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삭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성혜림 자매 망명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이한영씨의 서울생활을 방영한 지난 5월 5일 KBS 2 TV ‘추적 60분’ 프로그램 내용 가운데 안기부의 대북정보력에 허점이 많다는 부분을 방영하지 말아줄 것을 방송사 고위 관계자들에게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추적 60분’팀이 성혜림씨 망명 사건과정에서 안기부가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내용에 대한 취재에 들어가자 KBS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통해 “안기부의 대 국민 이미지를 고려해 되도록이면 이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으며 이같은 요구는 담당 프로듀서에게도 전달됐다.

‘추적 60분’팀은 당초 안기부의 대북정보력과 성혜림씨 망명 사건에 대한 각 언론사의 취재경쟁,이에 따른 문제점 등을 심층 진단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이 부분은 빠진 채 이한영씨의 서울생활 체험기만 방송됐다.

‘추적 60분’팀은 3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성혜림씨 망명사건 당시 이를 취재한 담당기자들과 정보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을 끝마친 상태였으며, 이같은 내용을 소개한 보도자료를 방영 3일 전인 지난 2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KBS는 이 보도자료에서 “성혜림 자매가 왜 한국망명을 포기하고 잠적했는지,대북 정보를 총괄적으로 수집·분석·판단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안기부는 왜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대북 정보에 대한 언론기관들의 무신경과 과도한 경쟁 등 성씨 자매 탈출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그 문제점을 추적한다”고 밝혔다.

KBS측은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와 다른 프로그램이 방영된데 대해 “안기부에 대한 취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기자들과의 인터뷰도 별반 새로운 사실이 없어 자체 회의를 거쳐 이한영씨의 서울생활에 국한해 프로그램을 내 보내기로 했다. 안기부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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