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 지난 18일 밤 편집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20일 주말, 남한강 일대를 돌아보는 환경운동연합 나들이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요즘 'MBC 사태'로 골머리를 썩던 중이라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에 선뜻 동의했다. 그런데 당일이 되자 비로소 '나들이'가 아닌 '출장'임이 드러났다.

오전 8시 4분. 양재역 부근에 도착하자 '움직이는 환경학교'이라고 쓰인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불과 4분을 늦었는데 국장은 "지각을 했냐"며 벌써부터 불호령이다. 이날 기행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환경운동연합 4대강 특위 주최의 <남한강 '봄, 눈물 그리고 강'> 기행은 오후 8시까지 시간대·코스별로 남한강 여주 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구성돼 있었다.

"환경 운동하면서 많이 분노했는데, 요즘 4대강을 가보면 오히려 가슴 많이 아프다. 오늘 공사 현장을 가보면 신음하는 자연의 소리를 느끼실 것이다. 저도 작년에 가봤는데 가슴이 많이 아팠다."

 '주말 나들이' 전화, 알고보니 '출장'?

   
  24시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여주 강천보 건설현장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 강천보 건설공사로 폐허가 된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종남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버스가 출발하자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환경연합 시민기자, 환경영화제 제작자, '윈디시티' 김반장, 고영재 전 경향신문 사장, 문현숙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정세용 내일신문 논설주간, 김경혜 라디오 21 기자 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은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여주의 여강(麗江)으로 향했다.

10시께 여주에 도착하자, 이날 일행을 안내할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이 버스에 탔다. 이항진 위원장은 "강을 갈기갈기 찢어놨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우리나라 전국 강물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새들이 알을 낳던 곳도 무덤처럼 돼 버렸다"는 말에 이날 둘러볼 4대강 사업 현장에 벌써부터 소름이 돋았다.

이호대교에 버스가 잠시 멈춰 섰다. 한창 진행 중인 건설 현장을 보니 이 위원장의 말에 점점 실감이 갔다. 흐르는 강 곳곳이 흙으로 제단돼 있었고, 그 위를 트럭이 쉴새 없이 오갔다. 다리 밑엔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갈대숲이 빼곡했던 곳엔 시커먼 오니토가 쌓여 있었다.

"4대강 가보면 가슴 많이 아팠다"…24시간 공사현장, 폭파 소리 연이어

   
  ▲ 강 바닥의 바위를 폭파하는데 사용하는 기계가 현장 곳곳에 있다. 주로 점심 때 폭파가 진행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여주 강천보 건설은 현대건설이 추진중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강천매운탕 집 앞에서 만난 공사관계자는 휴일도 없이 공사하느냐는 질문에 "홍수철 오기 전에 후딱 끝내야지요." 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어 도착한 곳은 강천보 공사현장이었다. 강천보는 현대건설 등 9개사가 참여해 작년 10월부터 내년 12월까지 790일(착공일로부터) 동안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장 관계자는 "어디 어디 언론사가 왔나"며 일행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요즘엔 우린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바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곳은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 한쪽 부분의 보 기초 공사를 먼저 진행 중이었다. 지형 특성상 흙·모래 바닥을 걷어내면 바로 바위가 나오기 때문에, 곳곳엔 바위를 폭파하는 기계가 즐비했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강 주변엔 '생명이 깨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한강'이라는 큰 팻말이 보였다.

일행에게 다과를 제공한 한 주민은 복잡한 도심을 피해 몇 년 전 이곳으로 왔는데 하필이면 마당 앞에서 이런 광경을 매일 보게 됐다. 여주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사우디 아라비아 공사 과정처럼 24시간 공사를 한다"며 "점심 때 주로 폭파를 하는데 폭파를 할 때는 주변 집 테이블이 흔들릴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정부 각 부처는 4대강을 살리겠다고 했고, 강 주변을 시멘트로 발라 자전거 도로도 만들어 준다고 했고, 홍수 예방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이 현장이 그런 곳일까. 이번 기행에 참가한 정민걸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의 분석은 달랐다.

"정부에서는 댐이 아닌 보라고 한다. 그러나 영어엔 '보'라는 표현은 없고 큰 댐(large dam), 작은 댐(small dam)으로 나뉘는데 강천보는 큰 댐으로 분류된다. 댐에 물이 차면 강의 첨도 현상에 따라 물이 넘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팔당댐 물이 넘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팔당댐을 열면 그 아래 지역은 어떻게 되나. 과연 일기 예측을 미리 해 수문을 열 수 있을까. 최근엔 기후 변화로 일기 예보의 정확성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물이 안 넘쳐도 문제가 생긴다. 고여 있는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만약에 위쪽 지방 댐의 문을 열면 그 위쪽 댐이 보유한 물이 없어진다. 그러면 그쪽 댐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다."

결국 전국에 4대강 사업과 관련해 20개의 보가 만들어지면, 이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보의 실효성·경제성·환경성 모두 '낙제점'이라는 전망이다.

   
  ▲ 오탁방지막을 고정시키는 닻 역할을 하는 갈퀴가 흉물스럽게 강물에 박혀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4대강 살리고 홍수 예방한다던 MB…환경학 교수는 '모두 낙제점' 평가

특히 생태·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일행은 구영동고속도로 남한강교를 건너 도리섬·바위늪구비 일대를 걸으며 직접 현장을 살폈다. 여주군 강천면 강천 1리인 이곳은 멸종위기 종 2급인 '단양쑥부쟁이',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 작은 호랑이라고 불려지는 '삵' 등이 있는 빼어난 습지 지역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이곳을 직접 찾은 적이 있던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은 갈대숲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포크레인이 밀고 간 현장에 깜짝 놀랐다. 모래판에는 고라니, 삵의 발자국 같은 게 곳곳에 보였다.

   
  ▲ 남한강교에서 내려다 본 도리섬 및 바위늪구비 가는 길. 여의도 밤섬처럼 이곳은 푸른 버드나무로 뒤덮인 곳이었지만 사진처럼 모든 나무는 뿌리째 뽑혀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중단됐지만, 공사 초기엔 멸종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까지 훼손됐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일행이 걸어가는 오른편에 포크레인이 밀어 놓은 나무 더미가 보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항진 위원장은 "멸종위기에 처한 단양쑥부쟁이가 있는 데를 포크레인이 대책 없이 밀고 왔다"며 "지금은 언론이 때리니까 공사를 중단했지만, 이 넓은 지역을 도륙했는데 어떻게 복원이 될까"라고 하소연을 했다. 또 그는 "보 만들면 고라니, 삵 같은 것들은 어디서 사나"며 "정부는 얘네가 잠깐 어디로 갔다가 다시 온다고 하네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내보였다.

특히 단양쑥부쟁이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이다. 충주댐 건설이후 대부분의 서식지가 수몰되면서 현재 남한강 바위늪구비 일대에서만 발견된다. 현재 공사 현장 주변엔 빨간색 띠로 단양쑥부쟁이 보호지 표시가 돼 있었다.

단양쑥부쟁이 보존한다던 정부, 실제 가보니 딴 곳 보존하고 있어

그런데 문제는 언론의 지적을 받고도 현재까지 정부가 '단양쑥부쟁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존 조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가보니 단양쑥부쟁이라고 표시된 지역엔 단양쑥부쟁이가 거의 없고 다른 곳에 즐비했다.

   
  ▲ 단양쑥부쟁이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이다. 충주댐 건설이후 대부분의 서식지가 수몰되면서 현재 남한강 바위늪구비 일대에서만 발견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이 도리섬을 지나며 일행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민걸 교수는 "단양쑥부쟁이는 한 곳이 아닌 여기저기서 옮겨 다니며 산다"며 "단양 충주댐 생기고 멸종된 지 알았는데 최근 여주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한번 죽였는데 또 죽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항진 위원장은 "뉴타운 개발하면 원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살수 없듯이 단양쑥부쟁이도 개발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운하백지화공동행동은 단양쑥부쟁이가 있는 바위늪구비 습지 훼손으로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수자원 공사 강천보 건설단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황이다.

오후 1시께 강천1리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일동의 명의로 '단양 쑥부쟁이보다 지역 주민이 우선이다', '남한강 살리기 방해하지 마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공사 관계자는 "여기엔 100여 가구가 사는데 주민들은 여름이면 홍수가 크게 나는 것 걱정하고 있다"고 이곳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항진 위원장은 "진정으로 4대강을 살리려면 지천부터 공사를 해야 하는데 정부는 본류부터 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홍수 예방 등의 4대강 살리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 제주의 올레길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여강길의 대부분은 3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라는 준설공사로 인해 사라져버릴 위기에 쳐해있다. truth710@  
 
   
  ▲ 인기그룹 '윈디시티'의 김반장은 강의 소리를 몸으로 느끼고 싶다며 맨발로 여강길을 걸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여강길에서 만난 주인없는 고깃배에 어부가 잡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팔뚝만한 누치들이 한가득 펄떡이며 봄기운을 전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참가자들의 인기척에 철새들이 멀어져가며 강 위에 흔적을 남긴다. 여강길. 이치열 기자 truth710@  
 

"오늘 돌아보신 땅은 사라질 위기…그러나 자연 아름다움 얘기하고 그들 감동시켜야"

2시 반부터는 해돋이 산길, 섬강교를 지나 흥원창까지 1시간 30분 동안 여강 길을 건넜다. 일행은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산 기슭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 보기도 했고, 점심 식사 때 마신 막걸리의 기운을 살려 즉석에서 전국 노래 자랑을 열기도 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흰꼬리수리가 일행의 귀가 길을 안내했다.

   
  ▲ 참가자들은처음 걸어본 여강길에 매료되어 꼭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길이 사라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여강길. 4대강 사업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 이곳도 현재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어릴적 부르던 동요가 절로 떠오르는 여강길. 이치열 기자 truth710@  
 
   
  ▲ 사라져버릴 운명의 것들이라는 생각에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고 바라보는 곳마다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여강길. 이치열 기자 truth710@  
 
   
  ▲ 누가 무엇을 얻기 위해 이 풍경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는 것일까?  여강길. 이치열 기자 truth10@  
 

석양이 남한강에 붉게 물들자 이날 기행은 마무리 됐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이날 하루 황폐해진 건설 현장부터 아름다운 여강 길까지 일행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다. 국장에게 속아 왔지만, 그 결과 MB와 정부에 속아 온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됐다.

4대강 사업이 계속 강행된다면 이번 기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진실을 체험하는 기회조차 강탈 당한 채 정부의 '4대강 홍보'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러나 '남한강 지킴이' 이항진 위원장은 이럴수록 일행에게 희망을 노래하자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 여강길 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고 있는 <윈디시티> 김반장. 김반장이 휴식시간에 부른 노래의 동영상은 다음 주소를 클릭. http://www.youtube.com/watch?v=a2CyHAiTgfs 이치열 기자 truth710@  
 

"오늘 돌아보신 여기도 사라질 위기의 땅입니다. 그러나 즐거움, 아름다움, 기쁨을 얘기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감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언스 기자도 4대강 사업 '우려'

남한강 기행에 참석한 일행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감을 전했다.

   
  ▲ Dennis Normile 사이언스 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Dennis Normile 사이언스 기자는 "기자이기 때문에 중립적(neutral) 입장"이라면서도 "4개강 사업의 환경적인 것에 걱정(worry)이 된다"고 말했다. '걷는 사람'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고영재 전 경향신문 사장은 "걷는 것은 자연과 만나고 하늘과 소통하는 게 아닌가"라며 "처참한 환경을 보면서 자연과 만나고 하늘과 소통하는 길이 파괴되는 것에 여러분도 공분을 느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현숙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은 "제주도 올레길처럼 아름다운 길이 사라지는게 아쉽다"면서 "한겨레도 4대강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지 고민 중인데 현실적인 실생활과 접촉해서 접근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혜 라디오 21 기자는 "북극의 눈물이 아니라 한강의 눈물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며 "4대강 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함께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현재 '윈디시티' 김반장과 함께 4대강 사업 관련 뮤직 비디오를 준비 중인 황혜림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외국에는 댐을 부수는 분위기라 4대강 사업과 같은 영상을 다룬 것은 거의 없다"며 한국 초유의 상황에 주목했다. 김반장도 "음악을 하는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진다. 헛되지 않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3월22일 물의날에 3~5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블로거 한동문씨(http://blog.naver.com/yalee1212)는 "블로그에 4대강을 '망국운하'라는 제목으로 달았다"며 "삼라만상은 처처에 그 자리에 있는게 아름답다"고 밝혔다. 류희수씨는 "평소 제일 좋아하는 말이 제인구달의 '자연이 인간을 치유한다'라는 말"이라며 "인간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자연이 먼저 치유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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