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한 직원이 불교계에까지 압력을 행사해 KBS 수신료 거부 행사마저 열리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29일 조계사 간부에 따르면 국정원 조계사 담당 직원이 지난 28일 아침 조계사 간부에 전화를 걸어 오는 2월1일 조계사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수신료 거부 행사를 '정치행사' '반MB행사' '종단에 누가될 것'이라고 사실상 취소압력을 행사했고, 돌연 주지스님이 행사를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당일 오후엔 해당 국정원 직원이 직접 주지스님을 만나 상황파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사의 이아무개 총무과장은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어제(28일) 아침 9시에 국정원 (담당)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원장 스님이 곧 방북하는데 정치집회(반MB집회)가 이뤄지면 종단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나는 '이미 지난해 12월말 종무회의까지 통과된 사안인데 물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며 "그러나 오전 11시께 주지스님이 취소하라고 해 진실을 알리는 시민의 모임 실무자들에게 사실관계를 설명해줬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 조계사 간부에 전화 "정치집회 종단에 누될 것"

   
  ▲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전경. ⓒ노컷뉴스  
 
이 과장은 또한 "오후에는 그 국정원 직원이 직접 조계사를 방문하기도 했다"며 "2∼3시께 주지스님이 불러서 방에 갔더니 국정원 직원이 와있었고, 주지스님께 '불허통보했다'고 보고했더니 그 국정원 직원이 '잘했다'며 환영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 과장은 "그 직원이 내게는 직접 행사를 취소시키라고까지는 안했어도 사실상 취소해달라고 요청하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며 압력성 전화였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런 국정원의 행보에 대해 "가슴이 답답하다"며 "쥐를 몰때도 퇴로를 열어주고 몰아야 덤벼들지 않는데, 시민사회단체가 이젠 광화문은커녕 학교도 못갈 정도로 갈 곳이 없어져 남아있는 곳은 종교시설물 뿐임에도 이것조차 차단하려는 모습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KBS 수신료 거부 행사조차 정보기관까지 나서서 제동을 거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KBS 대외협력팀 간부도 조계사에 전화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과장은 "이강덕 대외협력팀장이 그저께(27일) 전화해서 수신료 거부행사가 '불교계가 지원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홍보관실 관계자는 29일 오후 "아침에 그런 내용이 보도돼 해당 부서 등에 확인해보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며 "국정원은 현재 압력 여부에 대해 사실무근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별도로 공식 부인하는 자료는 낼 계획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해당 직원은 여러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직원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조계사에 전화를 건 적도 없고 수신료 반대행사가 예정돼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말한 바 있다.

KBS 간부도 조계사에 전화…민언련 "수신료 거부, 종교계 겁박으로 해결안돼"

이강덕 KBS 대외협력팀장도 "당시 전화한 것은 행사가 조계사 앞마당에 열린다고 하니 이번 행사와 조계사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조계사가 지원하거나 주관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한 것"이라며 "일반 시민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종교계가 부정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조계사에선 처음엔 '라면탑쌓기 행사'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수신료 거부 퍼포먼스라는 정치행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고, 이번 행사와 조계사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나는 '조계사 안에서 행사가 열리는 만큼 다른 국민이나 불자 언론에서 조계사가 관여하거나 지원하는 행사로 오해할 가능성도 있으니 외부 문의가 있을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해주면 고맙겠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어 "수신료 거부 운동은 종교계를 '겁박'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KBS는 권력의 눈치만 보지 말고 지금이라도 민심에 눈을 돌려보라, 그것이 KBS가 살 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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