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결정한 것에 대해 분쟁지역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유경 프리랜서 기자(사진)는 “정부의 재파병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아프간은 현재 극도로 치안이 불안한 상황으로 정부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꾀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언론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정부와 외신에만 의존하는 한국 언론은 이 같은 위험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파원조차 외신에 의존하는 한국 언론의 국제 보도는 정부의 아프간 파병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난 2007년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 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동부 잘랄라바드와 낭가르하르 지방 등을 취재하고 다국적군의 공습과 군 작전으로 인한 민간인의 피해 실상을 보도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는 “분쟁 지역 취재를 하면서 한국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많지는 않다”며 “국제 이슈를 다루는 한국기자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아프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사 소속 기자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7년 한국의 기독교 선교봉사단이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살해되고 21명이 42일 만에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진 뒤 한국언론의 국제보도 시스템 문제는 현재도 유효하다. 국제보도 경험과 지식은 부족하지만 지나친 외신 추종과 받아쓰기 관행은 여전하다. 이 기자는 “한국언론의 국제 보도는 가능한 챙겨보는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이런 상황이니 ‘국익을 위한 파병’ 같은 보도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프간 군대 (ANA) 가 무자헤딘 승리기념일에 행진하는 모습. 약 9만명에 이르는 아프간 군대는 단 한개의 여단도 독립적으로 작전을 벌이기 어려울 만큼 외군 의존도가 높으며 약 70%가 문맹이라 정밀한 무기 사용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이유경 기자  
 
아프간 피랍사태 이후 철수했던 군대를 2년 만에 재파병하는 중요한 문제를 전하면도 한국 언론보도에 ‘왜’는 없다.

언론은 최초의 민·관·군·경 통합팀으로 지방재건팀(PRT) 단일 규모로는 독일군에 이어 두 번째 큰 규모라고 보도했으며(조선일보 12월9일 4면 <아프간에 320명 파병… 첫 ‘민관군경(民官軍警) 통합팀’ 뜬다>, 첨단 무기에 대한 소개와 함께 안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2월9일 5면 <미군특수방호차량-블랙호크-첨단소총으로 ‘숨은 공격’ 차단>).

“한국정부가 아프간에 병력을 보낸다면 나쁜 결과를 준비해야 한다”는 탈레반의 경고에도 언론은 ‘흔들려선 안 된다’(매일경제 12월10일 칼럼 <아프간 파병, 탈레반 협박에 휘둘려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한국 정부도 “파병 계획은 변함없다.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아프간 재파병에 대한 언론 보도에 ‘위험성’은 없고 ‘국익’만 남았다. 반대여론이 거세지면서 야당이 이번 파병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이라크 파병 여야공방’식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이 기자는 “이런 와중에 제대로 된 논의나 검증 없이 2년6개월 장기간 파병을 결정한 이유가 도대체 뭐냐”며 “한국정부가 아프간 정세를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철군이 대세인 국제 여론을 고려해도 뜬금없는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이 기자는 정부의 결정이 ‘모순적’이라고도 했다. 2년 전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한국인 전원 철수’ 방침에 따라 군대뿐 아니라 기자와 교민까지 철수시켰다.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아프간은 기자의 취재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 기자는 “아프간처럼 국제 구호가 절실한 나라에 구호인력을 파견할 수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며, 국제 뉴스의 핵이 폭발하는 현장을 정부 조치 때문에 취재할 수 없는 나라 역시 한국밖에 없다”며 “‘상대적 안전’을 운운하며 군대만 파병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의 신변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탈레반의 경고가 경고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전의 상흔

▲ 2001 탈레반 정권의 퇴각 이후 주변국에서 오랜 난민 생활을 마치고 아프간으로 돌아온 이들은 그러나 여전히 난민처럼 살고 있다. ⓒ 이유경 기자

 
 
파르완주. 한국 정부는 이곳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기자는 “아프간에 안전지대는 없다”고 단언했다. 과거에는 ‘덜 위험한’ 정도가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탈레반이 카불 공항(9월8일), 국제안보지원군본부(8월17일)는 물론 유엔 게스트 하우스(10월28일)까지 공격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하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탈레반 세가 없던 북부 쿤두주 지방(독일군 주둔)에서 조차 탈레반이 출몰하고 있다. 아프간은 올해만 미군과 영국군 400여 명이 전사하는 등 지난 2001년 이래 최대 희생자를 냈으며 한국군 파병지인 파르완주에서는 저항세력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이 기자는 “악명 높은 군벌인 굴부딘 헤크메따아르의 무장세력과 하카니라는 인물이 이끄는 하카니 네트워크가 카불 정부와 외국 군대를 심심치 않게 공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정부가 꾀하는 ‘국익’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덧붙였다.

이유경 기자는
   
  ▲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는 국내 몇 안 되는 국제분쟁 전문기자다. 대학원 졸업 후 지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활동하며 언론개혁운동에 매진하다 지난 2003년 1월 국제분쟁 전문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동안 스리랑카, 태국,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인도 파키스탄 분쟁지역), 인도, 버마, 라오스, 레바논 등 내전과 전쟁을 겪는 10여 개국을 누비며 분쟁의 원인과 인권문제를 취재했다.
지난 2007년 3월5일부터 5월20일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한 경험도 있다. 카불에 베이스를 두고 남부 칸다하르, 동부 잘랄라바드와 낭가르하르 지방, 서부 헤랏 지방을 오가며 다국적군의 공습과 군 작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상황을 취재했다. 파키스탄과 이란 등 이웃국에서 난민 생활을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온 아프간인의 삶과 아프간 동부 아편 문제 등을 보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서부 헤랏 지방에서 분신하는 여성에 대한 사전 취재를 한 뒤 8월에 다시 돌아와 추가 취재를 할 계획이었으나 탈레반의 한국인 피랍사건으로 아프간이 여행 금지국이 되면서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버마 국경 지대 피난민(IDPs·국내난민)에 대한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지난 5월 타밀족 인종학살로 종식된 스리랑카 전쟁 뒤 강제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등에 관한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그의 기사는 주간 한겨레21과 독일 진보 일간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Neues Deutschland) 등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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