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유인촌의 '허그'를 피한 이유
김연아가 유인촌의 '허그'를 피한 이유
'움짤'에서 읽어본 '허그'의 성찰적 상호성

최근 인터넷에는 ‘유인촌 굴욕’이라는 검색어가 인기다. 클릭해보면, 재미있는 동영상과 사진에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다. 동영상의 내용인즉, 유인촌 장관이 캐나다에서 돌아온 김연아를 향해서 입술을 내밀면서 껴안으려고 하자 김연아가 거부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이에 당황한 유장관은 김연아로부터 떨어지면서 곧바로 얼굴과 시선을 돌려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인사하듯이 팔을 크게 내저으면서 곤란한 상황을 수습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아무래도 굴욕스러운 꼴이 아닐 수 없다.

동영상이라기보다는 정확히 ‘움짤’인데다가, 프레임 바깥에 과연 유장관의 인사를 받는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유장관의 팔 인사를 받는 이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결코 수습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인터넷에 오른 '유장관 굴욕' 움짤  
 

 

이 움짤 아래에 놓인 사진에서는 오서 코치와 유장관이 서로 껴안고 있고 김연아는 뒤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연아의 눈썹과 눈꼬리는 평소보다 올라가 있고, 콧구멍도 커져 있으며, 코 양옆의 얼굴 근육도 씰룩이고 있다.

불쾌함, 분노, 혐오 등의 감정이 뒤섞인 오묘한 표정이다. 물론, 김연아이니만큼 당연히 이 표정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사진을 보고 나는 오서 코치야말로 이 시대의 참다운 ‘용자’ 중의 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장관과 허그하는 오서코치  
 

구미 사람들이 인사로 가볍게 껴안는 것을 허그(hug)라고 한다. 지난번에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가 이호석 선수의 실수를 용서하면서 푸근하게 안아준 적이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허그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편 선수가 골을 넣었거나 스파이크를 성공시켰을 때 선수들끼리 하는 것도 허그다.

   
  이호석 선수를 안아주는 성시백 선수 어머니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한 사람들 얘기로는 인사로서의 허그가 볼 키스(cheek kissing), 그러니까 친구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키스 인사보다 더 무겁다고들 한다. 볼 키스가 더 형식적인 반면에, 허그는 더 친밀성을 나타낸다는 얘기다. 

관례적인 볼 키스를 묘사할 때 쓰는 영어 동사는 구어로 peck이다. peck이란 원래는 ‘쪼다’는 뜻이니까, 볼 키스는 쪼아대듯이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한다는 뜻이다. 볼 키스라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볼에다가 입술을 대는 시늉만 하기도 한다. 횟수는 나라에 따라서 볼 한 쪽에만 하기도 하고, 양 쪽 다에 하기도 하고, 심지어 세 번 하는 경우도 있다. 

   
  남자들끼리의 허그  
 

관례적인 인사 키스지만 의외로 미묘한 구석도 있다. 예컨대, 북미 교회 중에는 예배가 끝난 뒤 목사가 모든 신도들에게 볼 키스를 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목사가 남성이고 신도가 여성인 경우, 볼 키스만 해야 할지 허그까지도 해야 할지는 그때그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 때의 분위기 및 상대방 여성 신도가 원하는가의 여부를 순간적으로 파악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인 남성 목사의 이런 내용의 체험담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 

허그나 볼 키스가 문화적으로 낯선 우리로서는, 북미나 유럽 사람들의 경우, 허그나 볼 키스를 무조건적으로 서로 쉽게 해댄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실상은 약간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최근 나토정상회담을 하러 유럽에 간 오바마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루니와의 일차 대면에서 볼 키스를 하지 않았다. 반면에 미셀 영부인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허그와 동시에 볼 키스를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와 허그만 하고 볼키스 안하는 예  
 

미국과 유럽의 신문들은 서로 나뉘어서, 똑같은 사진을 두고서, 브루니가 다가왔는데 오바마가 피했다고 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다 브루니 쪽에서 거부한 것이 분명하다고도 했다. 어찌 보면 시시하고 사소한 것이지만 대서양 양쪽 사람들의 심심풀이를 잠시 해소시킬 수 있는 가십 거리인 것이다. 아무튼 이런 기사들을 의식한 것인지는 몰라도, 좀 더 나중에 이루어진 피아노 콘서트 자리에서 오바마와 브루니는 결국 관례적인 볼 키스를 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와 볼키스 하는 예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유장관의 시도가 아주 심한 ‘오바’라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에게도 허그나 볼 키스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진대, 한국 사람들끼리의 허그, 그것도 감히 ‘우리 김연아’와의 일방적인 허그 시도라는 것은 애당초 야만적인 것이다. 

허그든 볼 키스든 간에 심리적 상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체 접촉을 통한 나의 인사 법에 상대방도 기꺼이 응할 것이라는 문화적 확신과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만, 허그든 볼 키스든 간에 자연스레 성사된다. 이러한 성찰적 상호성이 전제되지 않은 허그는 레슬링이나 격투기가 되고 만다. 

   
  레슬링에서 격투를 위해 서로 부둥켜 안은 예  
 

성찰적 상호성이 전제되지 않는 경우, 특히 일방적으로 시도하는 쪽이 남성이나 강자고 당하는 입장이 여성이나 약자라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고, 또 두고두고 ‘찝찝’해지기 마련이며, 때로는 사람에 따라서는 심지어 일종의 성적 학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상호성 없는 허그  
 

김연아는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던 외국 선수들과 허그를 여러 번 했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도 시상식 때인가 아사다 마오와 가벼운 허그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유인촌 장관의 무모하고도 일방적이며 야만적인 시도에 대한 김연아의 분명한 거부 동작은 글로벌 매너 종목에서의 금메달감이었고, 그 표정 연기의 예술성도 일품이었다.  

   
  아사다 마오에게 허그하는 김연아 선수  
 

최근 몇 년 사이에 갖가지 신종 플루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구미과 아랍 지역에서는 직접적 신체 접촉을 통한 인사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사람들은 악수를 생략하고, 키스를 피하는 한편, 등을 몇 차례 두드리는 것으로 허그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연아에게는 유장관과의 허그가 ‘호환, 마마’보다도 더 두려웠던 셈이다. 만약, 유인촌 장관이 그래도 꼭 누군가와 허그를 하고 싶다면, 선인장이나 고슴도치와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아님, 생명들도 거부권을 갖는다고 한다면, 낙동강의 그 차갑고도 흉악한 포클레인 갈퀴손들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염을 피해 마스크를 쓰고 입맞추는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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