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이 터지듯 통곡 소리가 정적을 깼다. 9일 밤 9시 모란공원.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관이 묻히기 시작하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어떡하냐"며 "욕심 없이 살더니. 남 주는 것 그렇게 좋아하더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윤용현씨 부인 유영숙씨도 "살겠다고 한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하냐.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며 "그렇게 고통 속에 죽어서 꿈에 그렇게 보였어? 우리 애들 밖에 없다고 그러더니. 내 말 좀 듣지?"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들은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복받치는 설움을 내보였다. 또 영정 바로 앞에 가서 생전에 못 다한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10시 하관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떠나가는 고인들에게 이렇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하관식이 끝나자 유가족들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약500명의 시민들은 모란공원에 마련된 식당으로 갔다. 스티로폼 그릇에 육개장과 김치 등이 담긴 단촐한 식단이었지만, 모처럼 한 곳에 모여 앉은 유가족들의 얼굴엔 훈기가 엿보였다. 한 시민은 "막걸리 한 잔 하시죠"라며 유가족들의 슬픔을 애써 달래주기도 했다.

9일 기자가 만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우리 주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슬픔도 우리 주변의 슬픔과 원인이 다를 뿐이지, 결국 똑같은 슬픔이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는 아픔이 제일 커 보였다. 권명숙씨는 노제에서 "남편의 원한이 서린 남일당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어 이렇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가야만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 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며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라고 되물었다.

왜곡으로 인한 억울함도 엿보였다. 유가족들은 영결식에 앞서 밝힌 인사말에서 "지난 연말 고인들의 시신을 차가운 냉동고에 더 이상 둘 수 없어서 용단을 내린 유가족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라며 "애써 본 척 들은 척 하지 않았지만, 지난 1년 전 고인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인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다시금 언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테러리스트'는 어디 갔냐고? 용산 참사 희생자 3명이 전철연 소속이라며 "도시게릴라나 진배없는 폭력투쟁을 해온 단체"(조선 7일자 사설)라고 덧씌운 것이 진실이냐고? "'그저 착하게 살려고 한 불쌍한 사람들'로 보는 것은 착각"(동아 5일자 칼럼)이라는 동아 논설위원은 용산 현장 취재를 하고 칼럼을 쓴 것이냐고? "절차를 외면하고 툭하면 '떼법'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관행은 이제 끝내야 한다"(12월31일 중앙 사설)는 것이 이번 참사의 우선 과제냐고?

그동안 언론은 '용산은 극적 타결됐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르는 이날 어느 곳에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용산 참사 장례식은 끝났다. 그러나 용산 참사의 진실을 '테러'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이들의 행태도 지속되고 있다. 용산 참사 미완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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