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기는 쉬워도 빼기는 힘들다." 기업 홍보 담당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 오래된 격언이 가판이 폐지된 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할까. 최근에는 오히려 기사가 나가기도 전에 언론사와 '딜'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기사 모니터링이 훨씬 쉬워진 덕분이기도 하다. 한 홍보대행사 임원은 "맞을 건 맞더라도 평소에 관계를 잘 다져놓으면서 사전 위기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판이 있던 시절, 가판이 처음 배송되는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은 서울 전역에서 몰려든 기업 홍보 담당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정적인 기사를 빼기 위해 전면 광고 필름을 말아서 들고 다녔다거나 기자들이 홍보 담당자들 전화를 안 받으려고 잠적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이제 지나간 전설이 돼 버렸다. 가판 폐지 이후 기업과 언론사의 거래는 더욱 상시적이면서도 은밀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 2008년 7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임원은 “과거에는 가판을 보고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광고가 아니라도 언론사와 거래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예 기사가 나가기 전에 딜을 하는 경우도 많고 언론사들도 주기적으로 받는 광고 외에 협찬이나 후원 등 눈에 드러나지 않는 거래를 선호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다. 이 임원은 “언론사들이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한 중견그룹 홍보 담당 임원은 “주요 일간지 1면에 광고를 한 번씩 돌리려면 최소 3억원이 드는데 사실 그 정도의 광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광고는 특정 신문만 주고 다른 데는 안 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한번 줄 때 다 줘야 하지만 협찬이나 후원은 개별 언론사의 관계에 따라 비용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을 다루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언론과 기업의 유착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출입처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경제부나 산업부 기자들은 아예 출입처 기자실로 출퇴근을 한다. 기업 기자실은 대부분 홍보실과 맞닿아 있는데 이곳에서 취재 지원과 통제가 동시에 이뤄진다. 기업 출입기자들은 기업이 제공해준 시설을 이용하면서 홍보 담당자들과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이면 술자리도 같이 하고 주말이면 함께 골프를 치면서 이를 취재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아무개 경제지 산업부의 10년차 기자는 “산업부는 경제지의 꽃이면서도 매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부서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자는 “연차가 좀 되면 출입처에서 나오는 광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기자들끼리는 기획회의를 영업전략회의라고 부르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면서 “비주력 부서지만 광고 부담이 덜한 정경부나 증권부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기자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다른 경제지 유통부 7년차 기자는 “주기적으로 특집기사를 쓸 때가 있는데 부장이 ‘아랫도리 없이 어떻게 신문을 만드느냐’며 압박을 준다”고 말했다. “평소 기업과 친분을 잘 다녀놓는 게 중요한데 기사를 잘 쓰는 것보다 회사에 얼마나 수익적으로 기여하느냐가 실력으로 평가되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이 기자는 “차장 이상으로 승진하려면 기업에 광고 부탁하는 걸 어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문사들의 달라진 수익구조도 언론의 기업 종속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이 발표한 주요 언론사 경영성과 분석에 따르면, 1999년 87.5%였던 신문매출(광고매출+구독료)이 2007년 74.5%로 감소한 반면 사업매출 비중은 12.5%에서 25.5%로 늘어났다. 사업매출은 기업들 협찬과 후원이 포함된다. 일부 언론사는 이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디어경영연구소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매출 가운데 광고 대 구독 비율은 80 대 20으로 나타났다. 경제지는 광고 비율이 더 커서 84 대 16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광고와 구독이 동시에 급감하면서 이 비율이 최근 90 대 10 수준까지 늘어났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문사들 입장에서는 생존권을 쥐고 있는 기업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 LG 등 재벌 대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삼성과 한겨레의 극단적인 대치상황은 다른 신문사들에도 본보기가 됐다. 삼성은 2년째 한겨레에 광고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지난해 기능올림픽대회 우승 기념으로 한 차례, 그리고 새해 들어 또 한 차례 광고를 내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광고 재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의 광고 비중이 많게는 20~30%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삼성의 광고 중단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 매일경제 1월11일자 1면.  
 
   
  ▲ 아시아투데이 2009년 10월16일자 5면.  
 
   
  ▲ 디지털타임즈 2009년 11월24일자 4면.  
 
국내 언론, 특히 신문사들이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라는 명분으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특별사면을 목 놓아 외치다가 이 전 회장이 사면 이후 활동을 재개하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잡으면서 앞 다퉈 충성경쟁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 사보를 연상케 할 정도의 낯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재벌 비판에 앞장섰던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최근 들어 삼성 관련 보도에서 부쩍 ‘톤 다운’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종합 일간지 경제부장 출신의 한 언론계 인사는 “이 전 회장의 사면과 활동재개를 전후해 주요 언론사에 수천만~수억원대의 광고 또는 협찬이 흘러들어갔다”면서 “최근 이 전 회장 관련 보도는 전형적인 매문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당신이 지금 데스크를 맡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도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언론계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과거에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의 집행유예 판결 직후 언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비난보다는 경제가 우선이라는 법원의 군색한 논리를 포장하기에 바빴다. 물론 이들 기업들은 다음날부터 화끈한 광고공세로 보답을 했다. 최근 애플 아이폰 출시 이후 국내 언론이 아이폰의 단점을 부각시키면서 삼성전자 옴니아2를 치켜세운 것도 이런 힘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언론이 유독 현대차 노동조합의 파업에 가혹한 것도 현대차 노조가 국내 최대의 제조업 노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부가 아니라 산업부에서 이를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개 일간지 경제부의 11년차 기자는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보는 사람이 현대차 홍보실 사람들이고 노조는 전화나 하는 정도인데 누구의 입장을 더 잘 대변하겠는가”라고 자조적인 반문을 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국내에서 낮은 사양에 미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다는 사실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반면 신차 출시 소식은 대부분 언론에 비중있게 실린다. 기자들이 시승차를 공짜로 얻어 탄다는 사실 역시 독자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경제 주간지의 한 차장급 기자는 “시승기를 나쁘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기업 보도자료를 베껴 쓴 기사는 넘쳐나지만 노동조합이 보낸 성명은 열어보지도 않는 경우도 흔하다.

동서대 신문방송학과 이완수 교수는 “과거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지사형 기자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대부분 기자들이 현실과 타협하면서 샐러리맨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교수는 “경영난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편집방향이나 철학이 모호한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불편부당을 넘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생존의 논리에 휩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소장은 “우리 사회에 기업을 견제할 세력이 취약한 것도 편향성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다양한 주장이 부딪히고 자유로운 논쟁이 이뤄질 때 보도에도 균형이 잡힐 텐데 우리 사회는 압도적으로 기업의 논리가 우세한 상황이고 언론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게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회의 불균형이 보도의 불균형을 만드는 측면이 있고 언론이 이를 선도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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