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탈옥시켜서 쓰다가 최근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했던 사람들은 낭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운영체제 버전은 3.1.2였다. 지난달 2일 3.1.3 버전이 출시됐는데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애플에 따르면 배터리 잔량 표시가 좀 더 정확하게 됐고 일본어와 일부 어플리케이션의 충돌 문제가 해결된 정도다.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업그레이드가 탈옥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이폰 탈옥(jailbreak)은 해킹의 일종이지만 크래킹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크래킹은 적법한 권한을 갖지 않고 다른 사람의 데이터 정보에 접근해 이를 가져가거나 수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탈옥은 크래킹과 달리 제조사가 막아둔 하드웨어의 기능 제한을 푼다는 의미다. 이른바 탈옥 폰 사용자들은 탈옥이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인 것은 사실이다.

   
   
 
먼저 탈옥을 하면 뭐가 좋은가부터 살펴보자.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갈 어플리케이션을 앱스토어에서만 구입하도록 하고 있다. 애플이 허용하지 않는 어플리케이션은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탈옥을 하면 씨디아(Cydia) 스토어라는 게 설치되는데 이게 어둠의 앱스토어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는 애플이 등록을 거부한 어플리케이션과 다양한 부가 기능을 내려 받을 수 있다. 모두 무료로 공개된 것들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 사용자들 불만 가운데 하나는 통화목록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목록 전체를 지우는 건 가능하지만 일부를 지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 그런데 탈옥을 하면 목록을 수정하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아이콘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고 카테고리를 지정할 수도 있다. 애플은 와이파이 모드에서 스카이프 등 인터넷 전화를 쓸 수 없도록 제한을 걸어뒀는데 탈옥을 하면 이런 제한도 풀린다. 멀티태스킹 제한도 풀 수 있다.

그러나 탈옥 폰 사용자들이 열광하는 건 무엇보다도 앱스토어에 오른 수많은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공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탈옥 폰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면 수천가지 크랙 어플리케이션이 올라있는데 이를 아이튠즈를 통해 옮겨 담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설치가 끝난다. 구입한 어플리케이션을 크랙하는 것은 합법, 이를 내려 받는 것까지도 합법이지만 크랙된 어플리케이션을 쓰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단점도 많다. 탈옥한 아이폰은 전원을 끄거나 배터리가 떨어지면 다시 부팅이 안 된다. 반드시 PC에 연결해서 탈옥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시켜줘야 한다. 탈옥 폰은 아무래도 배터리 소모가 더 많기 때문에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애플은 탈옥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탈옥된 아이폰은 애프터서비스도 안 된다. 탈옥한 아이폰은 인터넷 뱅킹도 차단된다. 우회 경로가 뚫리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탈옥한 아이폰은 보안에 취약하다. 자유롭게 크랙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애플의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앱스토어에 오른 원본과 같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악성 코드가 들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어플리케이션은 와이파이로 데이터가 유출될 가능성이 지적되기도 했다. 탈옥을 하면서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시 정리하자면 탈옥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크랙된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아 쓰는 건 불법이다. 대부분의 탈옥 폰 사용자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굳이 불법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씨디아의 스토어의 합법적인 어플리케이션과 다양한 부가기능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아이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어둠의 경로를 드나들려면 어느 정도 보안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모범시민'으로 남을 것인가 '탈옥수'가 될 것인가 한번쯤 고민을 했겠지만 펌웨어를 3.1.3 버전으로 업데이트했다면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3.1.3 버전에서는 탈옥을 할 방법이 전혀 없다. 많은 사용자들이 탈옥 프로그램인 블랙레인의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지만 블랙레인의 개발자는 "아무 생각없이 펌웨어 업데이트를 한 멍청한 사용자들을 배려할 생각이 없다"고 트위터에서 밝힌 바 있다.

탈옥은 앱스토어에서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는 애플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그러나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고 아무리 펌웨어를 업데이트 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뚫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애플은 최근 일부 해커들의 앱스토어 접근을 차단하는 등 경고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아이폰을 서비스하고 있는 KT 역시 탈옥 폰의 음성통화를 막겠다고 밝히는 등 탈옥수를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이르면 이달 말 애플 태블릿 PC가 출시되면 그에 맞춰 아이폰 펌웨어도 4.0으로 업데이트 될 것을 학수고대고 있다. 블랙레인의 업데이트도 그에 맞춰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탈옥을 마냥 방관하지는 않겠지만 한번 탈옥의 자유를 누린 '탈옥수'들이 다시 모범시민으로 돌아올 것인지도 의문이다.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탈옥수들의 어둠의 커뮤니티도 확대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