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했다고 27일 주요 언론이 청와대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까지 한국이 원전을 수주할지는 불투명하다"며 "이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는 것은 수주전에서 최종 티켓을 따내기 위한 정상외교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두산중공업과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번 원전 수주는 정확한 공사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십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수도 아부다비를 방문하고 할리바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만약 우리나라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다면 기술력뿐 아니라 외교력과 협상력의 총체적 승리로 볼 수 있다"며 "국제사회에 한국형 원전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언론은 대부분 아직 원전 수주가 최종 확정된 단계는 아니며 이 대통령이 막판 지원을 위해 방문했다는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지만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미 한국 기업들 컨소시엄의 수주가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아부다비 방문을 이른바 '세일즈 외교'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미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으러 가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7일 로이터통신은 이 대통령의 UAE 순방 소식을 전하면서 "프랑스 컨소시엄이 당초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한국에 뒤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의 우세를 점쳤다. 로이터는 IBK증권 연구원의 말을 인용, "400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이번 계약은 세 단계로 나눠서 진행될 전망인데 50억달러 규모의 첫 계약을 따는 쪽이 나머지 두 계약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후 (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해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자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터에 따르면 수에즈그룹 등이 참여한 프랑스 컨소시엄은 더 낮은 가격을 써낸 한국 컨소시엄과 경쟁하기 위해 뒤늦게 가격을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입찰 마감일인 지난 10일까지도 이들이 입찰 가격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로이터가 인용한 프랑스의 일간지 레제코에 따르면 컨소시엄 내부에서도 가격을 낮추는 문제로 논란이 많아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아부다비에서 발행되는 걸프뉴스 등도 로이터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의 수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한국 컨소시엄의 수주가 확정돼서 우리 정부에 미리 언질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UAE 정부는 이달 안에, 이르면 다음 주 초반에 사업자를 최종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호들갑스러운 세일즈 외교와 무관하게 결과가 이미 나와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 연합뉴스는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연합 방문과 관련, 톱기사로 9개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국내 언론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 기술력 뿐 아니라 외교력과 협상력의 총체적 승리로 볼 수 있다"는 등의 청와대 발표를 받아쓰기에 바쁜 모습이다. 청와대는 "녹색성장을 국가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원자력에 큰 관심을 가져 왔다"면서 "원자력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대기오염 물질이 생성되지 않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최적의 대안"이라고 이 대통령의 성과를 강조했다.

특히 연합뉴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온실가스가 지목되고 이에 대한 국제적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재조명받게 됐다"면서 이 대통령의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이라는 영예를 안게 돼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 상승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과연 원자력발전소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조와 맞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의 원가가 kwh에 34.0원으로 석탄 35.7원 LNG 86.8원보다 낮다고 주장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kwh 전기생산에 석탄은 991g, 석유 782g, LNG 542g인 반면 원자력은 10g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주변에 미치는 영향과 핵 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에너지시민회의에 따르면 1kwh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풍력발전은 9g, 태양광은 32g, 바이오가스는 11g, 바이오매스는 14~41g인 반면 원자력은 66g에 이른다. 원자력발전소 1기의 폐쇄 비용이 1조원에 이른다는 사실도 간과되고 있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원자력 산업을 친환경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늘려 녹색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원자력 산업 성장률이 2002~2007년까지 연 평균 0.4%에 그친 반면 태양전지와 풍력, 바이오연료 등이 각각 40.6%와 24.1%, 19.8%나 된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10년 안에 원자력 산업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 걸치러 간 다분히 쇼맨십 성격의 '세일즈 외교', 중동까지 발을 뻗친 이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가 낯 뜨거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일의 DPA통신은 "이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원자력 산업을 전략 수출산업으로 키우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대형 사업을 수주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서 원자력산업을 친환경 산업으로 포장하고 언론이 이를 거드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탄소와 성장은 애초에 배치되는 개념이다. 무분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성장지상주의의 한계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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