 끊임없이 만나서 설득하고 토론하고 항의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정당의 대표나 역대 정권에서처럼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언론사의 창간기념일에 참석하는 것은 언론의 논조나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이뤄지는 의례적인 일이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대표는 이어 지난 5일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오직 저 한사람"이라며 "이 중요한 시국에 불필요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진보신당 당원들과 저를 아끼는 트위터친구들께 당혹감을 안겨드린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노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도 "트윗친구 여러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함께 올립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변함이 없으며 늘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올리기도 했다.

노 대표는 "저의 취지가 정당했다 하더라도 저의 처신이 적절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지적과 조언을 듣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며 "동시에 저는 조선일보 등 생각이 다른 언론들과 격의 없는 토론의 시간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 대표는 "그날 면식이 있는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논객 한 분은 저에게 소주 한잔 하자고 청했다"며 "만일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저는 세상을 바꾸려는 정당의 대표답게 조선일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고 인식과 태도의 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노 대표가 블로그에 올린 글 전문이다.

감사와 함께 사과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위로하고 격려해준 덕분에 아버님 장례를 무사히 치뤘습니다. 유족을 대표해서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특히 진보신당 당원들, 정몽준, 정세균, 이회창, 강기갑, 송영오, 이재정대표 등 여야 정당 대표들과 국회의장, 국무총리, 대통령실장께서 직접 빈소를 찾아주신데 대해서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평소 저와 가까운 분들 외에도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직접 빈소를 찾아와 조문을 해주셨습니다. 최근 판결내용으로 검찰과 공방이 뜨겁게 오갔던 판사들도 찾아왔고 X파일사건 당시 저를 유죄로 판단한 검찰고위간부도 왔습니다. 삼성을 고발한 변호사도 왔고 삼성고위임원도 왔습니다. 촛불단체 대표자들도 왔고 촛불 당시 진보신당 당사를 난입했던 극우단체 대표자도 왔습니다. 죄없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며칠 전 풀려난 분도 오셨고 경찰청 서울 책임자도 왔습니다. 정치노선과 입장을 넘어서서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조선일보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창간 90돌 기념식에 참석해주십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른 직후라서 바깥행사 나들이를 자제하고 있다고 정중히 사양했습니다만 다른 간부들이 몇차례 더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행사만큼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분들도 가급적 모시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은혁판사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마은혁판사는 20년전 저와 함께 활동했던 사이였습니다. 그후 법관의 길을 걸었고 자연스레 왕래가 뜸했습니다. 작년 가을 마판사는 열흘 간격으로 부친과 부인을 잃었고 소식을 들은 저는 두차례 조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달쯤 후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연구소의 출판기념회가 후원의 밤을 겸해 열렸습니다. 평소 저의 정치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마판사가 그날 참석해서 조문에 대한 답례인사를 하고 약간의 후원금도 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 보좌관들의 국회농성 기소사건과 관련하여 마은혁판사의 공소기각 판결이 있었습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조선일보등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마판사의 판결을 비난하였습니다. 나아가 마판사가 제 연구소 후원행사에 참석한 사실을 알아내고 연일 공격을 했습니다. 판결내용에 다른 견해를 갖는 입장에서의 논리적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출신 정치인 행사에 간 것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뜻이고 그런 개인적 정치성향이 민주노동당 관련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였습니다. 문상답례 차원의 의례적인 참석일 뿐 정치적 지지여부와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발 물러선 언론조차 여하튼 현직 판사가 정치인 행사에 간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며칠 간격으로 두 차례씩 사설을 쓰며 공격했습니다. 결국 보수언론들의 여론몰이에 법원도 손을 들었습니다. 법원장은 마판사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였다며 경고처분했고 정기 법관인사에서 시국사건을 맡지 않는 가정법원으로 전보발령조치 하였습니다.

저의 비서실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고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조선일보 창간기념식 행사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마은혁판사 사건을 거론하며 그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사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옳은 것이냐며 되물었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의례적 차원에서 참석해달라는 조선일보의 초청취지와 마은혁판사 사건 보도태도와의 모순도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마판사사건의 보도태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라도 참석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정당과 언론의 관계는 특수한 측면이 있는지라 서로 싸우고, 규탄하고, 비판하면서도 끊임없이 만나서 설득하고 토론하고 항의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특정계기가 되면 언론사를 순회방문하고 기자들과도 끊임없이 간담회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당의 대표나 역대 정권에서처럼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언론사의 창간기념일에 참석하는 것은 언론의 논조나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이뤄지는 의례적인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사의 창간기념식에는 다양한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조선일보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참석했고 조선일보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고 김대중대통령 영부인께서도 축하전보를 보냈고 용산사건 때 조선일보와 정반대 입장에서 유가족들을 지원한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도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오직 저 한사람입니다. 그만큼 제가 서있는 위치의 민감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 중요한 시국에 불필요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진보신당 당원들과 저를 아끼는 트위터친구들께 당혹감을 안겨드린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의 취지가 정당했다 하더라도 저의 처신이 적절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지적과 조언을 듣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동시에 저는 조선일보등 생각이 다른 언론들과 격의 없는 토론의 시간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날 면식이 있는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논객 한분은 저에게 소주 한잔 하자고 청했습니다. 만일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저는 세상을 바꾸려는 정당의 대표답게 조선일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고 인식과 태도의 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6년전 저는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초청으로 조선일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저는 조선일보 안에 들어가서 저의 생각을 전하겠다며 강연을 강행하였습니다. 제 강연의 주된 기조는 조선일보도 이제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말머리에 30년전 집에서 조선일보를 보게된 내력을 말하고 덕담도 한마디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덕담 중 본 뜻과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도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저의 지적에 공감하는 기자들과 뒤풀이를 가졌고 그 중 몇사람은 직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후보를 찍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일부에서 저의 그날 강연을 놓고 ‘조선일보의 30년 애독자로서 조선일보를 최고의 신문으로 고무찬양한 강연’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평양을 방문한 한 교수가 방명록에 덕담 한마디 쓴 것에 대해 북한을 고무찬양한 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조선일보가 기사를 쓰기 전의 일입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은 온데 간데 없고 덕담 중 몇마디로 저의 철학과 소신과 강연내용을 왜곡한 것입니다.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니 ‘아니면 말고’라는 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 안에도 ‘조선일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옛말 있습니다. 제가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싸우는 동기가 되었던 ‘조선일보식 글쓰기’를 닮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2010년 3월 7일   노회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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