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하고 나서 MBC 사람들이 술 많이 먹었대요. 큰 돌덩이가 가슴에 있었는데 없어진 것 같다고 하네요. 사실 가뜩이나 외부에서 회사 흔들고 있어서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었죠.”

지난 25일. 폭풍우가 지나가고 잔잔해진 호수처럼 MBC는 조용한 듯 보였다.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려 당장 후폭풍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담담히 말하던 김보슬 전 PD는 여전히 ‘응어리’가 맺혀 보였다.

김 PD는 “시간이 길었지만 계속 끊임없이 거기에 매여 있었다.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던 것”이라며 소송 얘기부터 꺼냈다. 관련 소송은 총 8건. 대법원까지 갈 경우 판결만 20여 건에 달한다.

송일준 PD는 “애초부터 가만히 있던 사람을 나무에 올려놓고 손가락질하다가 이번엔 나무에서 내려놓고 축하하고 고마워하는 상황”이라며 “슬픈 희극”이라고 말했다. 코미디 같은 현실이지만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MBC 제작진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21개월 수난사, “절대 못 잊을 것”= 2008년 4월29일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부터 무죄 판결까지 21개월. 그동안 제작진의 뇌리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였다. 한 제작진은 개인 사정을 모두 밝히진 않았지만 가족이 힘든 것을 보고 “통곡하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로 인한 가족의 고통은 작지 않아 보였다.

작년 초 제일 먼저 체포당한 이춘근 PD는 “압수수색 이후 부인은 ‘끝까지 가겠구나’라는 생각에 뿔테 안경까지 고민하고 감옥 면회도 준비했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 2월 결혼한 이 PD의 신혼 단꿈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김보슬 PD는 결혼식을 앞두고 체포당하는 일을 겪었다. 그는 “생전 처음 유치장에서 자고 수갑까지 찬 것은 절대 못 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능희 전 CP(책임 PD)는 “완벽한 프로그램이 못된 것에 자책감은 항상 있다”며 “김보슬 PD 결혼식이 제대로 안 된 것은 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체포 이후에도 현재까지 계속된 소송은 김 PD에게 신혼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 MBC 시사교양국 PD들이 2008년 8월14일 서울 여의도 MBC경영센터 1층 로비에 항의농성장을 꾸리고 사과방송을 내보낸 경영진에 항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특히 검찰이 작가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제작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김은희 작가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첫째가 이메일 공개, 둘째가 검찰의 이메일 조사, 셋째가 이메일 압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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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1년이나 버텨왔을 때 친구한테 보낸 이메일이 악의적으로 이용 당했다”며 “PD수첩 역사에 오점을 남기면 어쩌나하는 공포가 제일 컸다”고 토로했다. 당시 작가들도 ‘이 정권의 막장을 보여주는 사례를 겪는구나’라며 놀랐다고 한다. 작가가 유래 없이 체포당하고, 이메일까지 언론에 노출된 것을 두고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 많이 울었다고 한다.

현재 김 작가는 “이메일 공개 때문에 그 이후 업무 외에는 글을 안 쓴다”며 “사소한 메일을 보낼 때도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조중동 패악, 당해본 사람만 안다”=언론이 남긴 상처도 작지 않았다. 제작진들은 입을 모아 “이건 언론이 아니었다. 언론과 기자이길 포기했다”고 목청 높일 정도로 언론 ‘광풍’은 심각했다.

조능희 PD는 “정지민이 위증까지 했는데 거짓말을 혼자 했나. 조중동과 같이 하지 않았나”라며 “조중동의 패악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조폭언론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지민씨가 이 자막을 왜곡해 ‘CJD’를 ‘vCJD’(인간광우병)로 바꿨다고 주장하면, 조중동은 대서특필했다. 이후 공판에서 검찰은 언론 보도에 나온 주장으로 ‘흠집내기’에 나섰고, 언론은 다시 검찰 주장을 ‘받아쓰기’ 했다.

   
  ▲ 지난 2008년8월18일 MBC 방송장악저지 및 PD수첩사수를 위한 조합원 비상총회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조 PD가 “정치 검사들이 힘을 갖는 이유는 검사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앵무새 같은 기자들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같은 행태 때문이다. 그는 “조중동이 정말 진실을 몰랐을까”라고 되물었다. 김보슬 PD도 “2008년에 정지민씨가 등장하면서 조중동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당시엔 뭔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안 믿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 PD는 미국으로 출국해 아레사 빈슨 어머니를 다시 인터뷰했다. 그 당시 그는 워싱턴과 버지니아를 오가면서 ‘내가 왜 여기 왔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실수는 있을지라도 왜곡은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은희 작가는 이메일이 공개된 직후엔 언론으로부터 격리 당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차마 신문을 못 보게 했다. 인터넷도 못하게 했다”며 “대신 나중에 증거로 삼아야 한다며 신문을 봉투에 꽁꽁 봉인해 가져왔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PD수첩 사태는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이라며 “이메일 공개를 가장 먼저 분노해야 하는 게 기자 아닌가. 그게 1면에 실릴 특종인가”라고 되물었다.

   
  ▲ 2008년 7월8일 밤 서울 여의도 MBC사옥 앞에서 열린 <촛불아 모여라! PD수첩 지키자!> 문화제에 참가한 3천여 명의 조합원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첨병인 공영방송을 정권의 야욕으로부터 지켜낼 것임을 다짐한 뒤 한나라당을 항의방문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PD수첩, 타협하지 않은 이유는?= 한고비 넘은 제작진들이 현재 기약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보슬 PD는 “MBC 사과방송에 아쉬움이 남는다. 방통심의위 판결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나”라며 “재판 준비하면서 ‘절대 이 싸움에 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김은희 작가도 “정말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하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며 “재판 하나 이겼다고 힘이 나는 게 아니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웃음을 내보였다.

조능희 PD는 “검찰은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언론 침해의 선례가 되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려고 했다”며 “동료들에게 떳떳하다”고 밝혔다.

조 PD는 앞으로 “잘못된 권력행사는 언론이 기록에 남겨야 한다”며 언론의 역할을 가장 강조했다. 지난해 풀려나면서 조 PD는 김경수 박길배 검사, 전현준 부장 검사, 정병두 차장 검사, 천성관 지검장, 임채진 검찰총장의 실명을 공개했다. ‘역사의 기록’에 부끄러운 언론인의 명단도 같이 기록되지 않는 게 이 남긴 언론의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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