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최근 경향신문의 삼성 비판 외고 누락과 한겨레의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 미게재 등 삼성그룹의 광고 재개 즈음에 진보언론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내면화한 굴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3일 한겨레에 게재한 홍세화칼럼 <아픔>에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한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칼럼이 경향신문에서 누락된 뒤 인터넷 매체에 실린 데 대해 "김 교수 칼럼의 망명 사연은 오늘 한국의 진보언론이 겪는 존재론적 아픔의 속살을 드러낸다"고 개탄했다.

홍 위원은 또 "과연 그 누구인가, 이틀 뒤 1면에 사과문을 실은 경향신문과, <삼성을 생각한다>의 내용을 사회면 머리기사로 소개하기는 했으나 책 광고는 관행인 할인가격 대신 정상가격을 요구하여 아직 게재되지 않고 있는 <한겨레>에 내면화한 굴종을 자백하라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이라며 한겨레의 광고 미게재 배경에 '내면화한 굴종'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 3월3일자 한겨레 35면 <홍세화칼럼>  
 
홍 위원은 이어 "오늘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이건희 삼성 총수의 말보다 더 모욕적인 언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 또한 이 칼럼이 실릴 것인지 가늠하면서 제목을 ‘아픔’이라고 에두르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라고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일찍이 일인 폭군 통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던 에티엔 드 라 보에티는 그 답을 만인의 ‘자발적 복종’에서 찾았다"며 "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의 나이는 고작 18살이었는데, 이 16세기 인물의 발언이 21세기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홍 위원은 "단돈 48억원(증여세 16억원 제외)으로 연 200조 매출 기업의 경영을 결국 ‘합법’적으로 승계하게 된 과정을 알기 위해서나, 삼성 떡값을 챙겼다는 의혹을 사도 법무장관이 될 수 있는 우리 사회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물신 지배에 순응하여 인간 본성의 발현인 자유인의 길이 아닌 굴종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하여 들씌워진 욕망체계로 인간성을 훼손하는 데까지 이른 우리의 아픈 몰골을 되돌아보기" 위해 "우리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 달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외딴섬에 정착한 분"에게 받은 이메일 “작년 여름, 오랫동안 사용하던 삼성 신용카드를 철회한 것이 그나마 유일하게 행동으로 옮겼던 일 같습니다”를 소개하며 "거기엔 우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라고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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