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전문지 무엇을 담았나


언론전문지들을 채웠던 기사들은 진지한 컬럼에서부터 신문논조에 대한 비평, 언론계의 동향, 언론사 경영정보, 흥미위주의 가십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철필> 창간호(1930년 7월호)는 권두 기사로 게재한 중외일보 편집고문 민태완씨의 기자론 ‘대기자와 명기자론’은 당대 언론인들의 언론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태완씨는 이 글에서 “대기자와 명기자라는 것은 다 기자중에서 참연히(높게) 두각을 나타낸 성공자의 이름”이라고 정의하고 “그러나 우리는 대기자와 명기자들을 동일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즉 대기자가 동시에 명기자는 될 수 있으나 명기자가 곧 대기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점이 있는 것이니 대기자라 하면 그는 기자로서 대성되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 대성함을 요한다”며 기자의 품성론을 강조했다. 이 잡지 2호엔 ‘각사 편집인의 비법 대공개’란 기획물이 실려 있다.

이 기획의 내용과 필진들은 ‘사회면과 편집’(현진건) ‘학예면 편집 사담‘(이하윤) ‘최근 학예란의 경향’(염상섭) 등으로 내용과 필진 모두 쟁쟁하다. 4호엔 설의식씨가 쓴 ‘신문도 상품, 이원론적 본질시의 오류’라는 글이 실려 있어 당시 민간지들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호외> 창간호엔 동아일보의 ‘정통파 사원’에 대한 가십이 실려 있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 동아일보사에는 소위 정통파 사원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적어도 동아사중(社中)에서는 이 정통파 계통의 사원이 아니면 여러가지로 불리한 점이 많고 따라서 여간하여서는 사내에서의 영달은 바라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사원이 정통파냐.” 김성수씨가 세운 중앙고보, 보성전문 출신이나 전라도 출신들이 그들이라고 이글은 전하고 있다. 이 글은 암행어사란 필명을 쓴 필자의 ‘신문전선 정찰기’의 일부분이다.

<쩌-날리즘> 창간호 속표지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차례로 광고를 게재한 것이 우선 눈길을 끈다. 그러나 잡지 안엔 ‘보성전문이 입학행정의 실수로 학생 37명의 입학자격이 취소됐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를 둘러싸고 동아, 조선간에 벌어진 싸움을 다루고 있는 글이 2편이나 실려 대조를 보이고 있다.

‘동아대 조선전에 대한 각계인사의 비판’이란 글의 일부분을 옮겨보면 이렇다.

“이번 싸움 대하여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신문들이 민중을 지도하는 만능을 가진듯이 하더니 인제야 그들은 그 무능함을 폭로하였습니다.”(이종린) 냉소적 반응도 보인다. “이번 양사의 싸움과 같은 것은 나는 모르는 바입니다. 그런 것을 알자고도 아니합니다.”(한용운) ‘동아 대 조선전의 진상급기(及其)비판’이란 글은 이 싸움의 전말과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신문평론> 2호엔 ‘저-나리즘과 문화’라는 기획물을 게재하고 있다. 문학, 연극, 영화, 방송 등과 저널리즘의 관계를 분석한 글이다. 안민세씨가 연재하는 ‘조선신문소사’도 눈에 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