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 기사거리가 부족했던 때문일까. 16일 아침 주요 경제지들이 일제히 슈퍼 앱스토어 소식을 1면에 내세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세계 24개 통신사가 참여하는 도매인 어플리케이션 커뮤니티를 창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삼성전자가 독자적인 운영체제 바다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는 소식도 큰 비중으로 소개됐다.

한국경제는 1면 머리기사로 "글로벌 통신사 대반격… 슈퍼 앱스토어 만든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인 30억여명이 가입해 애플과 구글 등 통신사업을 하지 않는 비 통신 정보기술 회사들이 주도해 온 모바일 앱스토어 시장에 큰 판도 변화가 일 전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면에는 "베일벗은 삼성 바다폰… 빠른 인터넷·다양한 콘텐츠로 아이폰 잡는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경제도 1면 머리기사로 "세계 모바일 생태계 대격변 온다"는 제목으로 "세계 통신사들이 각각의 앱스토어와 연동해 세계 각지에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3면 "애플 맞설 연합군 구축… 단일표준 앱스토어로 반격 태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내 고객들은 풍부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개발자들도 거대한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울경제 2월16일 3면.  
 
그러나 운영체제와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천차만별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여러 통신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슈퍼 앱스토어를 만든다고 해서 없던 애플리케이션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그 애플리케이션을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이다. 슈퍼 앱스토어 구상에 세계 1·2위 단말기 제조업체인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빠져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통신사들끼리 모여서 앱스토어를 만든다? 그게 가능할까.

이를테면 이번 슈퍼 앱스토어 구상은 애플과 구글 등 새롭게 떠오른 신흥 강자와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난 3위 이하 열등생들의 연대인 셈인데 이런 모임이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내 언론들이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과 달리 외신은 거의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국내 언론은 KT와 삼성전자의 보도자료를 배껴쓰기에 바쁜 상황이다.

   
  ▲ 한국경제 2월16일 1면.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입자 30억명이라는 허황된 구호 역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애플과 구글이 통신과 단말기 사업자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혁신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발상을 뒤엎는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유통환경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슈퍼 앱스토어를 만든다고 한들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 이들을 따라잡기는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기사의 압권은 서울경제가 "우리나라는 이미 국가 표준인 모바일 플랫폼 위피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다 개발능력과 인적자원도 풍부하다"면서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길을 열어주는 것이 KT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라는 이석채 회장의 독려로 이번 일을 주도하게 됐다"는 KT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다. 위피는 국내 통신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전봇대로 꼽혀왔던 폐쇄적인 개발환경이었는데 지난해 폐기됐다.

   
  ▲ 한국일보 2월16일 16면.  
 
삼성전자 바다폰에 대한 과도한 찬사도 쏟아졌다. 삼성전자가 15일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에 따르면 바다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는 지난해 출시한 아몰레드보다 5배 이상 선명한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의 하드웨어 기술력과 바다 플랫폼을 탄생시킨 소프트웨어 역량이 결합된 최고의 제품"이라고 소개했지만 개선된 화질 말고는 특별한 차별화 포인트가 없었다.

그런데 머니투데이는 1면 머리기사로 "바다폰, 화질·반응속도 놀랍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머니투데이는 "화면 터치에 대한 반응속도도 빨라졌다"면서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화면속도는 아이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머니투데이는 "2개 손가락으로 사진 등을 줄였다 확대했다 할 수 있는 멀티터치 속도는 다소 떨어졌다"고 덧붙였는데 제목과 본문이 어긋나는 셈이다.

세계일보는 "그동안 하이엔드 제품으로 얼리어답터, 비즈니스맨 등 일부 소비자만 사용했던 스마트폰을 앞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를 삼성전자가 주도할 것"이라는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정작 어떻게 대중화하겠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가격을 낮춘다는 말인지, 기능을 더 편리하게 하겠다는 말인지, 삼성전자의 최근 전략을 보면 그 어느 쪽도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향신문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한겨레가 "아이폰과 견줄만하다"고 평가한 것도 주목된다. 경향신문은 "바다를 통해 완벽한 모바일 생태계를 구성했다고 자평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를 열고 기존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의 경계를 허무는 구실을 할 것"이라는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쳤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 온라인 신문인 기즈모도는 이번에 공개된 삼성전자 바다폰과 관련 "처음 바다를 발표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바다를 보고나니 이건 미친 게 아니라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국내 언론의 삼성전자 감싸기는 객관성을 잃은 지 오래다. 통신사들의 폐쇄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