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의 '진보 색깔 걸러내기'가 독립영화계에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이하 영진위)는 미디어센터 지원사업을 위탁운영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설립한 지 한 달도 안 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로운 사업주체로 사업 선정했다.  이에따라 지난 8년여 간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 온 미디액트가 오는 31일을 끝으로 모든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비단 미디액트뿐 아니다. 독립영화 배급의 전초기지였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지난 12월31일 문을 닫았다. 영진위가 공모제로 새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하자 공모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스스로 간판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 초 공모제 전환 시도로 고초를 겪었던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올 2월 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제13회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의 ‘인디포럼 2009’, ‘제13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전북독립영화협회의 ‘2009 전북독립영화제’는 잇따라 지원금 대상에서 배제됐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이들을 영화계에서 배제하겠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10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해가는 상황이다.

   
  ▲ 지난해 30일 간판을 내린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 화면.  
 

설립 한 달 안 된 단체가 미디어센터 지원 사업 운영주체로 선정

영진위는 지난 25일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 미디어센터 운영 단체로 선정했다. 영진위는 이 단체가 △사무국 구성원의 다양한 전공분야 △미디어체험교육과정의 합리성 △HD와 3D 기술교육계획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새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출범한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전 숭실대 문예창작가 교수며 축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원재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화계 대표 보수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의 사무국장인 김종국 홍익대 교수가 새 미디어센터의 소장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액트는 이번 심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민영상문화기구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그간 미디어센터나 미디어교육과 연관된 활동을 한 전력이 없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왔다는 이조차 “김종국 교수 외에 다른 이사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미디액트는 “미디어센터 운영 및 관련분야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새 운영진이 당장 2월부터 미디어센터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한다협, 스크린쿼터 축소 주장한 독립감독이 이사장

시민영상문화기구와 함께 새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이 단체는 최공재 독립영화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최 감독은 그간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최 감독은 "스크린쿼터 수호위원장이 '대안은 스크린쿼터 밖에 없다'라고 한 것은 정말 추잡함의 극치"라면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을 비판한 바 있다.

   
  ▲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가 지난 27일 서울 홍을 영진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디액트  
 

“공모제, 현 운영진 쫓아내기 위한 것”

시작은 공모제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미디어센터를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지난해 초다.

시작은 공모제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미디어센터를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지난해 초다.

현 운영진은 기존 미디어센터 활동에 대해 아무런 부정적인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공모제를 시행하려는 것은 현 운영진을 쫓아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인디스페이스가 공모제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액트 운영진은 공모제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합법적인 형태로 사업 운영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라는 새 법인을 구성해 공모제에 참여했다. 영진위는 1차 공모 결과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에 들어갔고 2차 공모에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 사업자로 선정했다.

미디액트는 “이번 공모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문제 지적이나 평가도 없이 무조건 교체가 전제된 것”이라며 “재공모 심사 당시에는 심사위원들의 질의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명준 소장은 “공모 심사 당시 첫 질문이 ‘그동안 운영도 잘하시고 발표도 잘 하셨는데, 그럼 잘못한 것 3가지만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며 “심사위원장이 심사위원들에게 몇 번이나 질문 없냐고 묻는 상황을 보면서 ‘이분들은 심사에 관심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현 운영진 매너리즘 빠질 수도…그것 알고 심사 들어갔다”

이날 심사에 참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5명의 심사위원이 항목별로 각각 점수를 주고 그것을 종합해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어떤 평가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1위와 2위 점수 차이가 2~3점 밖에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현 운영진)이 7~8년간 계속 운영해 왔는데 이것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부분을 알고 심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에 대해 영진위는 “현 운영진과 언론의 문제제기는 이해한다”면서도 “심사위원들의 심사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신생단체라는 점에서 사업 운영상의 우려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당시 공모제 참여했던 많은 단체가 법인 신고를 한 지 얼마 안 된 단체였다”며 “시기가 급박하다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진위 결정에 영화인들 뿔났다

이번 영진위 결정에 영화인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영화인들은 29일 오후 2시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운영자 선정 결과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을 서울 광화문 미디액트 대강의실에서 연다.

기자회견에는 고영재 <워낭소리> 제작자, 김곡 <고갈> 감독, 김동원, <송환> 감독), 김조광수 <친구사이?> 감독, 윤성호 <은하해방전선> 감독 이송희일 <탈주> 감독, 임순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독, 임창재 <바람의 노래> 감독 홍형숙 <경계도시2> 감독 등 9인이 참여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