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

지난 2007년 5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한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자신의 노조관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근 철도노조가 벌인 합법 파업도 이 대통령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코레일을 찾아가 "타협하지 말라"고 개입하는가 하면, "지구상에 이런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고 거짓말까지 일삼았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적대적 노조관과 부적절한 언행, 편향된 노동 정책을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정부 입장에 동조하거나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민주노총·공공미디어연구소·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 그 이면과 언론의 작용>에서도 이 대통령의 비뚤어진 노조관과 변하지 않는 언론의 노동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노조의 활동을 제약했던 것과 달리 노조 자체를 와해시키는 것에 정책목표가 있다"며 "MB정부의 노동정책은 시장경제논리와 정권 재창출 논리, 공급 중심 경제론이 결합하면서 극단적 반노조 성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변인은 특히 "현재 노동운동에서 가장 큰 난제 중 하나가 언론"이라며 "파업시에는 시민 불편, 귀족노조의 배부른 형태가 반드시 동반돼 기술되는 등 정부의 요구에 정확히 복무하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문일봉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11월23일부터 30일까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5개 신문의 철도노조 파업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이들 신문은 △노조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제목을 주로 달았고 △철도노조를 '귀족노조' 혹은 '왕족노조'로 비판하며 부도덕한 집단으로 묘사하는 한편 △철도노조의 파업이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의 파업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들 신문은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면서 정부에 '엄정한 처벌' 등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가 하면 파업과 관계없이 발생한 기계 고장도 마치 파업 때문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상파방송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파업 초기엔 철도노조가 왜 파업에 들어갔는지 설명조차 하지 않았고, 이후엔 시민불편과 운송대란이 주요 보도 내용이었으며, 파업으로 인한 피해액을 강조해 노조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철도노조 김용남 기획국장은 "요즘 언론 보도를 접하고 주위에서 '술 사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지난해 원천징수영수증에 찍힌 내 연봉이 3000만 원이 안 됐다"며 "기사를 보면 철도 노조원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생떼를 쓰고 인사에 개입이나 하는 후안무치한 사람들로 비치는데 우리는 심심해서 파업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최근 철도 노동자가 사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기사가 있어 따져보니, 사장은 지난해 기본급만 9200만 원에 성과급 등을 합쳐보니 2억1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대부분의 철도 노동자가 빨간날(휴일)에 상관없이 일을 하고 연장근로를 하고 있음에도 이런 기사가 나간 것은 악의적 보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무원노조에 대한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 연구원은 "보수신문사들은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민주노총 탈퇴를 마치 여타 공무원노조의 탈퇴로 확대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지자체 노조 상당수가 여전히 통합노조에 가입해 있고 신규 가입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손영태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조선은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 찬반투표를 실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기사와 사설을 통해 공무원노조와 민주노총을 분리시키려고 매도하고 있다"며 "언론이 치면 정부는 받아서 정책으로 소화하고 공안기관은 탄압에 나서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등 정부와 공안기관, 보수언론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만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는 "방송사는 경영진 임명을 사실상 정부가 하기 때문에 이것이 (보도 분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보수적인 성향의 기자가 현장에 배치될 경우 뉴스가 보수화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김 간사는 이어 "그럼에도 기자들은 올바른 보도를 해야 하는데, 전문기자가 없고 조중동이나 과거 노동 뉴스를 참고하다보니 그들의 프레임에 빠지기 쉽다"며 "민주노총 등에서 노동 담당 기자가 새로 발령을 받으면 교육을 시키는 등 노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매일노동뉴스 박운 편집국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매일노동뉴스 박운 편집장은 보수 언론의 노동 보도 행태에 대해 "파업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고, 노-노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정작 왜 파업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피해 상황만 부각시킨다"며 "이러한 보도는 줄곧 계속돼 왔으며 MB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미디어평론가 백병규씨는 "보수언론이 어떻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며 "진보언론도 철도노조나 공공부문노조에 대해 일정한 선입견이 있을 수 있고, 특히 노동계에서도 파업 쟁점이나 이슈를 제시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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