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것처럼 표현한 리드 문장 사용이나 단정적 제목은 배제하고, 무죄 확정 판결이 나면 상세히 보도한다.”

한겨레가 범죄수사와 재판 관련 기사를 취재·보도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사회·편집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범죄 수사 및 재판 관련 취재 보도 시행 세칙’ 설명회를 열었다.

▷어떤 내용 담겼나=한겨레는 시민의 알 권리와 함께 피의자의 인권도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균형보도 △기사의 표현 △제목의 표현 △출처 표기 △신원 공개 △선정적 보도의 자제 △수사 절차의 보도 △오보 등의 바로잡음 △무리한 속보 보도 지양 등 9개 항목을 통해 범죄사건 보도에서 기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을 적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한겨레는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람의 견해도 충실히 반영토록 했는데, 특히 “피의자가 받고 있는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도 당사자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하는 보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어,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수사받는 태도를 보니 거짓말하는 게 뻔히 보인다”는 검찰의 일방적인 발언을 보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헌법적 권리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독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의 맨 앞 문장(리드)이나 제목도 피의자의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것처럼 표현하거나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한겨레는 특히 피의자가 받고 있는 핵심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나 변호인 쪽의 주장이 작은 제목에라도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피의자 신원 공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되 고위 공직자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사회적 관심이 큰 범죄 사건의 경우 실명이나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1톱3박’(1면 톱과 3면 박스)을 비워 놓는 관행과 관련해서도 무리한 속보 보도를 지양하는 한편, 기사의 양과 지면 배치를 예단해 무리하게 보도하는 일을 지양하도록 했다.

▷왜 마련했나=이번 시행세칙은 한겨레가 지난 2007년 취재보도준칙을 제정한 이후 3년 여 만에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한겨레는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이후 ‘언론 책임론’에 대해 자성하면서 범죄수사·재판보도에 관한 구체적인 보도 원칙을 마련하기로 하고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해 왔다.

이날 TF팀의 설명이 끝나자 기자들은 그동안의 주요 사건과 관련해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시행세칙에 맞는 것인지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든지, 미국의 고가 아파트 계약서를 찢었다든지 하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 △한 전 총리 수사와 관련해 정세균 민주당 원내대표가 장관 시절 뇌물 사건에 ‘간여’했는지를 쓰는 것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것 등이 시행세칙에 맞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TF팀장을 맡았던 여현호 논설위원은 “이것은 유권해석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노 전 대통령은 공인으로서 부정 행위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긴 하지만 시계나 아파트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대한 흥미 위주의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 논설위원은 이어 “한 전 총리 건과 관련해 정 대표 건은 당연히 공개해야 하지만 선정적인 보도는 안된다”며 “강호순은 실명은 공개할 수 있으나 사진은 공개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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