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명박 대통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워낙 손바닥 뒤집듯 말을 쉽게 바꾸기 때문이다. 만일 기네스북에 말 뒤집기 부문이 있다면 1위는 단연 이 대통령 차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대통령이 또 말을 뒤집었다. 지난 15일 전국 21개 주요대학 총장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등록금 상한제를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얼마를 올리든 대학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내 걸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BBK 오너임을 자랑까지 하고는 주가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낯 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이를 부인했다.

이 대통령이 말을 뒤집은 여러 사례 중 가장 압권은 세종시 원안 건설 약속 파기다. 이 대통령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만해도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 중이고 나도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 없다”(2009년 6월 20일 청와대 여야 대표회동)고 말하는 등 20차례 가까이 세종시 원안 건설을 약속했다. 그리고는 금방 천연덕스럽게 약속을 저버렸다. 웬만큼 낯이 두껍지 않은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말 바꾸기다.

   
  ▲ 이명박 대통령. ⓒ사진출처-청와대  
 
이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 건설 약속을 뒤집으면서 새로운 약속을 내놓았다. 교육·과학·경제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품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이다. 지금 온 나라는 세종시를 원안인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과 정부 수정안인 교육·과학·경제도시로 가야 한다는 진영으로 갈려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물어보자.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이 대통령이 과연 교육·과학·경제도시 건설 약속은 꼭 지킬까? 일단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무산시키기만 하면 그 다음 약속을 깨는 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세종시 원안은 9부 2처 2청을 옮기는 것으로 명토 박아 놓았지만 정부의 수정안은 몇몇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들어간다는 청사진만 들어 있을 뿐이다. 청사진의 일부만 이행하거나 아예 시늉만 하고 유야무야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다. 들어오기로 약속한 민간기업이나 대학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

정부 수정안대로 가면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 때문에 국토균형발전은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당초 원안인 행정복합도시 건설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이 대통령이 이런 ‘세종시 블랙홀’ 사태를 바라만 보고 있을까? 이제까지 이 대통령의 말 뒤집기 행태를 되돌아 보건대 전국의 지자체와 척을 지면서까지 성실하게 명품도시 약속을 지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세종시 원안 건설을 무산시킨 연후엔 교육·과학·경제도시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쪼그라드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더군다나 당초 세종시 건설의 목적은 충청도민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국토균형 발전이었다.

   
  ▲ 박상주 논설위원.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작 세종시 원안 건설 약속을 뒤집은 건 이 대통령이거늘 그 싸움의 혼전 속에 ‘이명박’이란 이름 석자가 잘 오르내리지 않는다. 싸움의 주 전선은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수정안 지지파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원안 고수파 간에 형성되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싸움의 들러리로 밀린 모양새다. 이 대통령의 ‘정운찬-정몽준 용병작전’이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셈이다.

두 용병을 앞세운 채 뒤로 빠져 있는 이 대통령의 처신을 보면서 ‘BBK 말 뒤집기’ 당시의 상황이 연상되는 연유는 뭘까. 훗날 누군가 세종시 수정 책임을 물어야 할 날이 왔을 때 아마도 이 대통령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었다며 발뺌하지는 않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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