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채택했지만,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 견제에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사법부 역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법원은 최근 주요 시국사건에서 검찰 무리수를 지적했다. 그러자 검찰과 보수신문, 여당이 반격에 나섰다. ‘사법부 흔들기’ 논란의 현실과 그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정권 위기의식, 사법부 길들이기…“이념공세 부활 끔찍하다”

“집권당과 검찰, 보수언론이 삼각 편대를 이뤄 사법부에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낡은 매카시즘적 이념 공세의 부활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황상진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23일 <매카시즘을 되살리려는가>라는 칼럼에서 사법부를 둘러싼 이념공세에 깊은 우려를 제기했다. 법원은 최근 MBC 제작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등에게 잇달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보수진영은 법원 판결에 반발했고, ‘사법 테러’ 사태로 번졌다. 대법원장 관용차량은 보수단체 회원의 공격을 받았고, 판사는 법원의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다. 사법테러 사태를 불러온 배경에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의 이념 여론몰이가 영향을 줬다. 한나라당은 “판사 개개인의 인성, 자질, 소양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을 공언해 판사 개인별 ‘사상 검증’ 논란을 자초했다.

검찰은 ‘언론탄압’ ‘야당탄압’ 논란을 무릅쓰고 기소를 강행하다 체면을 구겼지만, 여당과 조중동의 측면 지원에 따라 여론의 집중 비판을 피할 수 있었다. 조중동의 프레임(생각의 틀) 전환이 일정부분 성공을 거뒀는지는 모르지만, 사법부를 이념대결의 전쟁터로 떠민 행동은 한국사회 전체에 부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판사 개개인의 판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댈 경우 사법부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 보수국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이용훈 대법원장 및 문성관 판사 사퇴 등을 주장하며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 연합뉴스  
 
조중동의 최근 보도는 ‘매카시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판사 개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며 이념적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처럼 몰아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21일자 지면에 판결을 담당한 문성관 판사 얼굴 사진을 게재하며 국가보안법 사건에 무죄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법원 앞에서 문 판사 얼굴사진을 불로 태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법테러’ 부른 조중동 여론몰이

서울남부지법이 지난해 11월6일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을 때도 보수신문은 재판을 담당한 마은혁 판사 신상을 파헤치며 이념 덧칠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보도했고, 11월12일자 12면에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 멤버였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11월12일자 1면에 <법, 이념 앞에서 길을 잃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남부지법이 지난 14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은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판결을 내리자 보수신문은 호재를 만난 듯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강 대표가 지난해 1월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을 찾아가 민노당 당직자 농성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고함을 지르고, 탁자에 뛰어오른 것은 사실이다. 언론은 이를 ‘공중부양’ 사건으로 표현했다.

강 대표는 당시 자신의 행동이 과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검찰 대응은 또 다른 논란이다. 검찰은 단순 폭력 문제가 아닌 공무집행방해 사건으로 몰아갔다. 게다가 야당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야당 대표를 교도소에 가두고 의원직을 잃게 하는 중형이다.

법원은 검찰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처음부터 단순 폭행 사건으로 접근했다면 판단이 달라졌을 것이란 여지도 남겼다. 보수신문은 법원이 국회 폭력을 정당화시킨 것처럼 몰아갔지만, 법원이 지적한 것은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의 문제점이었다. 동아일보도 16일자 사설에서 “강 대표의 행위가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정도의 범죄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면서 검찰 구형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법연구회’ 언론이 감추는 진실

전주지법이 20일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의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을 때도 보수정서를 자극하는 기사와 사설 칼럼은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학부모들은 걱정이 앞선다. 교사들의 정치성을 띈 집단행동에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중동은 법원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 논란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이념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중앙일보는 22일자 <‘우리법연구회’부터 자진 해체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조중동 보도만 놓고 보면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최근 논란이 된 판결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박상훈 변호사는 경향신문 26일자 35면 칼럼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네르바 사건, 촛불 집회 중 야간 집회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MBC 사건 등 7건의 무죄 판결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닌 일반 법관들이 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우리법연구회가 배후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신문이 우리법연구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이념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22일자 사설에서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는 ‘운동권이 사법조직에 편입됐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우리법연구회가 탄생했다’는 글을 썼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노골적인 사법부 장악 의도

보수신문과 한나라당이 법원 ‘마녀사냥’을 강행한 배경에는 정권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지방정부를 사실상 장악한 집권세력은 ‘민간독재’ 논란을 빚으며 일방통행 국정운영을 펼치고 있지만, 사법부는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주요 시국사건 판결이 줄줄이 예고돼 있고, 4대강 사업도 법원 판단에 따라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도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 전략은 흔들릴 수 있다. “법원을 손봐야 남은 임기 3년이 편안하다”는 위험한 발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성향이 강한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권분립을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입법부 권력자가 사법부를 향해 노골적인 개입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유선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집권당 행태는 지난 1950년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지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미국정부 내 인사들을 무차별 공격해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 매카시즘 광풍을 연상시킨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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