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대로 사법부 밖에서의 ‘사법부 흔들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A신문의 2009년 5월21일자 사설이다. A신문의 사설 제목은 <외부 세력에 사법부 운명 맡길 것인가>라고 뽑았고 <사법부 흔들기 본격화한 정치권>이라는 중간 제목이 달렸다. 

“법관의 신분보장은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 사법부 내부 압력은 물론이고 어떤 외압으로부터도 재판의 독립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다. 정치권력이 법관의 독립을 흔들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B신문의 지난해 3월21일자 사설이다. C신문은 지난해 5월14일자 지면에 <사법부는 권력만이 아니라 여론 압력에서도 독립해야>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A신문, B신문, C신문이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고,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하는 시각은 최근 MBC PD수첩 <무죄 판결>과 관련한 야당 대변인 논평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21일 “최근 일련의 재판 결과에 대한 정권과 검찰의 불만 표출이 정상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 우려한다”고 밝혔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언론도 모자라 이제는 사법부에게까지 재갈을 물리겠다는 한나라당에 대해 상식적 국민과 함께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 MBC 'PD수첩' 제작진과 김형태 변호사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 이후 기자들과 만나 무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근 상황은 사법부 흔들기를 넘어 ‘사법 테러’ 사태로 번지고 있다. 법관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까지 왔다.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이 법관 상징물에 불을 붙였다.

일부 회원들은 법원 진입을 시도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자유개척청년단’ 등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은 21일 오전 이용훈 대법원장 관용차량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법원 판사들의 집을 찾아가 시위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법원은 판사 신변보호 조치를 내렸다.

   
  ▲ 중앙일보 2009년 5월21일자 사설.  
 
   
  ▲ 중앙일보 1월21일자 사설.  
 
ABC 신문은 지난해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고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다. 지금의 야당과 비슷한 시각을 보였던 ABC 신문은 어디일까. A신문은 중앙일보, B신문은 동아일보, C신문은 조선일보이다. 조중동의 최근 논조는 어떤 모습일까.

먼저 A신문(중앙일보)을 살펴보자. 중앙일보는 지난해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바로 그 신문이다. 중앙일보는 21일자 3면에 <이주영 위원장 “우리법연구회,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념 사조직”>이라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장을 부각시킨 편집이다. 사법부 흔들기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기사지만, 중앙일보는 이를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는 6면 머리기사에는 보수단체들의 법원 앞 규탄집회 장면을 부각시켰다. 사법부 밖의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그 중앙일보가 맞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야당의 ‘사법부 흔들기’ 우려와는 상반된 시각의 사설도 실었다. 중앙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판결에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면서 “비판 역시 사법부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3월21일자 사설.  
 

   
  ▲ 동아일보 1월19일자 사설.  
 

이번에는 B신문(동아일보)을 보자. 동아일보는 법관 신분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정치권력이 법관의 독립을 흔들었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19일자 사설 제목은 <이 대법원장 남은 임기 20개월이 걱정스럽다>이다.

여권에서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을 교체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동아일보가 이 대법원장의 거취와 관련한 사설을 내보냈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한나라당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법원장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 시각이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C신문(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사법부는 여론의 압력에서도 독립해야 한다면서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21일자 4면에 <무죄 판결한 문성관 판사는 작년 ‘국보법 위반’ 이천재씨도 “무죄”>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문성관 판사 사진을 내보냈다.

보수층 정서를 자극하는 기사제목을 달고 판사 얼굴을 사진으로 내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조선일보가 사법부 흔들기 여론몰이에 나섰다고 지적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지면에 <문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에 있었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법원장 관용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판사 집까지 찾아가 시위를 하는 상황, 급기야 법원에서 판사에게 신변보호 조치를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여론몰이식 보도도 영향을 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조선일보 2009년 5월14일자 사설.  
 

   
  ▲ 조선일보 1월21일자 사설.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은 그때그때 다른 시각을 보일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2009년에도 중요하고 2010년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중동의 2009년과 2010년 보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쯤 되면 말 바꾸기의 달인으로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조중동의 ‘말 바꾸기 논조’를 조정하는 데 참고할 만한 칼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름 아닌 중앙일보 칼럼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3월13일자 31면에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정략적 ‘사법부 흔들기’ 안 된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중앙일보 칼럼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치판사로 몰아세워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행정권이나 정치 권력단체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특정의 압력단체나 정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일부 사회단체나 언론으로부터 압력이나 협박으로 법관이 위협받는 사례가 빈발하고, 이는 사법부 및 법관의 독립에 매우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법관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는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중앙일보 2009년 3월13일자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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