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는 독자 대다수가 ‘제목 중심으로 읽는 독자(headline reader)’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기사의 핵심 내용과 중요도를 알려줘서 최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제목이다.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낚는다’는 표현이 횡행할 정도로 제목이 중요해졌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2010년 언론감시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조중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지양하고자 했다. ‘이명박 대통령-김형오 국회의장 통화’(중앙)를 “매우 의미있는 보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PD수첩 무죄 판결을 다룬 이들 신문의 보도는 이런 노력을 깨뜨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중앙, 동아의 왜곡 정도가 조금 덜했다는 점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인들이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장 심했던 조선일보의 제목을 보자. 판결 다음날 관련 기사는 13건. ①법원 “PD수첩 광우병 보도 허위 아니다”(1면) ②“법상식 벗어난, 판사 한사람의 편향적 판결”(1면) ③“핵심 5가지 허위보도” 고법 판결, 지법이 180도 뒤집었다(3면) ④MBC가 사과 정정보도한 사안에도 “다소 과장됐을 뿐…”(4면) ⑤무죄 판결한 문성관 판사는 작년 ‘국보법 위반’ 이천재씨도 “무죄”(4면) ⑥“왜곡의 고의성 놓고 다퉜는데…왜곡 자체가 없다니 황당”(5면) ⑦“상급심 가면 진실 밝혀질 것”(5면) ⑧“편향 판사 탄핵소추 청원운동”(5면) ⑨제작진 “정치 검사 거짓말 드러난 판결”(5면) ⑩똑같은 사안 놓고 판사 따라 ‘어제는 무죄, 오늘은 유죄’(6면) ⑪검찰총장 “국가 명운 달린 사건에서 이런 판결이…”(6면) ⑫언론·시민단체 “오늘은 공영방송 사망 선고일”(6면) ⑬광우병대책회의 “언론자유 보장한 상식적 판결”(6면)

①은 판결 내용을 다룬 기사니까 넘어가자. 나머지 12건은 공정성을 포기한 기사들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응을 다룬 ⑫⑬을 빼면, 이번 판결에 대한 반발이나 환영 입장을 다룬 기사는 ②⑥⑦⑧⑨⑪ 이렇게 6건이다.

환영 기사가 1건인데 반해 반발 기사는 5건이다. 고소인인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협상대표의 반발을 묶어 1면에 기사화(②)한 데 이어 다시 5면에 가서 각각의 박스기사(⑦⑧)로 처리했다. PD수첩 공격에 앞장섰던 공동번역자의 인터뷰 기사(⑥)도 있고,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 검찰의 반발도 별도로 기사화(⑪)했다. 반면 환영은 PD수첩 제작진의 반응을 다룬 것 하나뿐(⑨)이다. 그것도 제목만 그렇지, 내용에 들어가면 오히려 MBC 내부도 판결에 대한 찬반 양론으로 나눠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판결에 반발하는 이들의 주장은 ②⑥⑦⑧⑪에서 정운천, 민동석, 정지민 씨, 검찰내 여러 소스를 합쳐 모두 35문장이나 되는 반면, 환영하는 주장은 ⑨에서 제작진의 2문장 뿐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형평성도 찾아볼 수 없다.

더 교묘한 것은 따옴표의 기교다. 환영 입장을 다룬 ⑨에는 친절하게도 따옴표 앞에 “제작진”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반면 판결에 반발하는 기사들은 ⑪을 빼고는 모두 출처없이 따옴표로만 처리돼 있다. 제목에서는 정운천, 민동석, 정지민 씨의 말이 한쪽 당사자의 말이 아니라 마치 일반 여론인양 포장돼 있는 것이다.

   
   
 
3,4면에는 이전 민사재판과 이번 형사재판의 쟁점을 5개로 나눠 비교했다. 나름대로 형식적인 형평성은 갖췄다고 애써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제목에는 ‘MBC가 사과·정정보도한 사안에도 “다소 과장됐을 뿐…”’이라며 한쪽의 시각만을 큼직하게 뽑았다.

맨 끝에 있는 ⑫⑬은 왜곡의 전형이다. ‘언론·시민단체’를 주어로 뽑은 ⑫에는 판결에 반발하는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정언론시민연대, 방송개혁시민연대 등 3개 단체가 언급돼 있다. 반면 ‘광우병대책회의’를 주어로 뽑은 ⑬에는 판결을 환영하는 광우병대책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4개 단체가 언급돼 있다. 그런데도 ⑫의 제목을 “언론·시민단체”로 뽑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들 단체가 그만큼 대표성이 있을까?  제목만 보면, 모든 언론·시민단체는 이번 판결에 반발하고 있고, 광우병대책회의만 환영하는 것처럼 왜곡돼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교묘하게 판사에게 색깔을 덧씌우고(⑤), 판사의 얼굴 사진을 싣고, ‘문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 있었나’는 자극적인 사설을 내보내는 것이 과연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공정성과 형평성마저 무시한 채 극우단체 홍보지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는 이런 신문을 감히 언론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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